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주간기획 동독난민 이야기오늘은 동독 아이흐스펠트(Eichsfeld)의 비밀경찰에 관한 얘기를 소개해드립니다.

독일의 작은 산간마을 아이흐스펠트(Eichsfeld)는 독일 땅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될 때까지 이 마을은 동독의 남서쪽 끝에 있는 국경마을이었습니다. 서독 땅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동독 국경수비대의 삼엄한 경계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높게 쳐진 철조망이 국경선 역할을 했고 수 십 미터 뒤쪽에 다시 마을을 끼고 철조망 담장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국경수비대는 두 철조망 사이에 세워진 감시탑에서 국경지대를 감시했습니다. 이 모두가 주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외지인들도 이 마을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아이흐스펠트에 살고 있는 하넬로라 벤젤 (Hannelore Wenzel)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딸 크리스틴 (Christine Wenzel)이 전하는 말입니다.
Christine: You could fill in application forms to leave the country, and everybody who filled this in from the very minute was surveyed by Stasi.
외국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는데요, 제출하는 순간부터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또 비밀경찰과 사전에 합의가 없었던 사람들은 곧바로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은 뭔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죠.
비밀경찰은 마을에서 불순분자들을 솎아내는 작업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위험한 사람들이 국경지대에 살지 못하도록 한 겁니다. 비밀경찰은 이들을 국경에서 멀리 덜어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이들은 간단한 짐만 들고 한밤중에 트럭에 실려 갔습니다. 비밀경찰은 정권을 비난하는 가벼운 농담도 눈감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처벌하기 위해 비밀경찰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Christine: We had only one guy in the whole block having a telephone that was of course a Stasi guy turned out afterwards.
우리 가족은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요, 아파트 단지 전체에서 전화가 있는 집은 한 집밖에 없었어요. 전화 쓸 일이 있으면 그 집에 가서 신세를 졌었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주인이 비밀경찰 끄나풀이었어요. 비밀경찰이 전화내용을 다 엿들었던 건 당연했죠. 집안 벽에도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또 병원이나 학교에 있는 개인 신상 자료도 비밀경찰의 손에 모두 들어갔습니다. 주민들도 비밀경찰의 첩자 노릇을 했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해서 그랬던 사람도 있었고, 첩자노릇이 재미있거나 비밀경찰이 쥐어주는 돈이 좋아서 그랬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싫든 좋든 비밀경찰에 협조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해 나가기가 어려웠던 점이 컸습니다. 특히 직장에서는 비밀경찰과 끈이 닿지 않으면 승진하기 어려웠습니다.
비밀경찰은 이렇게 동독 주민들의 가정과 사회를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감시하게 하고 친구가 친구를, 교사가 학생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Christine: when you talk to somebody, before the wall came down, you have been living with those people for years and years.
수 십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라 서로 의심하지 않았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정권을 비난하는 농담도 하곤 했는데요. 통일이 된 다음에 주위 사람들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독 정권아래서 맺었던 인간관계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습니다.
벤젤은 비밀경찰에 대해 소문만 들었지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동독정권 아래서도 별로 무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누가 감옥에 끌려가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엄격한 통제 사회에 오래 살면서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사회에서 산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연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