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남북체제 경쟁이 한창이던1960~70년대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자들 가운데는 고령이 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최성용 납북자 가족모임 이사장의 부친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데요. 최 이사장은 57년전 납북된 부친의 생사여부를 알려달라고 북한에 요구했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서울에 있는 최이사장과 전화로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최성용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최 이사장 :네 안녕하세요.
기자 :최근 윤석열 정부와 일본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관련해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 이사장 :지금 일본은 일본 국민 특히 언론, 정치인 이렇게 삼위 일체가 되어 납북자 문제를 도와주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정치권에서 너무 소극적이고, 다행히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나 대통령 안보실, 외교실, 통일부 이렇게 나서서 납북자 문제를 최우선시로 해보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최우선시하니까 거기하고 같이 해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일본과 연대를 잘해서, 특히 요코다 메구미 남편이 우리 한국 학생 아닙니까, 그런것도 있고 하니까, 북한이 특히 우리 한국에 대해서는 같은 동족이라고 하면서 무시해 버리고 한국 정부도, 우리 피해자 입장에서도 일본하고 같이 연대를 잘해서 국제사회에 진짜 항의를 해야 해요. 특히 저는 일본 메구미 사건과 관련해서 같이 활동을 하고, 경험을 많이 해서 아는데 일본 정부하고 일본 언론이 참 많이 도와줘요. 우리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정보도 많거든요. 북한한테 아무리 얘기해봐야 안 되니까, 납치 부분에 대해서 공개 안 한 정보들을 가족들하고 협의를 해서 공개하고 전 세계 국가 다 다니면서 납치 부분에 대해서 항의를 해야 해요. 일본 피해자하고 우리 한국 피해자들이 전 세계를 같이 다녀야 돼요.
기자 : 납북자 문제는 이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왔는데요. 아직도 풀어야 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당면하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최 이사장 :북한이 우리를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만나게 해주겠다고 우리 정부와 협상도 해보고 노력도 했는데 아무 필요 없어요. 그래서 최고 좋은 방법은 일본 정부하고 우리 정부가 같이 잘 하고 그 밑에 우리 피해자들- 메구미 가족, 영남이 가족, 또 우리 가족들이 똘똘 뭉쳐서 전 세계를 다니고 특히 북한 대사관이 있는 그런 곳에 가서 호소하고, 그 나라에 우리 아픔을 전달하고 그러면 일본 언론들은 엄청나게 보도하겠고, 그렇게 되면 한국 언론도 따라와 주지 않겠습니까? 한국 언론이 우리를 도와주면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우리 국민들도 자꾸 인식이 되요. 일본 정부하고 우리 한국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접근을 잘하려고 하고 미국은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 피해자들이 북한한테 아무리 요구해도 안 되니까 전 세계에 다 같이 다니면서 유엔, 제네바 북한 대사관이 있는데 이런 데를 같이 다니면서 호소해야 돼요.
기자 :북한 청취자분들은 지금 납북자라는 단어를 좀 생소하게 느껴질 거예요. 북한은 납북자가 아니라 '의거 입북자'라고 변명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납북자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최 이사장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납북자, 국군포로를 포함시켰어요. 그때 북한에서는 '납북자'라고 하지 마라, '국군 포로'라고 하는 용어를 빼라 등을 갖고 기자들도 내쫓고 난리 났었지 않았습니까? 우리 정부가 속된 말로 졌어요. 북한한테요. 그러면 국군포로 납북자를 뭐라고 하겠는가, 국군포로를 "전쟁 중에 헤어진 사람들"이라고 하고,. 그러니까 국군 포로는 전쟁 중에 헤어졌다 이거지. 그 다음에 전쟁 후에 헤어진 사람은 납북자라고 했어요. 전쟁 후에 헤어졌다 이거예요. 이렇게 납북자 국군포로라는 말을 못 쓰게 하기 위해서 그런 문구를 만들어서 우리 정부하고 합의 봤어요. 대한민국이 납북자, 국군포로 용어 자체를 포기해 버린 거예요. 직무유기인 거예요. 저희 부친 같은 경우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입니다. 한국전쟁시기 맥아더 사령부에서 부친이 선박 대장을 하셨어요. 우리 정부가 부친에게 무공 훈장을 주었습니다. 부친은 지금 현충원 동작동에 위패가 안장돼 있고 어머님도 국가유공자라 같이 모셔져 있는 상태인데, 북한이 아버지의 생사확인을 해주지 않아요. 저는 여태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로서 뭘 요구했냐면 "아버지가 사망을 했으면 우선 사망 날짜를 알려달라"고 이렇게 요구를 했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나라의 풍습이 제사 아닙니까? 돌아가신 날을 알아야 제사를 지낼 거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안 알려줘요.
기자 :북한 정부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해주시겠습니까?
최 이사장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천륜이라는 게 있는데, 김정은이도 자기 딸 데리고 나와서 그런 걸 보면 그게 다 인지상정인데 이제는 북한도 생사 확인을 해주어야 합니다. 납치 부분에 대해서 이제는 인정을 하고 생사확인을 해주고 거기서 또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서로 풀고 이렇게 가야지 세상에 시퍼런 대낮에 다 끌어간 자료가 있는데 그거를 모른다, 없다, 납치한 사실이 없다 이렇게 하지 말고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그분들이 정치적으로 놀 필요도 없지만…그것은 우리 정부를 무시해서 그래요. (북한은) 일본한테는 다 알려주고 저렇게 된통 당하지 않습니까, 우리한테도 이제는 진실되게 1단계 생사 확인, 그 다음에는 자유왕래, 이렇게 서서히 대화를 해서 풀어달라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과감하게 나서서 우리나라는 이산가족이라는 아픔도 있으니까 서로 그런 거를 같이 인도적으로 풀어가면서 요구할 건 하고 이렇게 해야지 시간이 가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데, 지금도 해결 못한다면 쓰겠느냐 북한 정부나 김정은 위원장도 납북 피해자나 이산가족 국군 포로에 대해서 진실되게 다 풀어버리고, 생각을 해주고, 이렇게 해달라 하는 것이 우리 가족들의 요구이고 가족의 대표로서 요구드린다고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자 :북한에 계신 아버님께서 살아계실지도 모르는데요. 아버님께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최 이사장 :제가 15살 때 아버지가 잡혀갔는데 지금 내가 71세입니다. 저희 부친은 저하고 열다섯에 헤어졌으니까요. 만약 지금이라도 아버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면 저도 이제 생이 꺾이는 나이인데 큰 기대는 없지만, 북한 정부가 어떻게 우리 아버님을 정리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저는 알아야 할 책임이 있어요. 우리 부친이 지금 100살이 넘어 살아계신다는 건 있을 수는 없지만 법적으로는 살아있습니다. 왜? 안 알려줬으니까. 북한이 끌고갔으니까 우리는 재산도 뺏겼어요. 저희 개인 재산도 뺏겼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앞으로 북한한테 꼭 확인을 받아야 하고 우리 정부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해 여태까지 잘못이 있다면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해요. 앞으로 이런 일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 정부가 북한과 허심탄회하게 합의를 봐서 아버님 살아계신다면
만나보고 싶고, 돌아가셨으면 뼈라도 찾고 싶은 자식 된 입장을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기자 :네 이 방송을 통해 이사장님의 심정이 잘 전달되기를 바래봅니다.
최 이사장 :네 감사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57년전 북한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그리는 심정과 북한 정부에 부친의 생사여부를 요청하는 사연을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이사장으로부터 들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