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법륜스님 “지원결정후, 모니터링 요구해야”
2007.05.23
워싱턴-장명화

북한은 극도로 폐쇄된 사회입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에 관한 정보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북녘주민들의 일상을 상세하게 전하는 소식지를 펴내 남한, 일본, 미국 등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남한의 불교 단체인 정토회 산하 ‘좋은 벗들’입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최근 미국 워싱턴에 사무실을 차린 ‘좋은 벗들’의 이사장 법륜스님을 모셨습니다. 지난 1980년대에 남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도 한 법륜스님은 2002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평화와 국제이해부문의 수상자로 선정된바 있습니다.
법륜스님은 과거 인도 천민마을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등 주로 해외 구호활동에 정력적이었는데, 어떻게 북한문제에 뛰어들게 됐습니까?
지금 남북 간에는 사상, 이념, 제도, 종교, 국부 등이 다 다릅니다. 공통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으려면, 결국은 5000년 역사에 기초를 둘 수밖에 없다. 분단이라는 것은 잠시고, 오랜역사동안 단일민족, 단일국가로 이루어져왔다. 이런 것을 통해서 통일의식을 갖게 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에서 중국 만주지역에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답사하고 조사하기 위해, 매년 한 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 안내를 담당한 중국 조선족분이 ‘북한에 식량이 없어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일부는 굶어죽기도 하고, 아이들이 영양실조상태라서 키가 제대로 크지도 않고 아주 심각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북한이 조금 어렵게 산다는 것은 알지만, 뭘 그렇게까지 되겠냐? 이렇게 생각해서 믿지 않았는데, 그 다음에 제가 다시 갔을 때 그분이 더 심각한 이야기를 했고, 저는 또다시 받아들이지 않았죠. 그러자 그 분이 저를 배에 태워서 압록강변, 그러니까 중국의 집안 쪽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 북한쪽 만포 가까이를 죽 올라가는데, 거기서 저는 초라하게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귀로만 듣던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겠군요.
네. 그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내가 저 먼 인도까지 가서 아이들을 돕는다고 하면서, 바로 내 동족의 아이, 바로 내 이웃에 있는 아이의 고통도 내가 알지 못했구나! 하는 깊은 참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아이를 도우려고 그 아이를 불렀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더라고요. 고개를 떡하니 숙이고 말이죠.
그러니까 옆에 있던 분이 ‘조선에서는 구걸할 자유도 없어요.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배를 강변에 대달라고 하니까, 국경이라고 못 댄다고 합디다. 그때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국경이 도대체 뭔가? 내 앞에는 가난한 아이가 있고, 나는 그 아이를 도울 음식이나 돈이 있는데, 국경이란 이름 하에서 그 아이를 도울 수 없지 않은가?’ 이런데서 내가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돌아와서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대에 처음 간 게 언젭니까?
1995년입니다.
‘좋은 벗들’은 지난 1990년대 말에 중국 동북3성에 거주하는 북한 식량난민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중국 내 북한식량난민은 30만 명이 넘는다고 했는데요. 최근에는 중국 내 북한난민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2005년에서 2006년 겨울에 저희들이 99년-2000년 사이만큼 샘플을 많이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2500개 마을을 조사했는데, 이번에는 한 500여개 마을을 조사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서 숫자를 내보니까, 한 10만여 명이 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도 북한의 식량위기가 과장됐다, 아니다 하는 논란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위기,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해에 북한에 대홍수가 있었습니다. 그 홍수피해가 아주 컸습니다. 그러나 미사일발사, 핵실험 등 군사안보문제가 부각되면서 북한의 홍수 피해나 농업생산량의 감소 등이 그만큼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원래 북한의 식량사정은 나쁜 편입니다. 예년 같았으면 벌써 2-3월에 아사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심각했었는데, 2.13 합의가 있고, 전체적으로 북미관계가 개선된다는 분위기에서 소위 ‘외부에서 식량이 들어올 것이다’라는 루머가 북한에 많이 돌았어요.
그렇게 되자, 첫째는 매점매석을 했던 사람들이 식량 값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초기에 조금 식량을 풀었습니다. 또 북한당국이 2월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일부 군량미를 풀었습니다. 4월에는 소위 ‘비축미’라고 하는 ‘2호미’라고도 부르는데요, 전쟁이 났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비상식량인데, 그 부분을 주민들에게 일부 풀어서 식량 값이 오르기는커녕 2월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식량가격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었는데, 밖에서 들어온다, 들어온다던 식량이 안 들어가자, 5월부터는 식량가격이 약간 오르기 시작해서 지금 800원하던 게 850원까지 올라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좋은 벗들’이 최근 발간한 < 오늘의 북한소식>을 보면 7월1일부터 식량이 다시 배급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하던데요?
북한당국이 7월 1일부터 식량배급을 하겠다고 공고를 하는 것은 식량문제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는 북한 안에 지금 식량은 거의 바닥이 났고요, 만일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다시 아사사태가 도래할 위험을 지금 안고 있습니다. 마침 한국에서 5월말부터 40만 톤 지원식량의 일부가 들어간다고 하니까, 이것은 북한의 아사사태나 혼란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제사회는 사실 도움이 필요한 북한주민들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외부지원이 정작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가고 있지 않다는 우려가 있지 않습니까?
네. 그 말은 일부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일부는 맞지 않습니다. 북한은 농민들이 식량을 생산하면, 일단 농민들 먹을 것을 제합니다. 나머지를 정부가 수매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전체 주민에게 배분을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배분순위가 있습니다. 1순위가 평양 시중심부에 살고 있는 고위관료와 그들 가족입니다. 2순위가 군인, 경찰, 보위부 등 안보에 관계되는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 3순위가 대기업이나 국영기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4순위가 일반노동자와 그 가족들입니다. 1순위, 2순위는 우선적으로 배급이 이루어집니다. 식량이 부족하면 3순위에 배급이 제대로 안됩니다. 4순위는 지난 십년 동안에는 거의 배급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배급제가 붕괴됐다’하는 말은 이 4순위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외부지원이 들어오면 방금 말씀하신 그 순서대로 돌아간다, 이 말입니까?
외부에서 지원이 들어오면, 1순위, 2순위는 외부에서 식량이 들어오던 들어오지 않던,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이 되는데, 그 배급양이 아주 적게 공급되죠. 그래서 일부는 부족분에 대해서 군대나 평양의 사람에게 일부가 갈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3순위에 배급이 될 수밖에 없죠. 식량 (지원)이 몇 십만 톤밖에 안되면 3순위까지 내려가면 거의 식량이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4순위 사람들이 식량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족한 식량이 전체가 다 지원이 되면, 4순위까지 충분히 내려가는데, 식량은 100만 톤이 부족한데, 지원하는 양은 20만 톤, 30만 톤밖에 되지 않는다면, 배급순위가 낮은 쪽에까지 배급이 안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럼, 법륜스님이 생각하는 대안은 결국 ‘많이 주어야한다’ 이겁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면, 4순위에게 이 식량을 준다고 하더라도 부족합니다. 그러면 3순위 사람들이 어차피 굶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굶어죽지 않는 최소한도의 식량 정도에서 부족분은 우선적으로 줘야 됩니다. 또 식량의 질보다는 우선 양을 확보해주는게 필요하지 않느냐고 봅니다. 충분한 식량이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아사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소위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죠. 그러나 현재같이 절대량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모니터링’이라는 것은 결국은 다른 부분에서는 누군가가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는 큰 효과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워싱턴을 방문하면, 미 국무부 관리들을 자주 만나는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2.13합의 이후 대북 지원에 대한 분위기가 변한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나?
미국에서는 6자회담의 진행과 관계없이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지원한다. 는 인도주의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북한도 지원받을 수 있는 지원대상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시, 미국 법에 규정된 ‘모니터링’의 조건이 있습니다. 이게 북한에서 제대로 안 받아들여진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그 이유는 북한은 북한대로 전시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려를 하는 거예요. 상호조건이 잘 안맞는거죠. 미국에서는 지원할 용의는 있지만 지원할 요건이 안 된다고 해서 몇 년간 지원이 안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북미관계가 좋아지면서 미국에서도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렵다면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지난 연말부터 계속 표명하고 있거든요.
조건이 맞지 않더라두요?
아니요. 모니터링 문제만 해결이 되면 지원을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6자회담이 중요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원칙은 6자회담하고 관계없이 지원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6자회담의 진행에 이 문제가 자꾸 연계가 돼서, 차일피일 날짜가 뒤로 가지 않습니까? 회담에 참여한 사람들은 회담을 어떻게 성사시킬거냐에만 관심이 있지, 지금 배고픈 민중들은 안중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점은 비판받아야 된다고 봅니다. 6자회담을 성사시켜서 북한에 식량지원을 하려들지 말고, 6자회담의 진행과 관계없이 해야 됩니다. 북한에 지금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이 굶어죽고 있나 아닌가. 이걸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식량지원의 여부를 정해야합니다. 나아가 식량지원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북한 쪽에서 모니터링을 요청해야합니다. 그런데 지원할지 말지도 결정을 안 해놓고 자꾸 모니터링문제만 들고 나오니까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도주의적인 원칙을 지키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지난 2004년부터 펴내고 있는 < 오늘의 북한소식>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여성, 농업, 교통, 식량사정, 사건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상세한 정보를 싣고 있어서 미국, 일본, 남한등지에서 인기가 높다고 듣고 있다. 어떻게 정보를 취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희들이 북한동포들도 돕고 북한난민들도 돕고, 또 북한인권을 위해서도 활동한 게 지금 만 10년이 넘잖습니까? 사람이 어떤 같은 일을 한 10년하게 되면, 아는 사람도 많아지게 되고, 또 여러 가지 경험이 쌓이게 되죠. 그러다보니까, 북한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저희들이 북한을 해치려고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북한을 비판할 것은 확실하게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다보니, 북한 안에서도 이런 일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등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방된 사회라면 아무것도 아니죠. 북한이 개방되지 않은 사회지만, 그 안에도 의식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정보를 우리가 수입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북한사회가 이만큼 변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약에 십 년 전 북한, 이십 여 년 전 북한이라면 이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취득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여전히 통제사회에 있지만 북한주민들의 의식이 그만큼 바뀌었고, 통제 속에서도 북한사회가 그만큼 옛날보다 자유로운 활동이 넓어져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RFA 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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