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근 미국 워싱턴 지역을 방문해 중국에서 몽골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간 과정을 증언했던 탈북 대학생 이영수 씨의 두 번째 증언입니다.
어린 시절 식량을 구하기 위해 외삼촌과 두만강을 건너다 외삼촌을 잃고 혼자 중국 땅으로 들어간 이영수 씨는 간신히 친척들 만나 어쩔 수 없이 중국 땅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영수씨가 이렇게 힘든 결정을 했지만 중국의 친척들도 생활이 어려워 영수 씨를 다른 가정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영수: 조선족 친척들은 공부할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며 다른 곳으로 연결시켜 주었어요. 그 곳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얘기에 ‘배불리만 먹을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고 며칠 뒤 조선족 집사님이 저를 중국 북경아래 하남성으로 데리고 갔어요.
공부도 시켜주고 잘 먹여준다기에 따라 나섰지만 그 집 역시 형편이 넉넉지 못해 마음 놓고 있을 곳이 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영수: 그 집에 두 분이 일을 하셨어요. 형편이 참 어려웠어요. 제 나이 또래 아들이 둘 있는데 그 아이들이 집에 가라고 할 때 집에 가고 싶었지만 참고 견디면서 나가서 돈을 벌자... 그때 15살 이었어요.
이영수씨는 말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족을 찾아 그를 따라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영수: 한족이 처음에는 7원, 한국 돈으로 1천원도 안 되는 돈을 일당으로 주었어요.
이렇게 번 돈은 그 집에 그대로 모두 내 놓았다고 합니다.
이영수: 돈을 고스란히 드리니까 아이들도 형이라고 좋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노가다로 뛰면서 지내던 중 미국으로부터 선교사 한분이 오셨는데 그분을 만나 기독교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선교사와 자주 접촉하다보니 그분이 전하는 기독교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선교사가 중국 곳곳의 단기 선교를 떠날 때마다 따라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영수: 북한에서는 종교가 마약과 같다고 교육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저도 안 믿겨졌죠. 제가 노가다 생활, 막노동을 하면서 고통과 외로움을 달랠 수 없을 때 기도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분이 미국으로 가시기 전에 찬송가 반주기를 주고 가셨는데 그것을 들으면서 외로움을 달랬어요.
특히 중국에서 언제 북송될지 몰라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신앙에 의지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영수: 중국에서 외로움과 서러움 또 북한에 끌려가면 죽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 하고 불안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살았는데 예수님 믿으면서부터 담대함이 생겼어요.
이렇게 2년 정도 지나다 보니 그 선교사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이영수씨에게 공부를 할 것을 권유했지만 당시에는 공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영수: 제가 공부를 하다 잡혀 나가면 뭐하나 그냥 죽는 날 까지 배불리 먹다 죽자는 소원 밖에는 없었어요. 중국 땅에 건너온 목적이 하루세끼 배불리 먹는 것이 나의 소원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선교사는 배워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하고 간곡히 설득을 하자 이영수 씨는 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처음에는 이런 선교사의 의도를 의심까지 했었다고 전합니다.
이영수: 나 같은 사람을 데려다 키워주고 공부시키고 먹여주고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안기부에서 파송한 간첩이 아닌가, 혹시 나를 좀 키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그는 중국 땅에서 공부를 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갔는데 하루는 연변 지역을 잠시 다니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중국 공안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영수: 시내에 나갔다 뜻하지 않게 공안원 9명이 저를 체포 했어요. 나는 오늘 이곳에 왔는데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내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의심스러워하면서 공안에 연행되어 1주일간 잡혀있었어요.
그는 잡혀 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 하면서 간절히 절실하게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이영수: 그 때 갇혀있던 감방에 죄수한명이 들어왔는데 간수가 감옥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가서 너무 놀라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길이다 라고 생각을 했고 이 길이 하나님께서 여신 길이라면 나가겠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으로 감옥 문을 조심히 열고 두려워서 다시 들어왔어요.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다시 두 번째 들어왔어요.
그리고 3번째는 소리를 내면서 철문을 열고 허리를 펴고 복도로 걸어 나갔는데 나를 지키는 공안들이 지키는 방에서 TV를 크게 켜놓고 보고 있어요. 복도로 나왔는데 제가 나가는 문 앞에 정문이 연결되었는데 정문으로 나가기까지 공안원들이 있었는데 그 공안원 앞에 차가 한 대 막고 있어 공안원들이 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도망쳤어요.
감옥을 탈출해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2002년도에 탈북자 22명이 필리핀 대사관으로 들어갔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때 이영수씨와 함께 지내던 학생 들이 이 대열에 합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영수: 공동체 생활을 했는데 친구 두 명이 없어졌는데 어느 날 그 두 명이 텔레비전에 나왔어요. 그 마을 주변사람들이 선교사님이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았지 북한사람들인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인터뷰 하면서 북한 사람이고 남한으로 갑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저희들 피하지 않으며 다시 잡혀서 북한으로 가야 되는 급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공안이 들이 닥치기 전 탈출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추진을 하다 날짜를 계획보다 앞당겨 몽골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이영수: 선교사님이 중국을 떠나 몽골로 해서 남한으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우리를 인도 하시는 분이 계획된 날자 보다 빨리 우리를 데려 가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보름 정도 앞서 출발 했어요. 저희들이 몽골 땅에 도착했을 때 그때 100명이 넘는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저희가 사는 마을로 포위를 하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선교사님은 잡혀가시고 다른 중국 학생들은 조사를 받으려 실려 갔어요.
몽골 행은 모두 3명이 떠났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분증은 다른 사람 것을 빌린 것으로 사진을 보면 가짜 신분증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영수: 다른 방법이 없어 저희들은 신분증을 빌렸고 누가 보더라도 신분증에 있는 사람하고 저하고는 닮지 않았어요. 그런데 검문을 통과 할 때 그 사람들이 절보고 신분증을 보고 또 저를 보면서도 몰라보았어요.
이것은 기적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몽골 땅에 도착해 다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북한 사람으로서 난민임을 확인해야 하는데 다른 두 사람들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이영수 씨는 확인 이 안 되어 중국으로 송환될 위기를 맞게 된 것 입니다.
이영수: 몽골에서 저희를 신문하는 사람도 중국어로 제가 통역을 했어요. 그랬는데 심문이 끝나고 저한데 북한 사람이 아니고 중국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요. 저는 중국으로 다시 송환되어야 한다며 일행은 북한에서 온 탈북난민으로 신원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몽골수도에 대사관으로 가서 남한 여권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억울했어요.
자유의 땅을 눈앞에 두고 중국으로 다시 송환 될 것을 생각하니 정말 막막했다고 합니다.
이영수: 하나님 저도 살고 싶습니다. 조금만 가면 한국인데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두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는데 그리고 제 나이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 다니고 공부할 수 있는 자유의 땅 인데 저를 그 땅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영수: 몽골정부 사람이 다시 와서 저도 북한사람으로 확인이 되어 갈 수 있다고 그때 저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속으로 울었어요.
이영수씨는 남한에 도착해 두만 강에서 중국 땅에서 몽골 땅에서 수없이 많은 탈북자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께 수없이 약속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영수: 한국 땅에 도착해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땅이거든요. 죽어서라도 한번 가 보았으면 했던 땅 이거든요. 그들은 비록 이곳에 오지 못했지만 그들의 몫까지 제가 살겠습니다. 그들이 못했던 일들을 제가 하겠습니다.
워싱턴-이원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