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미국 아시안 식품 시장 석권한 Lee Brothers 이승만 사장


2007.08.01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워싱턴에서 차로 1시간쯤 달리다 보면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에 위치한 미국 최대 아시안 식품 유통업체인 리 브라더스 본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2층 건물 아래층엔 수많은 가공식품을 한데 모아 미국 전역으로 내보내는 창고가, 그리고 위층엔 사무실이 들어서 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한인으로서 미국에서 아시안 식품시장을 석권한 리 브라더스 이승만 회장을 만나봅니다.

미국에 와서 사업을 시작한지 31년 만에 종업원 1400명, 연간 매출액 6억 달러 규모의 대형 사업체를 일군 이승만 회장은 요즘도 여전히 매일 서 너 차례씩 창고에 내려와 제품 제고 현황을 일일이 챙깁니다.

회장님께서 처음에 미국에 오신 것이 언제쯤이었죠?

이승만 회장: 제가 미국에 처음 온 것은 1968년도에 공부하러 왔습니다.

어떻게 해서 사업을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이승만 회장: 공부하러 왔다가 유신이 발표되면서 총선이 당겨지니까 1972년에 한국에 (선거에 출마하러) 갔다가 눈을 다치는 바람에 선거에 출마하지도 못하고 다시 미국에 오게 됐는데 다시 공부를, 그때 석사과정에 있었는데, 하려다가 내가 학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를 하려면 돈도 있어야겠다 싶어서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서 그래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네. 그렇군요. 그럼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 아시안 식품 분야에 뛰어드신 계기가 있습니까?

이승만 회장: 74년도에 다시 미국에 들어와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동물 장난감을 취급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까 언어 장벽도 있고 더욱이 미국 사람들이 하는 거니까 자금쪽이나 사회관계 등 도저히 그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미국사람이 손 안대는 것을 하자고 생각하니까 먹는 사업을 해야겠다 그래서 식품 산업을 하게 된 동기입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실 때 많이 어렵지 않으셨나요?

이승만 회장: 그 당시 제 고향이 강원도 강릉이니까 어머니가 현금을 보내면 소진이 빠를 것 같으니까 마른 오징어를 보내줬는데 그때 우리 한국의 실정이 수출이라는 것이 오징어 정도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그걸 받아다가 여기 소매상에 몇 군데 다니면서 팔았더니 굉장히 인기도 좋고 사람들도 원하고 해서 아하 비즈니스가 이런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식품을 하는 것을 더 굳혀 가지고 식품을 하게 됐습니다.

사업을 계속 확장하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이승만 회장: 뭐 어려움이 많죠, 우선 사업하는데 제일 어려운 것이 자금인데. 한국에서는 친척이나 친구한테서 돈을 꾸지만 미국에서는 신용을 쌓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외상으로 사서 잘 갚는다든가. 예를 들어 자동차를 월부로 사서 조금씩 조금씩 돈을 갚아나가면 그게 조그만 일이지만 신용이 돼서. 신용만 있으면 담보가 없이도 신용으로 돈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비즈니스의 천국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나라는 미국밖에 없는데 사업을 하는데 돈이 해결이 되면 사업이 뭐가 어렵겠어요. 내 생각엔 반은 성공했다고 보는데.

초창기에는 오징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현재 몇 품목이나 취급하시나요? 북한 제품도 취급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이승만 회장: 지금 저희회사가 취급하는 품목이 대략 12000가지가 되는데 이 물건이 세계 30여개국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북에서도 길림성을 통해서 가져오지만, 백두산 고사리라고 이름 붙여서 나오는 것이 있어요. 그게 이북에서 처음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지금 백두산 고사리는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연하고 맛도 있고. 또 한국산이니까 한국사람 입맛에도 맞고.

백두산 고사리 말고 현재 취급중인 북한 산품은 없습니까? 앞으로 더 확장하실 계획은요.

이승만 회장: 이북도 내가 그래서 어떡하면 식품을 가져오면서 내가 식품을 가져오는 것도 그렇지만 도움이 될까 해서 한번 갔는데 여러 가지 시설이 워낙 빈약해서 수산물 같은 것도 많이 있는데 그걸 가져올 만한 여건이 안 됩니다. 냉장 냉동고를 돌릴 만한 전력도 없고 시설하기도 굉장히 어렵고. 우선 기반시설이 안 돼있으니까 수산물도 좋은 게 많은데 가져올 여건이 안 돼죠. 그것만 되면 더욱이 다른 나라서도 가져오는데 우리민족 것이니까 더 사주고 싶죠.

그 동안 교육사업 등 많은 봉사활동을 해오신 것으로 아는데요. 북한 동포들이나 탈북자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계획하고 계신 것은 없나요?

이승만 회장: 저는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같은 동포라는 의미에서. 그래서 몇 년전에 미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됐을 때도 북한 선수들이 왔을때 거기에 제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물질적으로 제가 후원을 했고 앞으로도 될수 있는한 순수하게 돈이 잘 쓰여진다고 하면 제가 형편이 닿는 데까지 북한에 도움을 많이 주려고 합니다.

고향이 강원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란 회장님께 북한은 좀 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승만 회장: 우선 크게 보면 같은 민족이고 더욱이 강원도는 반은 북한이고 반은 남한 아닙니까. 안타깝죠. 같은 나라가 반으로 나눠져 있고 같은 고향이 갈라져 있으니까 남다르게 더 애틋한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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