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 북한억류 국군포로 송환위원회 정용봉 대표
2007.05.30
워싱턴-장명화

지난 28일은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였습니다.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군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국경일입니다. 남한에서는 이와 비슷한 날로 현충일이 있습니다. 메모리얼 데이에는 보통 워싱턴 인근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고 전몰장병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펼쳐집니다. 메모리얼 하루 전날에는 실종 미군과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전통적인 행사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RFA초대석, 오늘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 억류돼있는 국군, 그러니까 한국군 포로 문제를 남한과 미국사회에 생생하게 알리는데 지난 십여 년 이상을 보낸 재미한인 정용봉 박사를 모셨습니다. 정 박사는 1958년 미국에 와서 대학교수를 지낸 후 개인사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나라은행' 이사장으로 있으며, '북한 억류 국군포로 송환위원회'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정 박사는 미국과 남한을 오가며 국군포로 송환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대표적인 인물인데요, 혹시 한국 전쟁 때 군인이었습니까?
정용봉: 제가 한국 전쟁 때 미군부대의 보급창에서 일했습니다. 미군 24사단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군으로 가게 됐습니다. 한국군에서 소위로 임관돼서 최전방으로 배속됐습니다. 그러던 중 금화 사천지구에서 전투를 하다가 부상당했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 후 어떻게 되었나요?
정용봉: 많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왼쪽이 내골절이 됐어요. 왼쪽 다리의 뼈가 다 부서져서 수도육군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그때 수도육군병원이 한국의 마산에 있었는데, 마산에서 한 일 년 2개월 정도 치료받았습니다. 병원에 있다가 나중에 제대했죠. 다리가 나서 제대를 한 뒤 유학생 시험을 치고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생활하시다가 어떤 계기로 국군포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정용봉: 한국에서 나온 이후에, 군에서 하도 고생을 해서, 다시는 군 생활도 하기 싫고해서, 미국에 와서는 한 5-6년 동안 학교에서 죽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뒤에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느라 한국에 국군포로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에 제가 텔레비전을 보니까 조창호라는 사람이 이북에서 도망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사람이 포로로 잡힐 당시에 소위였는데, 43년 만에 북한에서 도망나온겁니다. 그런 조씨가 이북에 아직도 많은 국군포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군포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제가 최전방에서 전투를 했을 때, 많은 저의 친구들이 포로가 됐었습니다. 실종이 됐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포로가 된 것이죠. 이 중에 제 아주 친한 친구도 몇 사람이 포함됐습니다.
조창호 소위는 이 년 전에 정박사의 도움으로 미국의 연방하원 건물에서 국군포로 실상을 알리는 증언회에 참석하기도 했었는데요, 지난해 말 세상을 뜨셨지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정용봉: 네. 그래요. 정말 그래요. 사실은 작년 12월에 제네바에 있는 인권이사회가 열렸을 때 조창호씨와 제가 가서 증언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때 조창호씨가 너무 몸이 아파서 제 발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상을 떠났죠.
조 소위는 북한에서 오랜 노역으로 얻은 지병이 악화되어서 76세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북한에 현재 살아있는 국군포로들도 나이들이 꽤 많지요?
정용봉: 네. 네. 지금 살아계신 분들의 나이가 제 나이 위거나 아래입니다. 제가 금년에 80살입니다. 지금 북한에 잡혀있는 국군포로들도 80넘은 사람들도 있고, 80이 조금 못된 사람들도 있죠. 대부분이 저희들 나이입니다.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20대의 나이였으니까요. 이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 다 죽었어요. 이북에서 도망 나온 사람들 중에 국군포로들의 딸들이 있습니다. 그 가족들이요. 이분들을 만났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국군포로들이 살아있긴하지만, 치매도 걸리고, 문밖출입도 제대로 못하고 해서 거의 사람노릇을 못한다고 합니다.
지난 몇 년간 국군포로 송환문제에 남달리 열심이셨는데요, 남한의 국군포로 문제가 크게 해결된 것으로 보진 않는다는 견해가 많습니다만...
정용봉: 왜 이런 문제가 생겼냐? 제가 그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연구를 하고 고심하면서 검토해봤는데요. 근본적으로 이 (남한) 사람들의 철학문제입니다. 지금 집권자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은 내전이다” “우리 한국 사람끼리 싸운 동란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그렇지가 않잖아요? 국제적으로 이북은 인민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 돼서 하나의 국가로 완전히 독립돼있지 않습니까? 유엔에도 가입돼있고. 그런데도 이 남측사람들은 하나의 내전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우리 민족끼리 싸우다가 잡혀갔는데, 뭐 그것가지고 얼굴 붉혀가면서 싸우고 하면서까지, 회담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국군포로문제 해결에 성의가 없어요. 또 조금 더 과격한 사람들은 “한국 6.25전쟁은 통일전쟁인데, 이 적화통일전쟁을 방해한 것은 미군이다" ”그 앞잡이가 한국군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사상이 지금 현 정부에서 이 국군포로문제에 적극성을 띄지 않는 큰 이유입니다.
현재 국군포로가 몇 명이나 북한에 남아있다고 보십니까?
정용봉: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들이 이제는 다 죽었어요. 남한 국방부에서 지난 2005년에 발표했을 때 한 546명의 국군포로가 살아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동안에 한 2-3년 지났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을꺼구요, 또 대다수가 80을 넘었잖아요. 남한에도 80살 넘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이북은 여러 가지 생활조건들이 더 나쁘지 않습니까? 몇 년 지나면, 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거예요.
그래도 몇 명이라도 남아있는 국군포로들을 고향으로 데려오기 위한 대안은 있습니까?
정용봉: 이걸 적극적으로 할라치면, 북한하고 전쟁 치르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남한에서 원조를 할 때 조건부로 하면 됩니다. 북한 측더러 “당신들 떼만 쓰지 말고, 다 죽어가는 사람들, 얼마 안남았는데, 그 사람들 보내주면, 원조를 더 주겠다”고 하면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정동영씨가 통일부 장관할 때 그런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오긴 했습니다. 남측에서 납북자하고 국군포로 논의를 함께 하자고 했더니, 북측에서 “무슨 납북자가 있느냐? 전부 제 발로 걸어왔는데, 언제 우리가 잡아왔느냐?”그러면서 회담자체가 무산 돼 버렸어요. 이번에 새로 통일부 장관된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또 했더니, 북측에서 ‘국군포로니 납북자따위 이야기를 하면 회담을 할 수 없으니까 이름을 ’전시 중에 행방불명된 자‘에 대해서 의논하자’ 이렇게 나왔어요. 그러니까 남쪽에서 그걸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내가 “미친 XX들.. 이런 게 어디 있냐‘고 화를 냈어요.
왜 이게 문제가 됩니까?
정용봉: 그렇게 되면, 이북의 책임을 추구하고, 이북에서 국제규약을 위반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없게되는겁니다. 탈북자라던지, 국군포로라는 이름을 안 쓰고, ‘전시 중에 생사불분명한자’라고 하면, 북한측은 이들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남측에서 이걸 받아들인 겁니다.
지금도 국군포로로 북한에 살아있을 친구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정용봉: 제가 같은 전우 아닙니까? 전우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까지 북한에 잡혀서 있는 그 분들께 뭐라고...참 미안하고 말할 수 없이 죄송합니다. 전 참 운이 좋아서 부상을 당해서 죽지 않고, 또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는데... 지금 이북에서 처량하게 남쪽 하늘 쳐다보고 죽어가는 전우들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하여튼 남측에서도 노력 을 하고 있으니까 실망 말고, 그래도 때가 돼서 운이 되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너무 낙심마시고, 그 날을 기다리시라고 그렇게 밖에 이야기할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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