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부처님 오신날과 남북한 종교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5.21
buddha_day-305.jpg 불기 2554년 부처님오신날인 21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에서 봉행된 봉축법요식에 많은 불자들이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많은 남쪽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모르는 명절 하나를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니 바로 석가탄신일입니다. 좀 더 알기 쉬운 말로 하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기독교에선 예수가 태어난 날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듯이 불교에서는 부처가 태어난 날을 석가탄신일로 기념합니다.

부처님 탄신일은 음력으로 4월8일인데, 올해는 5월21일이 그날입니다. 불교 명절이지만 한국은 종교에 상관없이 전 국민이 휴식하는 국가 공휴일이기도 한데 전국 곳곳의 절에는 물론 시내에도 연등이 걸려 명절 분위기를 한껏 냅니다.

불교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존재하던 3국 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와 벌써 1500년 넘게 우리 민족과 함께 숨을 쉰 종교입니다. 여기 남쪽에 와보니 정말 절간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북쪽에도 남아 있긴 하지만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승지들에나 좀 있지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힘들죠. 또 스님이 살지 않고 관리도 안돼서 무너지기 직전의 절도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여기 남쪽에선 절이 어디 가나 다 있습니다. 심지어 서울 중심부에도 있고 아파트 사이에도 있습니다. 시내 곳곳에 절도 많고 교회도 많고, 성당도 많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리다시피 남쪽 인구는 5000만 명 정도인데 절반 정도인 2500만 명 정도가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이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가 불교이고 그 다음이 기독교이며 세 번째가 천주교입니다. 한국의 통계청 최신 자료를 보면 남쪽에 불교 신자는 천 만 명이 좀 넘고 기독교 신자는 900만 명 가까이 되며 천주교 신자는 50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세 종교가 남쪽에 가장 많긴 하지만 남한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나라라 그 외에도 자기가 믿고 싶은 종교를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에 이슬람교 사원이 있고 거기에 다니는 한국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에선 종교는 제국주의자들이 퍼뜨리는 아편이고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배웠죠. 그래서 북쪽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종교에 대한 거부반응들을 갖고 있습니다. 북에서 배우는 주체사상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가르치죠. 어렸을 때 배운 영향은 오랫동안 머리 속에 남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기 운명의 주인이 과연 자기 자신인가요.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북에선 각자의 운명은 노동당이 어떻게 신임해주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까. 간부 자식이면 좋은 대학 가서 간부가 되기 싶고 성분이 걸리면 아무리 공부 잘해도 대학도 못가고 하는 것이 북조선 사회입니다.

여기 남쪽은 어떨까요. 성분이 나쁘다고 공부를 잘하는 데도 대학 안보내고 하는 일은 없어 좋지만 여기도 대체로 재벌집 자식으로 태어나면 재벌이 되는 것이고,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면 좋은 대학 가기 힘듭니다. 대학가고 마는 것은 이 사회를 설명해주는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고, 그 외에도 사람들은 살면서 이런 저런 성취감이나 또는 좌절을 맛봅니다. 자기의 의지나 능력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서 간절한 소원을 이뤄주길 기도합니다. 북에서도 아무리 자기 운명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교육해도 여전히 사람들이 점을 보고 운수를 보고 팔자를 따지고 이러지 않습니까. 평양만 봐도 손 없는 날에 결혼식 건수가 다른 날에 비해 훨씬 많아지는 것이고요. 종교를 찾는 인간의 본성은 자본주의에 살던 사회주의에 살던 비슷한 것입니다.

북에서 주체사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남쪽에 오면 종교를 믿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석 달 정도 사회정착 교육을 받는데 여기에 불교의 스님, 기독교의 목사, 천주교의 수녀들도 있습니다. 북에서 온 사람들은 대개 종교를 전혀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오는데 하나원에서 이러저런 종교를 두루 체험해봅니다.

그러다가 종교를 선택하는 탈북자들은 대개는 기독교 교회에 가더라고요. 탈북자들이 왜 대체로 기독교를 선택해 교회를 가는지에 사람들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이런 것은 한국에서 쉽게 이야기하기 민감한 주제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기자로 있으면서 보면 언론들이 가장 비판하기 어려운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를 비판하기는 대통령 비판하기보다 더 용감해야 합니다. 비판을 받았다고 언론사에 몰려가 난장판을 만드는 경우도 많지요. 제가 동아일보에 입사한 이후 우리 신문사도 몇 차례 특정 종교를 비판했다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사기꾼 종교들일 수록 우리 교주님은 하늘이 낸 분이고 항상 옳은 일만 하고 절대적으로 믿고 충성으로 따르며 그 권위를 백방으로 옹호 보위해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말은 여러분들도 어렸을 때부터 매일같이 들으며 자랐던 말이죠. 저도 하늘이 낸 분이라는 말을 30년 가까이 들으며 살다가 한국에 와서 똑같은 것들을 자꾸 보게 되니 지겹기도 하고 또 어찌 저리도 서로 닮았을까 싶기도 한데 오늘은 다 말씀드리기엔 길어지니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을 내서 따로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음력 4월 8일 오늘은 우리 민족이 천년 넘게 쇠 온 불교 명절인 부처님오신날이라는 것, 그것 하나 확실하게 알려드리며 이만 마치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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