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13살 때 처음으로 북한을 탈출했다 여러 번 북한과 중국 국경을 넘나들던 소년이 홀로 중국 주재 캐나다 대사관으로 진입해 남한으로 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5년전 얘깁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지금은 남한의 대학생으로 미국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김진성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지금도 가명을 쓰고 있는 탈북자 김 진성 씨는 지난 98년도에 처음으로 배고픔과 무서움 때문에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중국으로 간 가족들을 찾기 위해 혼자서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나이로 13살 때 나왔습니다. 그때는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서 먼저 중국에 가신 부모님을 찾기 위해. 저 역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북한을 떠나 두만강을 건널 때 98년 8월이었는데 얕은 데로 건넜습니다.
어린나이에 첫 탈출길 치고는 성공 이었지만 중국에는 처음 가는 길이라 너무 무서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바로 강을 건넜을 때 엄청 큰 산 들이 여러 겹으로 있었어요. 그래서 그 산을 넘고 넘어 어떤 한 집 을 발견했는데 그 집 앞에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바위에 한자로 쓰여진 붉은 글씨를 보고 너무 놀라서 혹시 그것이 사람피로 쓰여 진 것이 아닌가 싶어서 무서워서 바로 산을 넘어 북한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북한으로 다시 건너간 김 진성 군은 소식 이 없는 엄마를 찾기 위해 다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다시 엄마 찾으러 간다고 같은 장소로 건너 그때는 무사히 그곳을 통과해 엄마 있는 곳으로 찾아 갔었습니다.
기자) 두 번이나 같은 곳으로 통과했는데 북한 보위부나 중국공안에 걸리지는 않았는지요?
그곳이 경비가 험한 곳 이었는데 제가 눈치 있게 잘 피해 가지고 또 경비대들이 교체하는 시간이 있어요. 그 시간을 이용해서 제가 눈치 있게 건너서 제가 잡히지는 않았어요.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 그 험한 길을 두 번씩이나 탈출을 했지만 만나지 못하자 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엄마가 있는 집으로 찾아 갔었는데 그 집에서 어머니가 북한으로 다시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다시 중국에서 북한으로 나갔어요. 엄마 찾으러....
기자) 북한에서 엄마를 만났어요?
그 집에서 거짓말을 해서 어머니는 그곳에 계속 계셨는데 저는 다시 홀로 북한으로 갔었는데 그때 마침 어머니와 같이 중국으로 갔던 누나를 북한에서 길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북한에서 1주일 있다 다시 누나랑 같이 엄마 있는 곳으로 갔어요.
기자) 그러면 가족이 다 모인 건가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구요 누나랑 어머니하고 저랑 이렇게 같이 살다가 누나하고 어머니가 먼저 중국에 가시고 저는 나중에 얼떨결에 가서 얼떨결에 누나를 만나서 엄마를 찾게 되었어요
김 진성군은 이렇게 중국으로 가서 거의 5년 동안을 숨어 지냈습니다.
기자)중국에서 5년 동안에 키도 크고 어린이 티를 다 벗었겠네요.
네 그렇죠, 제가 북한에서 탈출할 때는 키가 1미터 40정도 밖에 안 되었었어요 지금은 1미터 70가까이 되고 있는데요. 엄청 거인같이 컸습니다. 기자) 중국에서 다 큰 것은 아닌지요...
중국 에서는 1미터 60센티미터까지 크고요 여기(한국) 와서 한 10센티미터가 큰 것 같아요
모든 탈북자가 그렇듯이 중국에서 시시각각으로 위험한 순간을 맞았고 강제 북송을 당했습니다.
수없이 겪었습니다. 수없이 겪었지만 수없이 탈출하고 잡힌 경험도 있고 잡혀서 다시 북한을 떠난 경험이 있습니다.
기자) 그럼 우리가 말하는 강제 북송?
맞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나이가 14살 이었어요. 99년도였는데 어른들은 그렇게 혹독하게 때리고 고통을 주었지만 어린아이 들은 그냥 멋모르고 배고파서 간 것이 단순한 이유이기 때문에 특별히 때리거나 어른들과 함께 가는 노동현장으로 끌려가거나 그러지는 않고 어린이들만 가두어 두는 구치소 북한 에서는 꽃 제비 구호소라고 하죠. 그 쪽으로 끌려가서 다시 도망해가지고 중국으로 왔습니다.
기자)그렇다면 김 진성씨는 어떻게 캐나다 대사관으로 진입을 하게 되었는지....
2002년 당시 중국주재 여러 국가 대사관으로 탈북자들이 진입한 사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2002년 3월에 스페인 대사관으로 25명이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6월 말까지 69명의 탈북자들이 베이징에 있는 독일 미국 캐나다 일본 그리고 한국 대사관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대사관으로 뛰어 들기 까지는 NGO,비정부 기구나 종교 단체 들의 기획망명이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 진성 는 중국에서 본 한국의 위성 텔레비전 방송 덕분에 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중국에서 있으면서 중국말도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학교를 다닌 적도 없었고 또 특별히 한국이나 미국에서 오시는 좋은 분 들을 만나서 도움 받고 그랬던 적도 없어요. 제가 있던 집에 한국 위성이 (위성 텔레비전)있었어요 그래서 그 위성을 보면서 마침 그때 2001년 2002년도 한참 대사관을 통해서 북한사람들이 망명할 때였는데 그 현장을 목격하면서 저도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과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으면 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또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모방해서 캐나다 대사관까지 진입했습니다.
기자) 엔지오라든지 선교사의 도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중국 돈 단돈 200원 들고 같이 있는 동생이랑, 친동생을 아니고 알고 있는 동생이랑 기차표를 끊어 북경까지 와서 북경에서 무작정 대사관을 찾아가서 무작정 진입했습니다.
기자) 단둘이서요?
네 그때가 17살 때였는데요
기자) 특별히 캐나다 대사관을 선정한 이유는요
특별히 뭐 어느 대사관을 들어가야 겠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냥 한국 대사관이 좋겠다 라는 생각에 가던 중에 제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캐나다 대사관을 본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캐나다 대사관 마크가 담장에 써 있었어요. 택시를 타고 가는데 그런데 마침 택시가 그 신호들에 걸려서 바로 그 앞에 섰었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보는 대사관이고 해서 그곳에서 내려서 구경하고 알아보고 들어 갈 수 있으면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내렸었어요.
김 진성 씨 가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캐나다 대사관 담장을 넘는 얘기는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