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은, 조상이 건넌 탈북통로 기를 쓰고 막아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0.12.02
북 김정은, 조상이 건넌 탈북통로 기를 쓰고 막아 북중 국경지대에 탈북자를 막기 위해 설치된 철조망.
/AP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현재 조중(북중) 국경은 군사분계선보다 더 살벌한 전초선으로 변했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특수부대를 국경 2선에 배치하고, 국경경비대를 감시하게 만들고, 허가없이 접근하는 밀수업자들과 주민들을 사살하도록 명령하고, 주요 탈북통로에는 지뢰를 매설하고, 4신 고사기관총까지 배치해 탈북을 원천적으로 막는다고 합니다.

100년전 한민족 역사는 이민의 역사로 대표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가난을 피해 남부여대(男負女戴: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인다는 뜻)하고 북간도와 만주, 연해주와 시베리아로 가야 했습니다.

그 행렬 속에는 북한 김정은의 조상들도 있었습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 분들도 혁명역사 교과서에서 배웠겠지만, 북한은 김일성이 10대의 나이에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며 압록강을 건넜다고 배워주고 있습니다. 그때 일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살길 찾아 가는 조선 사람들을 막지 않았습니다.

현재 북한은 그때 일제시기 보다 더 살기 힘든 사회로 변했고, 굶주림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김정은은 그 지옥같은 북한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아버지도 건너 도강한 탈북통로를 기를 쓰고 막는다고 하니, 과연 더 악독한지 청취자분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탈북기자가 본 인권> 시간에는 국경을 비이성적으로 막고 있는 북한의 실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압록강의 노래 녹취>: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 내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이 노래는 북한 주민들도 잘 알고 있는 압록강의 노래입니다. 작사 작곡이 미상인 이 노래는 나라 잃은 백성의 한과 광복의 의지가 절절하게 담겨진 대표적인 계몽 가요입니다. 고국을 떠나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렀을 이 노래. 아마 3만 4천명 탈북자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탈북했을 것입니다.

북한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도 14살에 이 노래를 부르며 압록강을 건넜다고 자기의 회고록에서 서술했습니다.

회고록의 내용을 빌면, 김일성은 부친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를 찾을 굳은 결심을 품고 압록강을 건넜다고 하는데, 그 대목을 잠시 옮겨보겠습니다.

“나는 설음과 비분을 안고 조국산천을 몇번이고 돌아보았다. 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 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 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 조선아, 나를 기다려다오”.

김일성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압록강의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압록강의 노래 2절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압록강의 노래 2절 녹취>: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

김일성은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하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도 비감을 금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실제로 김일성은 이렇게 고향을 떠나 중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하다가 살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후 소련의 지지를 업고, 북한 정권을 세운 뒤, 일제 식민지보다 더 무시무시한 생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라 잃고 가난한 집안에 숟가락 하나 더는 심정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떠난 것이 당시 이민자1세들의 심정이었습니다.

이민 1세들은 낯선 이국땅에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고 돈을 벌고, 자녀들을 잘 키워 금의환향하겠다는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현재 탈북자들에게도 이러한 꿈은 소중한 희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김정은의 할아버지도 무단으로 도강한 압록강을 그의 손자는 비이성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현재 남한과 미국 등 자유세계로 나간 탈북자는 3만 4천여명에 달합니다. 2000년 들어 한해 1천명 넘게 나오던 탈북자는 2009년에 3천명 수준까지 급증한 적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2019년에는 한해 1천명대를 간신히 넘겼고, 올해는 10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북한 김정은은 북중 국경을 완전히 봉쇄한 데 이어, 국경일대에 특수부대를 배치하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지뢰를 묻고, 고사기관총까지 배치했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함경북도 회령시 주민들과 연계하고 있는 취재 협조자의 말입니다.

협조자: 우선 1선에는 국경경비대가 있고, 2선에는 특수 부대가 있는데, 거기에 회령시, 온성군, 혜산시 등 국경을 끼고 있는 곳에 주둔시켜 놓았어요. 원칙은 국경경비대 하나만 가지고 국경봉쇄를 하지 못하니까, 2중 3중으로 해놓은 것이지요. 그리고 국경경비대가 돈 받아먹는 현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서로 감시하게 만들어 놨지요.

그는 “현재 회령시 온성군 지방에는 코로나가 그다지 심각한 편도 아닌데, 왜 북한 김정은이 국경봉쇄에 이상하리만큼 집착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특수부대는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조직한 최정예 특수부대인 폭풍돌격대(storm troopers)와 비슷합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정예부대인 폭풍군단을 조직해 독재권력 유지에 이용했습니다. 여기서 영감을 얻었는지 김정은도 북한의 폭풍군단을 조직하고 이번에 국경에 투입한 것입니다.

폭풍군단은 조선인민군 제465군부대, 제630 연합대부대의 위장 명칭을 가진 특수부대였으나, 2017년에 특수작전군으로 독립되었습니다. 대남침투와 적후방교란, 요인암살 등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가 국경에 배치되어 국경경비대를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면 김정은이 얼마나 북중 국경봉쇄에 사활을 거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탈북방지를 최고의 목표로 세웠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두만강 일대의 탈북 기도자들의 은신처로 되어 있던 회령시 강안동 수백세대의 집을 뒤로 철거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회령시당에서도 관철시키지 못했던 주택 철거가 2016년 한밤중에 갑자기 범람한 두만강 물에 모두 쓸려 내려가면서 실현되었습니다.

지금도 국경지역 주민들은 그 대홍수의 원인이 인재인지 자연재해인지 수수께끼라고 말합니다.

중국은 북중 국경지역에 철조망을 늘이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첨단 감시 장비를 도입했고, 북한도 철조망을 늘이고, 수만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막고, 지뢰를 매설하고, 최근에는 4신 고사기관총까지 배치해놓고 국경 완전 봉쇄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김정은은 10년만에 북중 국경을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봉쇄지역으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북한인권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100명도 되지 않는다고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소식통: 지금 하나원에 들어오는 탈북자가 80명밖에 없대요. 그것도 중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고, (북한에서 갓 나온)탈북자들은 얼마 없어요.

세계인권선언 제 13조 2항은 “모든 사람은 자국이나 다른 나라를 떠나거나 자국에 돌아갈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인민들이 살아갈 수 있게 보호해주는 의무가 있지, 자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김정은 3대 혁명역사를 가르치면서 “백두산 위인들을 따라 배우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탈북 도강만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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