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쫓기는 탈북자들의 건강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등지에서 숨어 다니며 쫓기는 생활을 했던 많은 탈북자들이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인 고통이 질병으로 까지 이어 질 수 있다고 남한의 정신과 의사 전 우택 교수는 염려합니다. 또 실제로 중국에서 2번 강제 북송을 당하면서 가슴조리며 살았던 탈북 여성 가명의 김명자 씨는 남한에 정착한지 5년여가 다 되어 가지만 지금도 가끔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3국의 탈북자들 오늘은 탈북자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명자: 경찰에 막 쫓기는 경찰이 보고이 그것이 몇 년가더라구요 그런 꿈을 한번 씩 꿀 때 마다 잠을 깨서 정신적으로, 몸이, 막 힘 들어요.

북한을 탈출해 제3국 등지를 숨어 다니며 몇 년씩 걸려 남한으로 입국한 탈북자들 중에는 남한에 정착 한 후에도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탈북자 들이 있습니다. 지금 막 들으신 것은 탈북자 김명자 씨가 털어놓은 사연입니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전우택 교수는 이처럼 탈북자들의 정신 건강과 탈북자관련 통일문제 등을 오랫동안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전 우택 교수는 중국이나 3국에서 경찰들에 의해 언제든 체포될 수 있고 또 강제송환 이라는 정신적인 압박이 탈북자들에게는 아주 큰 고통 이라고 지적 합니다.

전우택: 탈북과정에서 겪는 정신적인 고통이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헤어지는 일 들이 있는데 이것이 또 커다란 고통이 될 수 있고 그래서 북한 내 에서의 어떤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것과 남한에서 들어오기 전까지 3국에서 겪게 되는 충격이 굉장히 큽니다. 남한에 들어온 다음에도 모든 것이 안정되고 좋은 상태로 변한다고 해도 다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한다는 문제에 대해 정신적인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실제적으로 탈북자들의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타나 탈북자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전우택: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들은 그런 어려움들이 다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에 불안한 상태 들이 유지 됩니다. 그래서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놀란다던지 중국에서 있었던 어려움이 또 예상치 않게 또 생길 까 보아 굉장히 조심스럽게 긴장된 상태에서 생활을 한다든지 또 자꾸 우울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잠도 깊이 못 자게 되고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나 헤어진 가족들 때문에 자꾸 울게 되고...

전 교수는 지난 2001년에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이어서 몇 년 후 같은 사람들을 다시 조사 했습니다.

전우택: 그 때 한 10명중 3명 정도가 정신적인 어려움을 갖습니다. 그런데 3년 뒤 같은 분들을 다시 찾아다니며 조사를 했더니 어려움 갖고 있었던 30% 정도의 탈북자 중에서 거의 90%가 3년 안에 거의 벗어날 수 있었고 남한에 들어와 3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아주 극소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정신적인 고통에서 헤어 날 수 있었고 정신적인 질병으로 까지 연결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시 전 교수의 말입니다.

전우택: 어려움이 생긴다 해도 그것이 그분들의 생활 자체를 완전히 어렵고 포기하게끔 만들게 하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남한에서 그런 문제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만 남한에 들어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동시에 더 노력하고 해결해야 한 문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미리 알고 있고 인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탈북 여성, 김명자 씨의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보죠. 김 씨는 지난 1998년에 탈북 해 중국에서 2번 강제 송환되었다 다시 탈출해 동남아시아 지역을 통해 2002년 남한으로 들어갔습니다. 동남아 지역에서도 경찰에 잡힌 경험이 겹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탈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어땠어요?김명자: 저는 중국에 친척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 보다 쉽게는 나왔어요.

제일 힘든 것은 어떤 것 이었어요? 김명자: 아무래도 친척이라고 하지만 변방지대라 친척도 그렇고 많이 겁이 났어요.

중국에서는 얼마나 있었어요? 김명자: 4년 정도요.

그러면 4년 동안 공안에 잡히지는 않았어요? 김명자: 두 번 잡혀 나갔다 왔어요.

그러면 잡혀 나가 정치범 수용소에 갔어요? 김명자: 정치범 수용소는 아니고 2천년에 북으로 잡혀 나갔는데 그때 조금 다른 때 보다 풀려가지고 정치범 수용소는 안 가고 그냥 직결 소에 갔었어요.

북송 후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힘 들었을텐데요. 김명자: 두 달 있었는데 다시 오겠다는 생각 밖에 없어 정신적으로 버텼을 겁니다. 죽으면 안 되니까 어쨌든 그래서 입을 악물고 다시 오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그럼 다시 탈출해 그때 그 친척집으로 왔어요? 김명자: 다시 중국에 와서는 아는 이모가 있어서 그 이모 집 에서 그 때부터 한국에 오겠다고 준비하다...

네,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안감이 컸겠어요. 김명자: 아주 많았어요. 그러다 한국에 오려고 하는 1주일 전에 다시 잡혔어요. 그때 다른 사람들 우리 집에 2 사람인가 있었어요. 갑자기 들이 닥치는 바람이 3명이 잡혀 나갔죠. 그래서 제가 처음에 신의주로 단둥으로 잡혀 갔는데 그 때와 똑같은 곳으로 잡혀갔어요.

두 번째라 심한 벌은 안 받았어요? 김명자: 교화를 보내겠다고 하더라구요. 북한에서 교화는 정치범 수용소와는 다른 곳인데 교화라고 해요. 거기 보내겠다고 하다가 운이 좋게 안가고 고생을 하다나왔어요.

그러다가 한국에 바로 오게 되었어요? 김명자: 시간이 좀 걸렸어요.

동남아시아를 거쳤나요 아니면 직접 갔나요? 김명자: 저는 태국으로 해서 왔어요. 오다가 또 버어마 에서 잡혀서 다시 돌아 변방까지 와서 거기서 경찰에 넘기겠다고 하는 것을 중국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10일 만에 다시 나와서 라오스로 해서 태국을 거쳐 왔어요.

한국에 들어와서 어땠어요? 김명자: 한국에 와서 꿈을 많이 꾸었어요. 여기 온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하다라구요. 그냥 막 쫓기는 꿈 꿈속 에서도 쫓기면서 막 마음을 졸이고 있고...

그리고 가족걱정 때문에도 그렇죠? 김명자: 집에 부모님들 다 계시기 때문에 저 혼자 나와 그런 것에 대해 굉장히 예민한 측에요.

또 악몽으로 해서 질병 같은 것은 없었나요? 몸도 아프거나... 김명자: 중국에서 몇 번씩 잡혀 나가니까 없던 병도 막 생기는 것 같고 자꾸 붓는다던지 피곤하고 해 서 힘을 못 쓰고 힘든 일은 못 하겠어요. 그래서 한약도 먹고...

병원진단은 받아 보셨어요? 김명자: 몇 번 받았는데 특별한 것 보다 거기서부터 오면서 생긴 것 같아요. 감기도 자주 걸리고.

하지만 이런 정신적인 문제는 주변의 도움으로도 얼마든지 받아 극복 할 수 있다고 전 교수는 강조 합니다.

전우택: 누구나 조금씩 격을 수 있는 정신적인 어려움인데 사실 많은 탈북자 분들은 남한 에서 태어나서 생활하는 분들보다 더 건강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 할 수 있는지 탈북자 김명자 씨는 또 어떻게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