[탈북기자가 본 인권] 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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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중국 길림성 연변 지방에서 탈북민 구출 활동을 펼치다가 북한의 피랍되어 유명을 달리한 김동식 목사를 기리는 “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가 지난 5월 15일 남한에서 발족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로 부터 자세한 소식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도희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도희윤 대표 :예, 안녕하세요.

기자 :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는 언제 조직되었습니까?

도 대표 :예, 5월 15일은 스승의 날, 참 좋은 날입니다. '스승의 날'은 저희들을 열심히 가르쳐주신 스승들을 기리는 그런 날인데, 마침 기념사업회가 결성이 됐고요. 김동식 목사님이 돌아가신 그날을 기해서 물론 1년에 한 번 정도는 행사들을 진행해왔지만, 본격적으로 순교 기념사업을 진행하자는 부분들이 내부적으로 결의가 되어서 발족을 하게 됐습니다.

기자 :북한 청취자분들을 위해 '김동식 목사 피랍 사건'에 대해 좀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도 대표 :김동식 목사님 사건이 있은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목사님께서 북한의 공작원들에 의해서 피랍되신 것은 바로 중국에 있는 조선족 자치주 연길인데 바로 2000년 1월 16일이었습니다. 2000년도 이전인 1999년 12월에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인데, 바로 조선족 자치주 연변 쪽에서 탈북민 사역을 하시던 김동식 목사님이 13명의 탈북인들을 몽골 국경을 통해 무사히 넘기게 됩니다. 몽골 당국에 탈북민들이 구류되어 있을 때 이들을 안전하게 대한민국으로 오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셨는데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셨죠. 지금은 20년이 지난 상황입니다만, 그13명의 탈북민들이 아주 안정적으로 대한민국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북한으로서는 몽골의 루트가 처음으로 개척되는 사건이었고, 이를 그냥 방치할 경우 탈북민들의 탈출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하는 위기감 속에서 이 일을 진행했던 김동식 목사를 랍치할 것을 결의하고 결행한 것이 바로 2000년 1월 16일 이었습니다. 함경북도 도 보위부에 있는 공작원들이 실질적으로 준비를 다 했고요. 중국 연길까지 넘어와서 목사님을 유인해서 자동차로 납치했던 그런 내용입니다.

그 북한 공작원들 중 세 사람은 한국에서 체포가 되어 법의 심판을 다 받았고, 8명 정도의 북한 공작원들이 관여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관여된 모든 공작원들도 비참한 생애를 마친 것으로 저희들이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동진 목사님의 납치 사건의 개요입니다.

기자 :순교자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좀 짚어주시겠습니까?

도 대표 :순교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자신의 신앙에 신념에 기초를 해서 자기가 믿는 기독교 같은 경우는 예수님과 주님을 믿는 거죠. 그래서 자신이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절대자에 대한 모든 부분들을 온전히 다 바치는 바치는 그런 행위다 이렇게 보시면 되고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신앙의 정신에 그대로 구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참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몸과 마음 정신까지 다 내어놓는 정신 바로 그것이 순교 정신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걷잡을 수 없는 여러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위기감 속에서 바로 김동식 목사님을 제거하자, 그 제거라는 것은 생명의 제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사람을 북한 당국이 체포해서 압송해서 들어오게 되면 다시 말해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목사지만 바로 (북한)공화국 안에서 김일성 김정일을 수령을 모시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면 탈북민 사역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하고 납치를 거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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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하신앙인 응원 캠페인이 명동가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 도희윤 대표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김동식 목사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북한 당국이 정확하게 지목하고 있는 그런 대상자라는 걸 알고 자기를 굴복시켜야만이 이 사역이 중단될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런 판단에서 자기 스스로가 순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절박한 심정들을 스스로 깨달으셨죠. 그래서 모든 고문과 회유와 협박 등을 다 물리치고 마지막에는 거의 곡기를 먹는 것을 스스로 다 끊으셨습니다. 김동식 목사님은 굉장히 풍채가 크신 걸로 그렇게 다 알려져 있는데요. 80킬로그램이 넘는 그런 몸무게에서 나중에 순교하실 때는 35kg도 채 안 되는 그런 모습으로 순교를 하셨는데 당시 북한 보위부 요원들도 김동식 목사님의 순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표현을 했다고 그래요. “참으로 거룩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 거룩한 모습이 바로 김동식 목사님의 순교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추가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기자 :김동식 목사는 북한의 유도 선수하고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에 대해서도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 대표 :김동진 목사님는 북한 유도선수 계순희 선수와 찍었는데, 미국의 애틀란타에서 올림픽 경기 대회가 열리던 때인데, 계순희 선수가 올림픽에 참가했을 때 뿐만 아니라 또 장애인 체육대회가 열렸을 때도 북한의 장애인들에게 숙식 등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만큼 김동식 목사님은 탈북민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애정이 굉장히 많으셨던 분이죠. 그렇지만 그 활동 과정에서도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정말로 거리를 헤매고 있는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탈북민들을 구출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시면서 1995년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탈북민 사역에 나서게 된 겁니다.

기자 : 앞으로 김동식 목사 순교 기념사업회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됩니까?

도 대표 :기본적으로 순교 사업이라는 것은 그분이 어떤 일들로 인해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또 그분이 크리스찬으로서 순교의 과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줬고, 그에 따른 우리 신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지 바로 이런 것이 순교의 내용에 다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순교 사업회는 기독교 개신교가 중심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가실 텐데 순교 사업의 현황에 있어서 그분의 정신, 다시 말해서 탈북민들을 정말로 안전하게 자기가 원하는 지역으로 갈 수 있게 하고, 또 더 나아가서는 북한 내부가 기도하는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그날까지 진행해 나가는 게 바로 김동식 목사 순교사업의 목적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기자 :김동식 목사 순교 기념 사업에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 대표 :기본적으로는 김동식 목사님의 순교 사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해 왔던 많은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바로 선민 네트워크의 김규호 목사님 같은 경우는 이번 기념사업회의 상임대표를 맡아서 진행을 해 주실 거고요. 또 한기총에서 줄곧 많은 역할을 해 주셨던 이세홍 목사님 같은 경우는 운영위원 등으로 참여해서 기념사업회가 보다 더 풍성하고 거룩한 사역이 될 수 있도록 이런 부분들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기자 :김동식 목사님 이외에도 북한에 숨진 지하 신앙인들을 기리는 캠페인도 벌리시는데요. 이에 대해서 소개를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도 대표 :저는 한 카톨릭 단체의 평신도로서 평신도 단체의 화해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 화해평화위원회가 실제로 벌리는 운동은 명동거리 앞에서의 거리 기도 운동인데요. 바로 그 제목이 "북녘 땅의 신앙의 자유를!" 그리고 부제목이 "북한 주민들이 두려움 없이 기도하게 하라"입니다. 옛날에는 평양과 같은 이북 땅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들이 번창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공산주의가 들어오면서 모든 신앙이 말살되고 기도하는 것조차 있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북한의 지하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그 신앙인들을 응원하고 대한민국에 있는 신앙인들에게도 이어져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차원에서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고, 한 달에 한 번 지속적으로 명동성당 앞에서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가 발족된 내용과 북한의 지하교회 신앙인들을 기리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님으로부터 들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사 작성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