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의 숨은 증인 김성애의 사망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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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 내 GP(감시초소)에 대해 12일 오후 상호검증에 나선 가운데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에서 남측 대표 육군 대령 윤명식과 북측 안내 책임자 육군 상좌 리종수가 악수를 하고 있다.
남북 군사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 내 GP(감시초소)에 대해 12일 오후 상호검증에 나선 가운데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에서 남측 대표 육군 대령 윤명식과 북측 안내 책임자 육군 상좌 리종수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미 방송을 들어 아실 것 같지만, 지난 12일 남북 사이에 역사적인 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남북이 서로 철수하기로 합의한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 11곳에 대한 상호 현장검증이 이뤄졌는데 이날 오전에 남쪽 군인들이 북한 감시초소에 올라가 다 확인하고, 오후에는 북한 군인들이 남쪽에 내려와 폐쇄를 확인했습니다.

남북한 군인들이 공식적으로 비무장지대를 건너가 가로 지르며 다닌 것은 1953년 휴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11개 초소를 확인하느라고 비무장 지대 지뢰구간에는 오솔길이 11곳이 만들어졌고, 그 오솔길을 따라 남북 군인들이 담배를 주고받으며 오가는 것을 보니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번 일도 한때의 바람에 그칠지, 아니면 오솔길이 대통로로 넓혀지는 시발점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던 민족이, 언제부터인지 서로 분단돼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됐는데, 이렇게 오가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6.25전쟁 때 서로 총을 겨누고, 서로를 죽이던 세대도 이제는 세상을 떠나고, 전쟁이 뭔지, 냉전이 뭔지를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 교포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서울에서 김일성평전이란 책을 들고 가다가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청년이 “김일성 평전? 많이 들었던 이름인데 누굽니까”라고 하더랍니다. 이 분이 제게 와서 “요즘 서울 젊은이들이 어떻게 김일성을 모를 수 있죠”라고 하길래, 제가 오히려 놀라지 않고 “그럴 수 있죠”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사망한지 25년이나 됐으니 김일성도 역사에서 사라지는 중인 것이죠.

이번 주에 한때 북한을 풍미하던 또 한 명의 인물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김일성의 부인이던 김성애입니다. 그런데 이 김성애에 대해선 북한 청년들도 알까 의문입니다. 아마 모르는 청년들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김성애는 곁가지로 몰려 김정일에 의해 철저히 매장당한 대표적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 여맹위원장을 하면서 부주석에 가까운 권력을 휘둘렀고, 아들 김평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세우려다 김정일에게 밀려 사라졌습니다. 그리곤 감감 무소식이다가 1994년 김일성 사망 한 달 전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날 때 외부에 얼굴이 잠깐 노출됐습니다. 물론 이 사실과 사진 역시 북한 내부에는 공개된 바가 없을 터이니 북한에서 김성애는 1970년대 중반부터 사라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무려 40년을 넘게 더 살다가 죽었답니다. 맏딸 김경진과, 아들 김평일, 김영일이 모두 외국으로 강제로 나가 살았습니다. 자녀들과 헤어져 사실상 자택연금 상태로 40년을 살면 정말 오래 산 것입니다. 물론 정확히 며칠에 죽었는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성애는 알려지기론 1924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95살까지 산 셈인데, 연금 생활치고는 참 오래 살았습니다. 그가 김일성 옆에 가장 오래 있었으니 역사의 산 증인일 텐데, 회고록 하나 안 남기고 죽었으니 아쉬운 일입니다. 김씨 일가의 비화를 정말 많이 알 텐데 말입니다.

물론 김성애는 김일성의 평생의 여인은 아닐 겁니다. 김일성은 김성애를 만나기 전, 그리고 후에도 여자가 많았습니다. 제가 중국 정부 비밀 문서고에 숨겨져 있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김일성의 첫 여자는 한옥봉이란 여자였고, 둘째 여자는 일제 토벌대에 생포된 김혜선이고, 셋째 여자가 김정숙입니다. 김혜선과 김정숙 사이엔, 김일성 회고록에도 나오는 자기 부하 강홍석의 부인 지순옥이란 여자와도 한 달 같이 살았다고, 산에서 내려온 지순옥이 일본 공작반에 와서 진술한 자료가 있습니다.

김혜선이 변절한 임수산에 의해 밀영이 발각돼 잡혀가기 전에 벌써 김일성은 김정숙과 눈이 맞았죠. 그런데 그때 김정숙에겐 남편이 있었습니다. 누구냐면, 바로 혁명의 변절자의 대표적 인물로 알고 있는 김일성의 경위중대장이었던 지갑룡이었습니다. 지갑룡은 변절한 것이 아니라, 임무 받고 나갔다가 한참 뒤 헤매고 돌아왔는데 김정숙이 김일성과 살고 있으니 그 꼴을 보기 싫어 깊은 산속에 사라졌습니다.

김정숙이 죽기 전에 김일성은 또 타자수로 들어온 김성애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공식 결혼은 김성애가 자식 셋을 낳고 한참 뒤인 1962년에 했습니다. 그런데 김성애와 동거할 때 또 그 사이에 여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여성이 홍명희 부수상의 딸 홍귀원입니다. 홍귀원은 김성애의 비서였는데, 김일성이 그만 덜컥 임신시켰고, 홍귀원은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이 사실은 황장엽 비서와 함께 한국에 온 김덕홍 노동당 자료실 부실장이 쓴 회고록에 나옵니다.

북한 연구실 도록에 보면 1958년 김일성과 홍명희가 함께 뱃놀이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설명에는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은 홍명희 딸을 그렇게 죽게 만들고 김일성이 미안해서 만나서 위안하는 사진입니다. 그 이후에도 간호장이라 불렀던 여자를 비롯해 김일성에겐 여자도 많았고, 숨겨진 김현이란 아들도 있습니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여자는 더 많을 겁니다.

김성애도 후처로 가택연금 당하고 비참하게 살았는데, 자칫 김정은과 그의 모친 고용희도 김성애 꼴이 날 뻔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장자 김정남을 몰아내고, 심지어 그를 살해해 자리를 잡았고, 친형 김정철도 제치고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북한 역사도 알고 보면 봉건 왕실 권력 찬탈 역사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여러분들도 지금 받고 있는 거짓된 역사의 세뇌에서 벗어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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