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야당인 한나라당은 북한의 인권 유린 사례들을 기록하는 ‘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를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독에서는 이미 1961년에 잘츠 기터 인권기록 보존소를 설치해서 동독 정권이 저지른 인권 유린 사례들을 철저히 기록하고, 통일 된 후에는 처벌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남한 야당 한나라당의 김문수 의원은 지난 8월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북한 인권법‘이란 이름의 이 법안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아래에 북한 인권기록보존소를 새로 만들자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인권 유린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자는 겁니다. 이 법안은 인권 유린에 앞장선 자들을 남북한이 통일된 후 엄격히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문수 의원의 제안은 독일의 경험에서 따온 겁니다. 독일은 2차대전이후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돼 있다가 1990년 통일됐습니다. 40년이 넘는 분단기간동안 공산주의 독재정권아래 있던 동독에서는 갖가지 인권유린이 자행됐습니다.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고, 동독을 몰래 탈출하려다 국경수비대가 쏜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서독의 11개 주 검찰청들은 이 모든 사실들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잘츠기터 중앙 기록 보존소 (Die Zentrale Beweismittel- und Dokumentationsstelle der Landesjustizverwaltungen in Salzgitter)를 1961년 11월에 설치했습니다. 그해 8월 동독이 일방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설치한 뒤 장벽을 넘다 희생되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동독과 국경지대에 있는 잘츠기터라는 도시에 이 기록 보존소를 세운 겁니다.
이 기록 보존소는 동독의 판사들과 검사들이 저지른 불법 행위와 동독 당국이 저지른 살인행위들을 기록했습니다. 또 죄수들을 고문하고 학대한 간수들과 동독 정부에 협력해 첩자나 밀고자 노릇을 한 사람들의 명단도 기록했습니다.
각각의 사례가 정식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관련 증인들과 증거들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판사의 최종 결정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집된 자료와 기록들은 서독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서독당국은 서독 형법이 동독 주민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원칙아래 이 모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전독문제 연구소 (All-German Institute) 소장을 지낸바 있는 데트레프 쿤 (Detlef Kuhn)박사의 말입니다.
Kuhn: 서독당국은 동독에서 저질러지는 범죄를 기소해야 하는 의무를 늘 지녔습니다.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서독의 입장은 그랬습니다. 1980년대말에 서독 정치권 일부에서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요, 그 주장대로 기록 보존소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다른 검사들이 계속 그 일을 했을 겁니다.
서독 형법은 범죄행위를 저지르거나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이 사건이 발생한 후 나중에 서독 국민이 되더라도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동독에서 발생한 범죄행위는 통일된 후 서독 검찰의 기소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동독 정부는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를 없애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동독 당국이 법에 따라 정당하게 취하는 조치까지 기록 보존소가 인권유린으로 몰고 간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가 있는 한 동서독간의 정상적인 관계는 불가능하다고 협박했습니다. 동서독이 서로 내정간섭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 1972년 기본조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독도 기본조약을 체결하기 10년 전에 세워진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상태였습니다.
서독 헌법재판소도 1973년 판결에서 동독은 법적으로 외국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에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데트레프 쿤 박사는 잘츠기터 기록보존소 동독의 인권 유린을 상당히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범 수용소에서 죄수들을 학대하던 간수들도 혹시라도 통일이 된 다음에 자신이 처벌받지나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국경수비대들도 탈출 동독인들에게 총질을 할 때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다고 쿤 박사는 말했습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후 검찰당국은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의 자료들은 바탕으로 동독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기소했습니다.
김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