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 오늘은 중국을 거쳐 난민판정을 받고 지난 5월 미국으로 들어온 탈북자 신찬미 (가명) 씨의 중국에서 팔렸다 탈출한 얘기를 들어봅니다.
신찬미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코디언을 배워 장차 아코디언 연주자나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꿈 많은 10대 소녀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중국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러다 중국 친척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신찬미: 셋째 오빠가 중국을 드나들면서 한 번씩 교회를 갔다 오면 옷도 예쁜 것을 가지고 오고 이것저것 북한에서 상상도 하지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물건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오빠가 가지고 온 물건을 쓰면서 북한보다 중국이 훨씬 좋다는 말을 듣고 2001년 12월경에 처음 중국으로 가보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 공안들이 탈북자들을 잡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어 친척집에서 조차 찬미 씨를 숨겨주지 못했습니다.
신찬미: 중국 친척이 자기 집에 북한 사람을 들이면 경찰이 와서 잡아가고 중국 돈 5000원씩 벌금내면서 과오를 범하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친척이라고 해도 도와 줄 수 없다며 하루 밤 자고 그냥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거였어요.
친척집에서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소 외양간에서 밤을 지냈다고 합니다.
신찬미: 소 외양간이 지저분하고 너무나도 어지럽습니다. 외양간에서 그날 저녁을 주는데 쌀밥에다 달걀을 소금에 절인 것을 주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하얀 쌀밥을 먹어보았는데 다음날 친척이 두루두루 짐 챙겨주는 것을 가지고 북한으로 왔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배고픔에 시달리자 중국에서 먹었던 쌀밥이 생각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40일 만에 찬미양은 다시 두만강을 넘었습니다.
신찬미: 소 외양간에서 먹던 흰쌀밥이 너무나 상상이 되고 그래서 어머니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또 중국으로 넘어 갔어요. 그때 제가 16살 때니까 친척이 나이도 어리고 중국에 와서 살 수 없으니 북한에 그냥 있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중국이 좋다는 맛이 들고 보니 북한에 다시 가기가 싫어서 제가 세 째 오빠와 함께 연변을 떠나 산둥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찬미 씨는 산둥성에서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도 보고 싶고 북한도 어느 정도 변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북한으로 갔습니다.
신찬미: 1년 정도 신앙생활을 시작하다가 북한의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오빠와 함께 북한에 나갔습니다. 1년이 지났으니 북한이 좀 변화가 있겠지 하고 나갔는데 가보니 더 말이 아니고 중국에서는 하루세끼 북한에서는 보통 생일날도 그렇게 먹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북한은 옥수수 가루 한 컵에다 풀을 한 배낭 뜯어서 그것을 넣고 죽을 쑤어 먹으니 너무나도 힘들고 나무가 없어 불을 지필 불소시게 조차 구할 수 없어요.
거기다 밖에 나 갈 수가 없이 집에 숨어 있으려니까 더 힘이 들어 결국 다시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신찬미: 밖에 나가 다니면 주위의 사람들이 신고하면 붙잡혀 가니까 집에 숨어있다 다시 안 되겠다하고 2002년 12월 달에 중국으로 다시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중국과 북한을 오갔지만 여전히 숨도 못 쉴 수 없는 숨어 사는 생활이라 셋째 오빠와 남한 행을 시도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오빠와 헤어져 다른 길로 중국을 탈출 하려다 이들 남매는 모두 잡혔습니다.
신찬미: 오빠는 북경 한국 대사관으로 가고 저는 내몽골을 통해 9명이 북송되었는데 9명중 저 혼자만 살아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북한에서 3년형을 받고 여자들 감옥에 갔는데 그 교화소 안에 보통 750명을 수용하는 데 모두 여자들 감옥인데 하루에 3-5명씩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저와 함께 북송된 3째 오빠가 영영 죽어서 다시 나오지 못할 정치범 수용소 감옥에 가서 그 감옥에 가면 누구도 찾을 생각을 하지 말고 면회도 시켜주지 않고 죽었다고 생각해야 되요.
찬미 씨는 지금도 감옥 생활은 정말 떠올리기도 두렵다며 미국에서 기자회견 할 때나 교회에서 경험을 얘기 할 때 마다 어떻게 그런 생활을 견딜 수가 있었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감옥생활을 하고 다시 중국으로 탈출했는데 그만 한족 에게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중국에 나와 있던 큰 오빠와 연락이 된 것입니다.
신찬미: 나이 50되는 사람에게 중국 돈 2만원에 팔려갔어요. 저희 첫째오빠 전화번호를 알아 가지고 전화를 해 오빠에게 연락을 하니까 어떻게 해서든 도망쳐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빠가 저에게 오겠다는데 오면 오빠까지 잘못될 것 같아서 제가 중국에서 살아 중국말을 할 수 있으니까 남편 되는 사람에게 어디 놀러가자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그 사람이 잠깐 어디 갔다 오는 도중에 제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쳐 나왔어요.
중국인으로 부터 도망쳐 택시를 잡아타고 마구 달려 오빠를 만났습니다.
신찬미: 7시간 택시 잡아타고 오빠 있는 곳 까지 왔어요. 그때 택시비가 700원 이었는데 그 돈이 오빠에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중국에 선교사로 나온 한 집사님이 오빠에게 돈을 700원 주어서 택시비를 물고 오빠를 찾아 제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이원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