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원희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오늘은 중국으로 탈출했다 강제 북송 당한 후 다시 탈북해, 중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숨어살고 있는 가명의 이순금씨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지금도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이나 동남아 3국을 떠돌며 남한이나 미국으로 들어갈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신매매 꾼을 따라 탈출해 증국의 한 농촌에서 몇 년째 숨어 살고 있는 50대 초반 이 순금 씨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이 순금 씨는 신변안전상 가명을 씁니다.
이 순금씨의 첫 번째 탈북은 식량난이 극심하던 지난 98년도, 역시 배고픔 때문 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한 기업소에 들어갔는데 그 기업소마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96년부터 배급도 주지 않고 기업소가 운영을 못하면서 기업소를 사직하고... 기업소에만 다니다 보니 장사를 할 줄 모르고 살기 힘들어 98년도 중국으로 가면 좋다는 소리를 듣고 넘어왔습니다.
그는 중국에 와서 인신 매매단 에 의해 한 남자에게 팔려가 신분증을 위조하다 4달 만에 중국공안에 잡혔습니다. 오래된 남의 신분증에 새로 찍은 이 순금씨의 사진을 부치다 보니 확연히 차이가 나더라는 겁니다.
어느 마을의 남자에게 팔려갔는데 그 남자의 친척들이 공안을 아는 쪽에 있어 신분증 발급하다가... 신분증 발급이라는 것이 남의 신분증에 내 사진을 붙이는 것 인데 그 신분증이 10년 된 다른 사람 신분증에 내가 금방 찍은 사진하고 다르잖아요. 그래서 들통이나 잡혀 갔어요.
그는 바로 다른 8명의 탈북자들과 함께 중국 단둥을 거쳐 신의주로 북송 당했습니다.
족쇄 채우고 넘어 갔는데 피검사하고 보위부로 다 이송되어 먼저 짐 검사부터 합니다. 그리고 여자보위부원이 몸에 귀중품이 있는지 8명을 방 같은데 놓고 몽땅 옷을 벗기고 일어났다 앉았다 를 10번 시킵니다. 막 못하겠다면 때리고 그 여자몇 년 동안 그런 일에 절어서 같은 여자 인데 여자 형편 안 알아주고.....
이 순금 씨는 이런 조사를 받은 후 감방으로 이송되었는데 여러 명이 함께 있는 감방에서의 고통은 먼저 배고픔 이었다고 말합니다.
막 숨 막히고 배고프고.... 그 고통이...통 강냉이와 미나리 한 줌씩 주는데 그것도 있나요 저녁 10시에 취침하고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좁은 감방에서 체조한 후 나가서 일하고 보위부 감방에서 그렇게 한 달 있다 직결소로 넘어갔습니다.
직결소에서 그 다음에 교화소로 다시 넘겨졌는데 이 곳은 지금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곳 이라 기억조차 하기 싫다고 이 순금씨는 전합니다. 직결소에 벼룩이 얼마나 많은지.. 낮에는 농장일 하고 김매고 하다 저녁에는 벼룩이 때문에 자지 못하고 이렇게 두 달 보내다가 교양소로 가서 ...지금 생각하면 끔찍해 너무나도 힘들어 월경자들 민족 반역자라고 하면서 엄하게 다루고 특별히 일시키고 ....
그러나 교화소에 있을 때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북한당국이 단순 월경자들을 선별해 특별 석방을 지시 했던 것입니다.
김 정일 지시 내려 월경자들 집으로 보낸다, 너무 뜻밖의 소식에 꿈같기도 하고 월경자만 모여서 토론회라는 것을 해요. 김정일의 배려에 의해서 나간다며 막 김 정일 장군 만세를 부르고....
하지만 막상 석방이 되어도 갈 곳이 없었다는 이 순금씨, 그는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기업소에 들어가 합숙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있던 아들은 남편의 여동생이 아이가 없어 맡아 기르기로 했기 때문에 가족 이라고는 형제들 뿐 이었습니다.
나오긴 했는데 기차타고 예전에 살던 곳 까지 나왔는데 집이라고 가보니 남들이 와서 살고 있어 할 수 없이 오빠 집에 갔는데 가족들이 깜 짝 놀라 옆의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있다가 .... 아무래도 집이 없고 형제들 집으로 왔다 갔다 하니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어 다 헤어져서 형제들보기에 창피스럽고 내가 개척을 하자니까 개척할 힘이 없고 정말 못 하겠더라구요 다시 동생 집으로 간다며 나왔어요.
그는 동생 집으로 가지 못하고 아는 사람을 찾아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고 아는 사람 집으로 가다 북한에서도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기로 했습니다.
양강도 혜산에 와서 혜산의 이미 알던 집에 와서 도움을 받을까 하고 왔다가 안 되겠기에 다시 마음먹고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마침 매매꾼 여자를 만나서 단번에 말 했어요 못 살겠으니 가겠다고 .... 그래서 매매 꾼이 같이 집결소부터 교양소에 있던 여자인데 그 여자와 만나 뒤도 안돌아 보고 다시 넘어왔습니다. 교화소 에서 고생 하다 김정일이 지시를 내려서 집으로 갔다가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2000년 10월 달에 다시 넘어왔습니다.
이 순금 씨는 2년 만에 매매 꾼 에게 부탁을 하고 북한 탈출을 위해 스스로 따라 나섰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매 꾼을 통한 중국으로의 탈출은 안전하고 아주 쉬었다고 합니다.
중국으로 올 때는 매매 꾼에 의해서 편안히 왔습니다. 따로 돈을 쓴다거나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고 매매 꾼이 여자인데 모집을 해서 2명이 넘어왔습니다. 그 매매 꾼은 중국에서 넘겨주고 돈을 받죠.
순금 씨는 먼저 탈북 했을 당시는 자신의 나이를 속여 팔려갔는데 두 번째 탈북 했을 때는 당시 탈북자 들이 많았던 농촌 지역에서 나이가 많고 몸이 성치 못한 중국인에게 팔렸다고 전했습니다.
98년도 처음에는 38살 때 인데 28살로 가장을 해서 5000원에 팔리고 2천년도 에는 농촌인데 50이 훨씬 넘은 병신 영감한테 팔았는데 4000원에 팔렸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무래도 안 되겠기에 위험하고 해서 도망 친 것 이죠.
이 순금 씨는 두 번째 탈북 후 이렇게 팔려가 도망을 쳤지만 결국 다시 농촌지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게 됩니다. 이 순금 씨의 얘기 다음시간에 계속해서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