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오늘은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남한 행을 돕다 체포되어 4년여 기간 동안 옥고를 치룬 후 지난해 11월29일 석방되어 남한으로 돌아간 최영훈씨의 수감생활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알아봅니다.
최영훈씨는 남한으로 돌아간 후 오랫동안 수감생활과 감옥 안에서 재소자들로부터 구타당한 후유증으로 정신분열 증상을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최 씨는 지금은 많이 회복 되어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최영훈씨는 수감생활 중 신앙의 자유가 없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외국인 죄수들에게는 성경 읽는 것은 허용하고 있지만 이는 선전에 불과했다고 말했습니다.
최영훈: 성경은 중국인 죄수들에게는 볼 수 없게 합니다. 외국인 죄수들에게 성경을 보게 하는데 이는 하나의 선전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자아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특히 감옥 안에서 중국인 죄수들에게 선교하고 예배를 드리다 일반 재소자들로 부터 원인 모를 구타를 계속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최영훈: 지난해 8월 9일부터 중국 일반죄수들 서너 명과 예배를 계속 드렸습니다. 그런데 9월8일부터 강제로 끌려가 구타를 한 달 동안 계속 당했습니다. 교도관이 구타를 한 것이 아니라 일반 죄수들이 구타를 했습니다.
그는 이런 구타 사건을 교도관들이 알면서도 묵인했다며 이는 선교를 못 하도록 재소자들을 시켜 구타를 한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영훈: 교도관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 그냥 넘어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선교가 널리 퍼질까보아 교도관은 알면서도 침묵을 한 것입니다. 18:54 저는 뒤에서 시켰다고 생각 하는데... 왜냐하면 제 일기를 쓴 것 하고 감옥에서 찬양시를 쓴 것이 있는데... 그것을 미리 교도관에게 주면서 검토를 하고 석방될 때 달라고 했습니다. 다시 재 다짐을 했더니 준다고 했는데 제가 석방될 때 주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다 붓글씨를 쓴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교도관이 압수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무슨 종교적 자유가 있다고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올림픽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는 이어 중국 감옥에서는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가족들이 보낸 편지나 물품도 잘 전달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최영훈: 중국 감옥에서 편지를 하나 부치려면 3-4개월이 되어도 번역하는 기간이 그렇게 걸린다며 보내 주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편지가 온 것도 3개월이 지나야 줍니다. 저희 집에서 가족들이 보낸 것, 친구가 보낸 아무런 내용이 없는 우편엽서조차도 다 주지 않습니다. 제가 석방되기 전에 처남이 책을 보냈다고 합니다. 집에서 물건을 두 번 부쳤다고 하는데 모두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어 중국에서 조사 받을 때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처음에는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도 멀어지고 감옥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영훈: 재판받기 전까지는 북경에 있는 이 영배 총영사가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감옥을 옮기고 나서 한국정부에서 어떤 도움을 받은 것도 없고, 중국죄수들은 보통 60% 정도 수형생활을 하면 석방이 되는데 한국인 들은 그렇지 못하고, 저 같은 경우는 100분의 80을 살았습니다.
중국인 죄수들은 하루 14시간씩 심한 중노동을 하지만 한국인 죄수들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는 대신 하루 종일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영훈: 중국인 장기수 10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들과 같이 있고, 하루 종일 자유시간을 줍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굉장히 사람이 무능력해지고, 노동을 시키지 않지만 대신 조직적으로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점수를 매겨서 계속 감시를 하고... 무서운 곳입니다.
최영훈씨는 외국인들은 국제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지만 특히 한국인들은 중국의 장기수인 중범죄인들과 생활을 같이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영훈: (외국인들은) 한국인 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국제 감옥인지 몰라요. 한국에서는 국제 감옥으로 보는데 그곳에 있는 한국 분들은 감옥에서 제가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서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교민잡지에는 한국영사가 면회를 1주일에 한번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 으로 면회를 오는 것은 4개월에 한번, 3개월에 한번 정도입니다.
최영훈씨는 아직도 감옥에는 6명의 한국인들이 남아 있다며 이들의 소원은 베이징이나 상해에 있는 국제 감옥으로 이송되는 것과 이들 가족 끼리 서로 만나서 정보라도 나눌 수 있는 도움을 받기 원하고 있지만 한국 외교부는 이런 도움마저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영훈: 이들은 소원이 있는데... 법을 어겼으니 법 집행을 받겠다고 하는데... 국제 감옥인 북경이나 상해 감옥으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외교부에서는 가족 분들과 중국에 있는 분들이 연결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서 재소자들을 위한 모임을 가져야 하는데 한국외교부에서는 그 명단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최 씨는 남한으로 돌아와 이들을 돕는 활동을 다시 하기 위해 많은 탈북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 중 적지 않은 탈북자들이 다시 남한을 떠나고 있고 일부는 남한이 아닌 제 3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나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영훈: 탈북자들은 중국으로 나가고, 일본으로 취업한다고 나가고, 미국으로 나가고 있는데 특히 중국으로 다시 나갔다 다시 제 3국으로 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 문제로 떠난다는 탈북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최영훈씨는 이제 나날이 건강이 회복되어 가고 있어 다시 탈북자들을 돕는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영훈: 탈북자가 난민인데 인정 못하는 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올림픽 위원들을 이해 못합니다. 탈북자들과 함께 북경올림픽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 분들이 난민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또 한국정부에 필요한 것에 대해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동북삼성 지역에서 방황하며 숨어살고 있을 탈북자들에게 이번 겨울도 이겨내 그들이 원하는 남한행이나 제3국행에 성공하기를 빈다고 전했습니다.
최영훈: 우리 탈북 형제자매들 겨울나기를 이겨내십시오. 그리고 야생초처럼 밟혀도 밟혀도 피어날 수 있는 탈북 형제자매들이 되어주시면 제가 죽는 그 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워싱턴-이원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