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신] “이해와 배려가 탈북청소년 사회적응 앞당겨”
2010.12.16
안녕하세요? 희망통신 이예진입니다.
남한에서는 아파트 앞 놀이터에 나가보면 오늘 처음 만난 또래와 오래된 친구처럼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인 탈북청소년과 남한 청소년들은 서로 만날 기회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 쉽게 다가서려고 하지 않는 편이죠.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는 지난 1년 동안 남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함께 어우러져 등산이나 농촌활동, 역사탐방, 자원봉사 등을 통해 서로의 진심을 터놓는 기회를 마련해왔는데요. 오늘 그동안의 활동보고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지켜보시죠.
한은정: 발표를 맡게 된 계절학교 한은정입니다. 8월에는 강화도에 있는 평화전망대에 갔습니다. 그 날은 비가 와서 전망대에서 북한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가 그치면서 구름이 사라져 북한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고향생각이 나서 기분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인사하며 발표를 시작한 은정이는 중학생인데요. 남, 북한 출신 학생 가운데 가장 어립니다. 올해 3월 남, 북한 출신 청소년이 함께한 첫 번째 프로그램인 인왕산 등반에서 봤을 때 보다 언니, 오빠들과의 교류를 통해 부쩍 성장한 느낌이었습니다.]
한은정: 경기여고 언니들이 조심스럽게 저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동안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을 물었습니다. 북한에서 살았던 이야기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말했습니다. 저도 처음 듣는 북한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언니는 저희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보이는 언니도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 언니, 오빠들이 고마웠습니다. 우리들 이야기로 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니, 오빠들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그날 밤에 어떤 언니가 생일이었는데 초코파이로 빵을 만들고 축하해주었습니다. 바로 저 언닌데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까르르 잘 웃는 은정이는 이제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든 남한의 언니들에게 아픈 얘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유문정: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여자고등학교 1학년 유문정입니다. 주말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청소년들을 만나며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기쁨을 느끼게 되는데 주말프로그램을 하며 만나게 된 탈북청소년들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것들은 저희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북한을 떠난 이유,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의 아픈 기억들, 고향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들, 그러나 우리가 탈북청소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탈북 청소년에 대해 안타까운 부분을 알아보고 불쌍하게 쳐다보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탈북청소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사실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정이는 6명의 탈북청소년 친구들을 통해 탈북청소년들의 정착현황을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 탈북자라는 이유로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과 차별을 당하거나 차별과 문화적 충격으로 자신감을 잃고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청소년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요. 문정이는 이 같은 원인으로 북한에 대한 정보 부족과 잘못된 편견을 꼽았습니다.]
유문정: 너무 많은 것들을 한 번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탈북청소년을 만나며 우리 스스로 변화하였습니다. 아니 변화했다는 표현보다 탈북청소년들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탈북청소년들과 친구가 되어가며 우리 스스로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발전이 앞으로 통일 한국에 바탕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계속해서 탈북청소년 김혜령(가명) 학생이 지난 1년간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김혜령: 한국에 온 지 4년이 되어갑니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요.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꿈이 패션디자이너, 가수 등 아주 많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이해도 안 가고 친구들과 말도 안통하고 학교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외로웠습니다. 그러다 방학 중에 주말 계절학교를 알게 되었는데요. 남한 청소년들과 계절학교 때 만난 탈북 청소년들과 만나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남한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걱정과 달리 처음엔 서먹했지만 만날수록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혼자가 아니라 6명의 진정한 친구가 생겼습니다. 점심에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요.
[혜령이는 외로웠던 학교생활도, 그래서 방황하던 지난날도 모두 담담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이 됐습니다. 그리고 꿈을 위해 오늘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겁니다.]
박영호: 탈북청소년들을 만날 때 너무 신기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서 왔으니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저희 탈북청소년들은 더욱 다가가기 힘들어 집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조금 어색할 뿐입니다. 앞으로 북한인권시민연합을 통해 남북청소년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처럼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학교, 민간단체, 복지관 등이 더 많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조금 모르는 것이 큰 차별이 되기도 하는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탈북자들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 자리에 함께한 남한 청소년들처럼 함께 기다려주고자 하는 남한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죠.]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 진지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역력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이런 노력들이 남북의 심리적, 문화적 통합에 예행연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 북 출신 청소년들의 교류를 격려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한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은 진솔한 아이들의 대화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예진: 직접 발표하는 아이들을 보시니까 어떠셨어요?
학부모: 우선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으로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의 고통이 느껴지고요.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그렇지 못한 부모님도 계실 텐데 그 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 어른들이 같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 아이를 보면서 제일 감사하는 것은 활동상황을 통해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성숙함이 생겼다는 거예요.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준비하는 자세, 지금은 뭔가 할 수 없지만 앞으로 그 탈북학생들과 긴 여행을 가야 하는데 무엇을 준비할까 하는 자세를 읽을 수 있었어요.
[남. 북한 출신 청소년들의 교류는 탈북청소년들에게만 변화를 불러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한 청소년들에게도 역시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죠.]
한은정: 언니들과 물놀이도 하고 만나 얘기도 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친해가는 방법도 알게 되고, 언니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한국에 대해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많이 알게 되었어요.
홍율희: 1년이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났고, 1년밖에 안 남아 아쉬워요. 처음엔 어색하고 못 다가갔는데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서리라: 다른 아이들이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유문정: 그들이 많다, 2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어요. 많은 분들이 남한에 계시구나하고 느꼈고, 아이들이 아직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가 미성숙 하구나라고 느꼈고요. 제가 나중에 친구들이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고 싶습니다.
[1년을 함께 한 은정이, 율희, 리라, 문정이를 포함한 남. 북 출신 청소년 3, 40명이 다양한 체험활동을 함께 하며 느낀 점들은 다 다르겠지만 서로에 대해 알게 됐다는 점만은 같겠죠.]
김재욱 (재현고등학교 교사): 불쌍해 보이고, 없어 보이고, 무식하고 그런 편견들이 완화되고, 오히려 좀 더 마음이 넓어지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커졌죠. 저희 동아리 활동하는 아이들이 사실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부분을 접하고 하면 이 아이들이 주축이 될 시대에는 통일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재현고등학교 김재욱 선생 역시 아이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은 어린 아이들이지만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안찬일: 너무 감동받았고요. 앞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첫 발을 내딛는 좋은 발표를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중, 고등학생들인데 대학생이나 박사급보다 더 좋은 정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예진: 남북 청소년간의 교류가 왜 중요하다고 보세요? 안찬일: 10대지만, 통일의 주역이기 때문에 통합과 통일에 대해 많이 논의하고 문화가치를 공유한다면 다가올 통일에 별 문제없이 잘 될 거라고 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기에 2시간 반은 너무 짧았습니다. 발표를 모두 마치고 아이들이 사진 찍고 수다 떨기에 빠져 있는 사이, 1년 동안 아이들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이영석 팀장을 만났습니다.]
이영석: 보고회가 끝나면 더 친해지더라고요. 돌아보고 서로의 관계가 얼마나 더 깊어졌는지 정리해보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탈북청소년들에겐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남북청소년들이 같이 기획하고 진행하거든요. 처음엔 안하면 안 되냐고 하다가 친해지고 나니까 ‘제가 해볼게요.’ 하면서 자기가 직접 참여하니까 지금은 서로 하려고 해요. 남한친구들은 탈북청소년들은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성친구로 사귀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며 상담할 정도로 마음의 문을 연 것 같습니다.
[아직은 공부 때문에 남. 북 청소년 교류에 많은 참여를 하지 못하는 남한 청소년들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는데요. 아직 남한에는 남. 북 청소년이 살을 맞대며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희망적인 일이겠죠.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