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지바 유미코 씨의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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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원희

오늘은 재일교포 자녀로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가 40 년 간 살다가 중국으로 탈출, 강제 북송, 재 탈북에 성공해 일본으로 입국한 지바 유미코 씨의 마지막 얘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60년대 부모님을 따라 북송선을 탔던 귀국자, 지바 씨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숨어 살다 2003년 1월 산둥성 옌타이 항에서 80여명의 탈북자들이 배를 타고 남한으로 탈출한다는 정보를 듣고 출발할 배에 오르기 직전 탈북자들이 모두 잡혔습니다. 지바씨는 공안을 피해 다시 숨었지만 공안당국이 이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을 모두 잡아 드린다는 발표를 듣고 딸과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것이 염려되어 자수를 합니다.

지바 씨는 중국 공안당국이 자신은 물론 검거한 탈북자 80여명을 모두 강제 북송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를 했지만 결국 북한으로 강제송환됐습니다. 오늘은 북한으로 보내진뒤 다시 탈북 해 일본으로 입국하는 과정을 전해드립니다.

지바 씨는 중국 공안에 강제북송 반대를 위해 몇 번씩 자살을 시도 했지만 중국 공안국은 다 죽어가는 지바 씨를 결국 북송 시켜 북한 보위부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 부분을 얘기 할 때는 생각하기도 괴롭다며 말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보위부에서 의자에 꽁꽁 묶어 놓고 때리고 사람으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고문을 받으면서 공개 처형 시켜 달라고 악을 썼어요. 내가 이 국가 사회를 위해서 어떻게 무엇을 잘못 했느냐 김정일 김일성 받들면서 지금까지 충실한 것 밖에 없는데 내가 무엇을 잘못 했느냐 보위부에서 몰래 죽이지 말고 공개 총살해 달라고 악을 썼어요.

지바씨는 북한에서 아주 당에 충실한 인민으로 당의 방침대로 열심히 살다 같은 재일교포 즉 귀국자의 자녀가 너무 어렵게 사는 것을 보다 못해 외화 벌이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준 것이 문제가 되어 집과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긴 채, 지방으로 추방령이 내리고 감시를 당하자 중국으로 탈출을 했다 강제 북송된 것입니다.

독 감방 안에서 족쇄 묶여가지고 쓰러져 있었느니까 연폐 사건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북한에 가서는 말을 안 했어요. 왜냐하면 중 상류층 간부 회의에도 자주 참여를 했으니까 북한의 실정을 아니까 이 연폐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국이나 일본으로 가려고 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우겼어요. 탈북은 왜 했느냐고 해서 동기는 당신 네가 아니까 공개 총살해달라고 우겼어요.

귀국자 가정이었지만 지바씨는 평양에서 진행되는 행사에도 학생들을 인솔해 참여 했던 체육대학 교사 이었기에 보위부 에서도 그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고 또 보위부에서 조사 하다 숨지게 했다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다 죽게 된 사람을 병원으로 던지듯이 보냈다고 합니다.

다 죽게 된 사람의 혀는 나오니까 굉장히 길더라구요. 혀가 다 나오고 항문이 다 열려서 그래서 그해 5월20일 딸따리 같은데 덜렁 던져 숨 거두기를 기다리는데 동생들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동생들은 지바 씨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감시 속에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지바 씨가 보위부에서 고문을 받고 죽기직전 버려진 것도 가족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도록 손을 쓴 것 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중국에서 먼저 잡혔어요. 그때 아들이 노동 단련대에 수감되어 있어 엄마가 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 친척들이 간부에게 미리 손을 써서 병원에서 죽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병원에서 마지막 치료를 받고 동생 집으로 오니까 고문을 했던 보위부 사람이 지바 씨를 일부러 찾아 왔다고 합니다.

악착스럽게 고문하고 정말 짐승만도 못했던 보위부 지도원 놈이 우리 동생 집에 와서 ‘너 악질은 악질이다’. 연폐 사건에 대해 네 입에서 나왔으면 도와 줄 수도 없었다고 그 말이 친척들이 와이로 를 바쳤는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너 풀려나왔으니 진짜 솔직히 말해 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보위부 지도원은 옌타이 사건으로 북송된 사람들에 대한 소식도 전해 주었다고 하는데

다시는 살아 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 너 운이 좋은 것이라며 앞으로 나 잊지 말라고 협박하고 가더라구요.

그는 동생 집 에서 계속 치료를 받고 그해 8월 대의원 선거를 하기 위해 추방구역으로 갔습니다.

김정일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선거였어요. 선거를 해야 하는데 공민증도 없으니 재발급을 해야 하는데 서류가 가 있는 곳에 가야만 재발급을 할 수 있어 노동단련대에 있는 아들을 데리고 나와서 안전원들 감시 속 에서 추방 구역으로 보내졌어요.

지바씨는 추방구역에서 하루 임시 공민증을 받아 투표를 마치고 추방구역의 보위부 지도원을 만나 자신은 억울하게 추방되었으니 문제 해결을 할 때 까지 원래 살았던 신의주로 보내 달라며 증명서를 요구 했습니다.

증명서를 해 달라고 하니까 그것을 못해주겠다고 그렇지만 갔다 오는 것은 해 주겠다 언제 까지 오겠다고 말하라고 해서 그래서 한 달 후에 돌아오겠다는 해서 지장을 찍고 신의주로 가는데 그 길이 정말 국경 넘기 보다 더 힘든 다는 것을 알았어요.

보위부 처소와 곳곳에 초소가 있어 공문서 없이는 신의주로 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잘 알고 지내던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친구의 공민증에 내 사진을 부쳐서 아들은 친구의 동생 공민증으로 해서 아들하고 나하고 형제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내 친구는 공민증 분실했다고 해서 재발급 신청을 했구요.

다행스럽게 아들은 노동 단련대 에서 북송된 탈북자들로부터 어느 탈출 길로 가야 성공을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바 씨는 건강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탈북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들에게 군대 갈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마음도 약해지고 몸도 처참한 상태에서 아들보고는 엄마는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군 복무를 해야지, 북에서는 군 복무를 해야 사람처럼 인정이 되어요. 특히 남자들은... 그러나 아들은 군복무신청을 해 조았지만 거절당했다며 엄마가 처음에 우리한테 북한에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뜻을 알았다, 무조건 가겠다고 해서 아들의 힘을 믿고 준비를 해서 양강도 까지 가서 거기서 보천보로 가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 장백현을 통해 탈북에 성공했어요.

그는 두 번째 탈출은 중국에 탈출했다 북송당해 노동 단련대에 있던 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정말 아들 없었으면 못 했어요. 그만큼 자유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무엇을 잘못 한 것이 없는데 중국 감옥에 있었고 북한 감옥에서 그렇게 정말 단단한 아이로 만들어 졌어요.

지바 씨는 아들과 함께 중국에서 다시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딸을 만났습니다.

딸도 항상 엄마 유서하고 제 유서하고 머리맡에 놓고 공안들이 혹시 오면 자살하려고 독약 준비해 놓고 있었더라구요. 회사 부장님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 시켜 주셨어요. 고마운들 많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지바 씨는 중국에서 다시 치료를 받고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가려고 했지만 베트남에 있던 탈북자 460명이 집단으로 입국한 사건이 일어나 중국 당국이 다시 탈북자를 색출 하기 시작해 일본으로 방향을 돌렸던 것입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엄청 잡아들이고 탈북자 들이 진입할까보아 중국의 한국 영사관, 대사관 다 봉쇄하고 그런데 한국의 한 목사님이 일본에서 출생을 했느냐 맞는다고 했더니 자세한 사항을 일본으로 보내 일본의 민간단체 북한귀환자 인권과 생명을 지키는 모임 에게 전달이 되어서 베이징 일본 대사관을 통해 일본에 올 수 있었어요.

지바씨는 이렇게 일본으로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위해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어교육을 받고 저는 아직도 몸이 불편해 일본인 노인 들와 장애자들이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하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니까 이겨낼 수 있어요. 아들은 일본에 있는 한국회사 정식 직원이 다 되었고 딸은 일본어로 검정고시 보는 준비 하고 있고....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에 온 분들은 열심히 살면 되잖아요. 북한에 아직 남아 있는 분들이 불쌍하지 남아 있는 분들의 모습이 계속 눈앞 에 어른 거려요.

지바 씨는 이어 딸은 곧 대학에 들어갈 계획으로 부풀어 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