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웃 국가인 중국에 대해 “정치는 사회주의를 하고 경제는 자본주의를 하는 특색있는 사회주의”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경제규모도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조만간 미국을 앞지르는 패권국이 될 것이라는 인식은 외부 사회에도 일부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은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고, 그 과정에 과연 인권이 침해되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잘 조명한 책 ‘슬픈 중국’ 발간되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슬픈 중국’의 저자인 캐나다의 맥매스터 송재윤 교수로부터 북한의 역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중국의 현 근대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중국의 현대사와 관련된 책 '슬픈 중국'을 3부작으로 완성하셨는데요. 먼저 본인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송재윤 교수 :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송재윤이고요. 저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 부근에 있는 맥매스터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고요. 제가 가르치는 분야는 중국 현대사, 중국 전근대사 그리고 동아시아 역사, 북한의 역사도 포함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송재윤 교수 :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15년도에 서울의 한국학중앙연구원 방문학자로 가 있으면서 거기서 다양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서 굉장히 호의적이고, 또 중국을 좋아하고 중국에 대한 잘못된 환상적인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제가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좀 잘못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가셔서 연설을 하는데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의 나라"이고,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중국 몽에 동참하겠다"는이런 문제 발언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떤 배경에서 이 말이 나오게 됐는가 고심을 하다가 아무래도 한국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중국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짧아서 뭔가 대통령한테 잘못된 정보를 준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다면 좀 본격적으로 중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팬앤드마이크'라는 인터넷 매체에 연재하기 시작해서 그게 한 5년 정도 계속 꾸준히 하다 보니까 세권의 책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기자 :그러면 어떤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까?
송재윤 교수 : 3부작으로 기획이 됐고 제1권은 인민민주의 독재라고 제목을 제가 붙였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서기 1년 전인 1948년 국공 내전 상황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만들어지고 1950년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그 절정에서 대약진 운동이 벌어지고 그 결과로 대기근이 일어났던 그 어떤 파란만장한 역사를 제가 1권에서 다뤘고요. 근데 그 1권에서 다룬 주제랄까 핵심적인 테마는 바로 인민민주독재라는 정치 제도입니다.
기자 :그러면 1권에서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였는지요.
송재윤 교수 :제가 이 '슬픈 중국'을 기획을 하고, 쓰면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중국 현대사를 기술해야 독자들한테 좀 쉽게 중국의 인민들이 겪었던 그 참혹한 역사를 좀 더 현실감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좀 상세하게 보여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상세한 과정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한 전투 장면을 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주목했던 전투는 바로 1948년 10월 한 5개월 동안 도시 하나가 통째로 봉쇄되는 그런 아주 참혹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장춘 홀로코스트'라고 했는데요. 당시 중국공산당은 장개석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도시 하나를 완전히 봉쇄 해버리는 전략을 씁니다. 도시 하나를 봉쇄를 해버리면 보급로가 차단이 되어 가지고 사람들이 그 도시 안에서 점점 굶주리다가 죽게 되거든요. 도시 하나가 6개월 동안 봉쇄돼 있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최소 10만명에서 많게는 37만 명까지 사망하는 참혹한 역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이 되었습니다.
기자 :중국 모택동 주석의 실정에 대해 여러 가지 신랄하게 짚어주셨는데요. 어떤 부분을 강조하였습니까?
송재윤 교수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했는데요. 사회주의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분배를 하는 거죠. 그 재산을 몰수를 하려면 그 재산을 쥐고 있었던 지주 계급을 처분을 해야 되는데, 바로 그런 과정은 정치 투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중국에서 보면 계속되는 정치 운동, 정치 집회 이런 게 전개가 되는데 1950년대를 거쳐 점점 고조되면서 급기야 대약진 운동까지 갔는지를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일어났던 게 바로 대약진 운동인데요. 이 대약진 운동은 마오쩌둥이 소련과의 정치적인 충돌을 겪게 되는데요. 그것을 우리는 중소 분쟁이라고 하는데 스탈린이 죽고 나서 후르시쵸프가 집권하고 1956년에 스탈린 시대를 본격적으로 비판을 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마오쩌둥이 공산주의 정권의 대원수였던 스탈린을 비판하는 후르시쵸프와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독자노선을 선언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이 사람이 굉장히 큰 야심을 갖게 됩니다. 그 야심은 무엇인가 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산주의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이었습니다. 공산지도자가 이렇게 큰 포부를 갖게 되면 기본적으로 속도를 내게 되는데 이 속도는 욕심에서 나옵니다. 마오쩌둥은 굉장히 빨리 공산유토피아를 달성하려고 했고 그 결과 대기근이 발생을 했거든요. 전 인민을 동원을 해서 공산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너무나 과도한 욕심을 부린 결과 제대로 계획이 추진될 수 없었고, 중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거짓 보고를 하면서 정부의 상부 인사들을 속이고 사람들은 까막눈이 되어서 현실을 보지 못하고요. 그 결과 고통받는 사람들은 전부 다 하층민들이었고, 농민들이었고,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약 2천만명 죽었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 사망자 수를 요즘에는 한 4천500만명까지 보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도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는 대아사 사건이 있었는데요. 중국에서는 대약진 운동이라는 암흑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당시 피해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송재윤 교수 :우리는 상상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단순히 음식이 없어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게 아니고 기근을 발생시키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날마다 동원이 돼서 막노동을 하고 있었죠. 거기에 또 음식이 줄어들고,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은 점점 굶어서 지치고, 피로해서 맞아 죽고, 굶어죽고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는 거죠. 이 기근은 단순히 식량이 없어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재앙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약4,500만명까지 기근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볼 수가 있는데 여기에서 기근 때문에 태어나지 못한 인구가 있습니다. 당연히 자연 출산율을 보면 이 당시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나와야지 정상인지 알 수가 있는데 아기들이 태어나지 못하는 거죠. 왜냐하면 산모들이 임신 상태로 죽거나 아니면 애를 밸 수 없으니까요. 그때 태어나지 못한 인구를 한 3천만 정도로 잡으면 약 7천만~8천만명 정도가 대기근으로 희생이 됐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렇게 되면 전체 중국 인구의 10%에 달합니다. 적게는 5%~10%의 인구가 소멸됐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책임은 중국 공산당이 명확하게 밝혔지만, 바로 마오쩌둥한테 있습니다.
기자 :당시 대약진운동이 모택동의 실책에 따른 것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송재윤 교수 :모택동이 1961년에 7천인 간부대회라는 걸 하는데 그 간부대회에서 "이 책임은 공산당에 있고 공산당 중에서도 최고 영도자인 나에게 있다" 이러면서 자기 책임을 통감을 하고 반성을 했어요. 그래서 권력에서 일단 물러나죠. 모택동은 한평생 게릴라 투사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인데요. 이 사람이 권력을 잡고 정치를 이끌고 갈 때 문제가 많이 발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구체적인 통치의 비결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사람들을 동원해서 정치 투쟁을 하는 데는 귀재였죠. 마오쩌둥은 류소기와 등소평에게 행정 실무를 맡기고 자기는 뒤로 물러나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이념의 교사로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1960년대 초에모택동을 인격숭배를 하는 신격화 작업이 계속 더 강화됐거든요. 그 과정에서 4년 동안 중국은 농업 우선 정책이라는 경제 개혁을 하게 되고, 그 결과 굉장히 큰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62년부터 1966년까지 4년 동안 경제 개혁이 일어나고 류소기가 상당히 강력한 지도자로 등장해 경제 개혁과 정치개혁이 동시에 일어나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모택동이 조급해진 거죠. 그래서 문화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기자 :네, 오늘은 시간상 관계로 문화대혁명에 관한 내용은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슬픈 중국’의 저자인 캐나다의 맥매스터 송재윤 교수로부터 중국의 인권과 현 주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