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노예부대-‘속도전청년돌격대’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0.07.08
slave_labor_b 지난 2016년 함경북도 연사지구 홍수 피해복구 현장에서 백두산영웅청년여단 돌격대원들이 다리 복구작업 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는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 실업상태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속도전청년돌격대 창립 4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혹독한 노동현장에서 맞들이를 들고 뛰고, 맨손으로 발전소 언제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속도전청년돌격대가 백두산청년발전소 건설장과 평양시 건설장 등 주요 국가건설대상을 맡아 수행하는 ‘신념의 강자’, ‘청년신화의 주인공’ 이라고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영 딴판입니다. 낙후한 노동수단과 열악한 후방 공급, 엄청난 노동량에 내몰린 돌격대 현장은 ‘21세기 노예의 현장’이라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인민군대와 똑같이 10년동안 강제노동에 동원되면서도, 일당 보수는 고사하고, 주린 배도 채우지 못하고, 성희롱과 강간 등 인권침해를 당하는 처녀 돌격대원들의 억울한 사연은 그냥 스쳐 지나갈 일이 아닙니다.

왜 북한당국이 보수도 주지 못하면서, 건설의 효율성도 떨어지는 노동현장에 젊은 청년들을 무리로 잡아두고 있는지, 돌격대에서 어떤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는지 탈북기자가 본 인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북한 텔레비전 녹취> 언손을 호호불며 맨손으로 맞들이를 들고 달리는 10대 청소년들, 해머를 휘두르는 해머부대원들, 흙마대를 지고 달리는 마대부대원들.

그야 말로 열악하기 그지 없는 노동현장을 북한 텔레비전이 공개했습니다. 속도전 청년돌격대가 생겨난 것은 1975년입니다. “노동당의 부름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건설 역량”이라고 듣기에는 그럴듯하게 포장됐지만, 실은 2011년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 시절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만든 대규모 무보수, 무임금 건설 역량입니다.

이 건설 역량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렇게 3대에 거쳐 유지되고 있는데요. 이들이 일하는 대상은 고속도로, 비행장, 평양시 아파트 건설장 등 어렵고 힘든 노동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기피하는 막노동들입니다.

북한이 각종 돌격대를 조직 운영하는 것은 공짜로 일을 시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청년들을 조직에 매 놓아야 반정부, 반김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도전 청년돌격대 병력은 약 40만명으로 준군사조직입니다. 속도전청년돌격대 지도국, 각도 여단, 대대, 중대, 소대, 분대별로 완전한 군사 체계를 갖췄습니다.

북한에서 100만명의 군대와 청년돌격대 약 40만명을 10년 넘게 유지하는 것은 젊은 청년들이 체제에 반발하지 못하게 집단생활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돌격대에 소속된 청년들도 당간부나, 토대가 좋은 자식들은 지휘관이 되거나 빠져나가고, 유독 출신성분이 나쁘거나, 노동자 농민의 자녀들만 노동현장에 동원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노동현장에서 어떤 인권침해가 벌어질까,

1990년대 평양시 광복거리 건설장에서 속도전청년돌격대 모습을 직접 목격한 탈북민 조씨는 돌격대 생활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처녀 돌격대원들의 인권유린이라고 증언합니다.

조씨: 여성들은 힘이 약하지 않습니까, 여성들은 그래서 돌격대 일할 때 사실 남자들이 하는 그런 일을 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당의 방침에 따라서 젊은이들, 여성이든 남자이든 젊은 10대, 20대, 30대 이들을 돌격대로 많이 뽑지 않습니까, 각 기관기업소별로 뽑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가야 하는데 가장 침해 당하는 것이 여성들입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는데, 어떤 것이냐면, 성희롱, 강간, 강도높은 노동 이걸 통해서 당합니다. 소대장이나, 중대장 이런 사람들은 다 남자들이니까, 이들은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 여성들을 현장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키고, 그렇게 사람을 강제노동 시키듯이 혹독하게 강하게 노동을 시키면 여성들이 할말도 하지 못하고 그런 성희롱이나 무차별적 인권침해를 당하는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집으로 가지도 못합니다. 집에 가면 도주병으로 낙인 찍히고, 돌격대에서 또 잡으러 다니거든요.

속도전청년돌격대는 준군사 조직이기 때문에 도주자는 곧 군대 탈주병으로 간주됩니다. 이들의 문건에 ‘탈주자’ ‘기피자’라고 딱지를 붙여놓으면 그 사람은 일생 동안 탄광이나 광산과 같은 가장 험악한 노동만 하며 살아야 합니다. 때문에 북한 돌격대 처녀들은 설사 억울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해도 돌격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씨: 군대에서 집으로 도망쳤을 때 사람을 보내서 잡아 오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강한 노동현장에서 어려운 일을 시킨단 말이지요. 고의적으로, 말을 안 듣는 여자들에게 힘든일 시키는 데 절반 죽지요. 완전히 고통의 시간이죠.

자기가 보호받기 위해서 남자친구들을 사귀지요. 보호차원에서 남자들을 사귀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 보호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소대장이나, 중대장 등 일 시키는 담당자들이, 감시자들이 자기들이 일을 시키는 것이니까, 그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잘 보여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여성들은 소대장, 중대장 등 간부들에게 당하고, 또 다른 남자들로부터 성희롱이나 강간이나 하는 것들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남자친구들을 사귀는 것이지요.

북한에서는 노동당 입당은 출세를 반드시 필요한 증표입니다. 때문에 어떤 청년들은 노동당에 입당하기 위해 속도전청년돌격대로 자원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도 빽이 없으면 입당은 고사하고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함경북도 단천시에서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자원했던 소년단 지도원 선생을 목격했던 탈북민 김모씨의 증언입니다.

김씨: 그 선생님은 고아였습니다. 엄마 아빠는 다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노동당 입당을 하려고 (소년단 지도원이)돌격대에 한 3~4년 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군대에 나가기 전에 돌격대 나갔다고 하더니, 제가 제대 되어 돌아오니, 와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한 3~4년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가 돌격대 갔다 와서 소년단 지도원을 다시 하는게 아니라, 완전히 직급이 떨어졌는지 어찌 되었는지, 단천 제련소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 선생님이 너무 똑똑하고, 지도자가 될만한 자질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도 노동당 입당만 하면 여성으로서 간부를 할 수 있겠다고 야심이 좀 있었는가 봅니다.

그런데 소년단 지도원을 하면 입당을 할 수 없으니까, 속도전돌격대에 나갔지요. 저는 그때 단천시 역전에서 그 선생님을 보았는데, 제가 너무 반가워서 선생님에게 달려가고 싶었는데, 그 선생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막 달아나기 바쁜 겁니다. 내가 따라오는 것을 느꼈는지 막 달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애들에게 물어보았지요. 그러니까, 애들이 말하기를 “소년단 지도원 선생이 머저리 되었다, 사람 보면 피한다” 또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그 선생님이 너무 당해서 입당도 못하고 단천 제련소에 쫓겨왔다”고 하더라구요.

속도전청년돌격대에서는 여성들만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남성들도 이곳에서 구타와 도둑질, 기합 등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김씨는 증언합니다.

김씨: 남자애 하나 있었는데, 그 애가 19살이었어요. 그 애 집이 온성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너 사람 좀 되라”고 해서 외아들이니까, 군대는 내보내지 않고 속도전돌격대에 보냈대요. 그런데 속도전돌격대에 간지 2년만에 뼈가 부러져서 담가에 실려 집에 왔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너무 기가 막혀서 “너 왜 집으로 오지 않았는가?”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애가 “아빠가 나를 내쫓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고 말해서 아버지가 너무 억장이 무너져서 겨우 치료해줘서 탈북시켜 두만강을 건너서 한국으로 온 애가 있었어요.

그런데 상상이 안된 것이, 돌격대에 이가 너무 많아서 남자 여자 할 것없이 막 자다가도 속옷을 벗고 일어나서 이를 막 털어냈다고 합니다.

그때 철길 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애는 (상관이)때리면 각목이 아니라, 쇠에 맞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애는 얼굴이 한쪽으로 쐬었다고 합니다. 수술하긴 했지만, 쇠에 맞아 가지고 얼굴 한쪽이 부서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와서야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 돌격대 생활이 정치범 수용소보다 더 하지 않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북한은 일제 시기의 강제징용에 대해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높여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강제징용보다 더 혹독한 속도전청년돌격대의 열악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오면 속도전청년돌격대 피해자들이 북한당국에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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