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탈북민이 만든 ‘북한감옥 세트장’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4.05.29
[탈북기자가 본 인권] 탈북민이 만든 ‘북한감옥 세트장’ 인권영화 '도토리'의 한 장면
/문성광 TV 캡처

<탈북기자가 본 인권진행에 정영입니다. 여러분은 북한 감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아마 북한 구류장에 가보지 않은 주민들은 북한 안전부와 보위부 감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남한이나 미국 등 자유국가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국의 감옥을 보여주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압니다. 그러나 북한은 감옥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은 물론, 북한 내부 주민들도 잘 알 지 못합니다. 북한에서는 똥칸으로 부르는 살인적이고 열악한 감옥을 남한에 재구성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북한 인권영화 ‘도토리를 촬영하기 위해 북한 감옥과 똑 같이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데요. 이미 이곳에서 여러편의  북한 관련 영화를 찍었다고 합니다. 이 감옥을 직접 제작한 탈북민 출신의 도토리 영화 프로듀서 이동현 씨는 앞으로 이곳에 북한체험 마을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북한 감옥이 한국에 생겨나게 된 사연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도토리 영화 녹취> 고문하는 소리/ 너 중국 가서 남조선 놈 만났지? 기독교를 믿었지?

~~비명소리

 

이 녹음은 ‘도토리영화에서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탈북민 감독이 영화문학을 쓰고, 출연자의 95%가 탈북민들로 구성되어 제작한 도토리영화는 북한 국경의 한 협동농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풀베기 전투에 동원되었던 마을 사람들은 북한 당국의 통제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집단 탈북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북송 당해 북한 보위부 감옥으로 끌려오게 되는데, 그곳에서 탈북민들을 고문하는 소립니다.

 

보위부는 기독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한 주민을 고문하는데. 끝내 사망하게 됩니다. 또 다른 여성들은 중국에서 숨겨가지고 나온 인민폐를 뺏기지 않겠다고 돈을 돌돌 말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겼습니다. 이를 간파한 북한 보위부는 여성들에게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뽐프수천개를 시킵니다.

 

또 다른 남성은 중국돈을 숨길 곳이 없어 돌돌말아 삼켰다가 보위부원에게 들켜 매를 맞습니다. 영화에는 보위부원들이 중국에서 임신한 임산부의 배를 차 강제낙태 시키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과정에 비명소리, 욕지거리 등으로 감옥안은 아비귀환입니다. 이러한 고문이 자행되는 북한 감옥을 재구성한 겁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북한 감옥에서 아츠러운 비명소리가 들리고, 피범벅이 된 수감자들이 매를 맞는 사진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경악하며 설마 저렇게까지 잔인한가?”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요즘 외국에서는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감옥안에서 고문과 체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교도소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하면, 그 고문을 한 당사자가 법적 처벌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죄인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년 전 한국의 전북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을 위해 감옥안에 노래방과 게임기를 설치했다가 논란이 된 적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이 느끼는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하겠다고 심신 치유실이라는 것을 꾸려놓고, 거기에 조명과 음향기기를 갖춘 노래방 3곳과 게임기 2대를 설치했는데, 이를 두고 민심이 둘로 갈라져 논쟁을 벌였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인권 보장 차원에서 여흥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과 남에게 고통을 준 죄수들에게 배려가 과도하다고 논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국의 교도소에서는 1999년부터 수감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머리를 삭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한국 교도소는 수형자의 등급에 따라 머리를 짧게 삭발했습니다. 삭발은 일제가 도입한 규정인데, 명목상 재소자의 위생을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수감자를 쉽게 식별해 재소자가 도망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존감을 꺾어 감옥 생활에 순응하도록 하기 위해 삭발을 의무화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수감자들에 대한 삭발 규정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죄를 지은 사람이 기소되는 순간 머리를 빡빡 밀고 공민권도 박탈합니다. 그때부터 인간 이 아니라 물건이나 짐승 취급을 받습니다. 수감자들의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우고, 별명으로 조롱당하고, 밥도 짐승도 먹지 않을 불결한 것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비원권적 고문과 체벌이 가해지는 북한 감옥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도토리 영화를 제작한 탈북민 출신 허영철 감독으로부터 이 감옥이 지어진 배경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허영철 감독: 북한 영화는 세트장이나 그 (북한 복장)소품이 없으면 못 찍어요. 그래서 북한 감옥을 형상한 세트장을 건설했어요. 직접, 우리 영화를 보면 스텝이 이동현 씨하고 나하고 둘뿐이요, 영화를 찍자면 스텝이 최소 50~100명은 있어야 돼. 그런데 우리가 돈이 없으니까 사람을 못 쓴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 이동현 씨가 혼자서 한 달 동안 감옥 다 건설하고, 용접하고, 다 만들고, 내가 시나리오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조명 치고 동시녹음 이렇게   둘이서 모든 걸 다 해버린 거예요. 우리 영화 마지막에 롤 자막이 올라가면 스텝이 없어요.

 

그러면 북한 감옥 세트장을 설계하고 제작한 이동현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동현 프로듀서: 영화를 만들자면 세트장이 참 중요하거든요. 원래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북한 체험마을이라는 걸 꼭 만들고 싶었어요. 인권 활동을 하면서 너무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북한 체험마을이라는 걸 꼭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내가 체험했던 걸 그대로 재현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이감옥 세트장부터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그때부터 그 현장 스케치 떠가지고 재료 산출을 해가지고 만들었어요. 저 감독님 친동생 허영학 씨가 있어요. 허영학 씨가 돈을 한 3천만 원 내고 감독님이 갖고 있던 돈 한 2천만 원에 그다음에 제가 갖고 있던 돈 또 빡빡 털어서 뭐 약 한 5~6천만 원 해서 자재와 설비를 싸가지고 그걸 만들게 되었어요.

 

이동현 프로듀서는 2008년도에 첫 탈북을 했다가 세 번 강제 북송되었던 아픔이 있습니다. 그는 약 3년간 감옥살이를 했는데, 그때 추억을 살려가지고 북한감방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동현 프로듀서: 제가 있던 포항구역에는 6호간방까지 있거든요. 그리고 고문실이 있고 취조실이 있고 하는데 어찌 보면 제가 그 과정에 탈북민 한 10명 남게 땅에 묻었어요. 제가 도집결소 생활을 약18개월을 했는데, 두 번에 걸쳐서 한 18개월 했는데, 그 안에서 제가 시체를 한 18구 정도 묻었어요.

 

그러면 이동현 프로듀서가 북한감옥 등을 만들어 한국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이동현 프로듀서: 제가 한국에 와서 이제는 13년이에요. 그런데 지금도 그 악몽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꼭 언젠가는 그들이 한을 풀어줘야 되겠다, 영화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해가지고 저희 감독님하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일단은 세트장을 하자 그래 세트장 건설을 하면서 앞으로 계획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여기에다가 북한 체험마을을 꾸려야 되겠다. 전 세계가 북한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그대로 재현을 했어요. “북한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로 와봐라할 정도로 그렇게 꾸려놓을 생각도 하게 되고 어쨌든 이번 도토리 영화가 어찌 보면 탈북민들의 염원을 담아서 만든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정말 먼저 간 영혼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쨌든 최선을 다했어요.

 

도토리 영화의 제작 과정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인권을 영화라는 광범위한 장르를 통해 알려야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동현 프로듀서: 영화에서 프로듀서라는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까도 말했지만 제작진이 최소한은 50명 음향 감독부터 촬영, 미술, 음향부터 시작을 해서 서류 보는 사람까지 쭉 하면 한 50명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걸 감독님하고 내가 했어요. 둘이서 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행을 해 가지고 오늘날에 온 거예요.

 

이동현 프로듀서는 “우리가 북한에서 북한 독재 정권의 그 항거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 탈북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중국에서도 개밥의 도토리가 되고, 한국에서까지 북한 인권을 외면하면 개밥이 도토리 신세가 되기 때문에 북한인권을 알리기 위해 영화도 찍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동현 프로듀서: 우리가 북한 인권을 많이 알려야 되잖아요. 그 일념으로 100여 명의 탈북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예요. 그러면 우리가 후원을 해준 탈북민들한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길은 제2의 제3의 도토리 영화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 제2의 제3의 도토리 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겁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은 북한의 악명높은 감옥과 똑 같은 시설이 한국에 재구성된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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