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강제 북송후 재탈북, 여러차례 인신매매, 이순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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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원희

중국으로 탈출했다 강제 북송 당한 후 다시 탈북, 여러 차례 인신매매를 당한 이 순금 씨의 두 번째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98년도 처음에는 5000원에 팔렸고 매매 꾼은 2천 년 도에 영감한테 4천원에 팔았다가 그곳을 도망치게 해서 또 4천원에 팔았어요.

신변안전상 가명을 쓰고 있는 순금씨는 현재 40대 후반의 나입니다. 그는 지난 1998 년도 30대 때 배가 고파 북한을 탈출해 팔려갔다 4달 만에 강제 북송되었습니다. 조사를 받고 교화소 에서 석방된 후 2천 년도에 매매 꾼을 따라 다시 탈출했습니다. 매매 꾼은 이 씨를 팔아넘길 때 마다 돈을 받았지만 이 씨에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 나요 그것은... 돈 받아 가지고 일 전 한 푼도 ...돈은 자기네가 나를 위해 나를 안전하게 해주었기에 응당히 받아야 것이죠.한다는...

나이 많은 중국남자에게 중국 돈 4천 위안에 팔려갔던 이 순금씨는 당시 탈북자들이 많은 곳이라 위험을 느껴 그곳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또 매매 꾼이 소개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천식에다 병신이었습니다. 그 남자가 거의 죽게 되자 모두 옆에서 좋은 곳에 알선해 주겠다고 해서...

그는 중국농촌 지역에서 병든 중국인에게 팔려 거의 6년 동안을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로 부터 신용을 얻게 되자 이번에는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이 자기의 오빠를 소개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 여동생이 나를 눈독 드리고 있다 자기 오빠에게 데리고 와서 병신한테서 나와 지금 동거하고 있어요. 원래는 여자를 얻었다가 헤어진 남자인데 중국 사람치고는 듬직하고 괜찮아요. 아직 흠잡을 때는 없는데....

이 순금씨는 중국 땅에서 7년 만에 겨우 경제적 육체적으로 조금 안정을 찾았지만 공안을 피해 마음을 졸이며 숨어사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불안해했습니다.

공민증도 없어 위험하니까 지금 나와 같이 동거하는 남자도 걱정하고 위험한데 위험한데 하면서 한국 가서 신분증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지만 다행한 일은 시골이기 때문에 공안들이 불시에 검열을 하더라도 미리 알려 주고 있어 지금까지는 무사하다고 합니다.

원래 내가 여기 살면서 조선족이라고 해 옆에 사람들이 다 그런가 하고 있어요. 공안의 갑작스럽게 나오지는 않는데 마을에 와서 공안이 검열하고 그런다면 간부들이 모두 자기들이 한 일이니까 (가짜 호구만들어준것) 연락을 해서 피하라고 해줍니다.

그러나 이 순금 씨는 하루속히 남한으로 들어갈 길을 찾고 있다며 신분증이 없어 언제 다시 북송될지 모를 다는 위기감과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남한에 아버지, 어머니 쪽의 가족들이 있어 꼭 찾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큰 아버지가 전쟁 때 월남 했다고 들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 문건을 다 교체해서 행방불명 된 것을 다 고쳐 죽은 것으로 가짜로 문건을 해 놓았습니다. 14:24 그런데 사실은 남조선에 갔어요. 그래서 옆집 사람들이 남한 친척 찾는 것 보고도 찾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큰 아버지도 찾고 싶고 우리어머니가 전쟁이 일어나면서 위병대로 북조선에 왔다고 했습니다. 어머니하고 어머니 큰 오빠가 북조선에 나와 있고 나머지 친척은 모두 남조선에 있습니다.

그는 탈출할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가보지도 못했다며 혹시라도 남한의 어머니 친척 중에서 이산가족 찾기로 어머니를 찾는 가족들이 있을 것 같아 꼭 남한으로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평양에서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막 듣고 산소도 찾아보려 했는데 그때는 평양까지 여행증도 내지 못하고 차가 자주 정전되고 다니지 못하니까 진짜 살기 힘들어 어머니 찾을 새도 없었습니다. 정말 숨 막힙니다 생각하면

이 순금 씨는 지금도 매매꾼들에 의해 팔려오는 북한 여성들이 있고 또 이미 팔려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도 있다며 그들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금도 아 지금도 있죠. 주변에야 있습니다. 나와 같은 마을에 있는 여자도 남자가 농촌 남자인데 병신입니다. 나 같은 매매꾼에 팔려 와서 사는데 그 여자도 두 번씩이나 도망쳤다가 길이 없으니까 다시 돌아왔어요. 그 다음에 또 하나 우리 마을에서 좀 넘어가 조선여자가 있는데 그래도 그는 남자는 길림에 있을 때 서로 자기들이 만난 것 같아요 여자는 아이도 낳고 신분증은 못했지만 가짜 호구는 하고 있습니다.

이 순금씨는 탈북 할 때 따라 나섰던 매매 꾼이 지난해에는 이 순금씨가 사는 중국 시골 동리로 왔다며 매매꾼의 활동에 대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으로 작년에 시집을 왔어요.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의 일체 행동을 다 알게 되었죠. 다른 지역의 매매꾼들이 서로 전화를 통 해서 오는데 이 여자는 보름, 12일씩 계속 집 비우고 다녀요 그래서 내가 그 여자보고 나를 이렇게 팔았는데 계속 이일을 하다 잘못되면 나도 잘못되고 돈 몇 푼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는 아니라고 친척집 갔다 왔다고 이번에만 갔다 오고 다시는 안가겠다고... 친척집이 아니죠. 또 매매하러 갔지, 여자 여럿 팔아먹었어요. 그것 보고는 내 조선여자들이 넘어 오는구나 그것을 알았어요.

이 순금 씨는 중국의 농촌으로 팔려오는 북한 여성들은 북한 소식도 듣지 못하고 살고 있지만 다른 곳 보다는 비교적 안전해 강제북송 당한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며 다행 스러워 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어 소식은 못 듣고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북한의 형편을 알고 있습니다. 좀 멀리 떨어져 감추고 살아서 그런지 또 여기는 농촌 마을이라 간부들이 좋아요 간부들이 감싸주고 서로 도와주어서 그런지 아직 그런 소리 못 들었어요.

그는 이어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탈출해 시골로 숨어드는 것이 좀 안전하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중국 공안이 언제 돌변할지 몰라 항상 불안해 하루속히 한국으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가고 싶은데 한국가려면 그래도 손에 돈을 쥐어야 하지 않아요. 그래서 음식을 해서 팔아요.

언제 남한으로 무사히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고 있어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며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