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맞아 북한에 보내는 기원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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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가 2일 '영원히 가리라 백두의 행군길을' 제목의 새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영화는 백두산을 등정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두 혈통을 부각하면서 선대부터 이어온 투쟁 정신으로 난관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했다.
조선중앙TV가 2일 '영원히 가리라 백두의 행군길을' 제목의 새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영화는 백두산을 등정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두 혈통을 부각하면서 선대부터 이어온 투쟁 정신으로 난관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했다.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0년 새해 첫 인사 드립니다. 항상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는 희망찬 새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북한에 계신 우리 동포들에겐 이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올해는 희망이 아닌 절망이 가득한 한 해가 될 것이 너무 뻔해서입니다.

이유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죠. 유엔의 대북제재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북한의 외화난과 연료난이 극심해 질 것이고,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전반적인 고통을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김정은이 각종 국책 사업에 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주머니를 더 열심히 털어낼 것이 뻔한 일입니다.

돈이 돌지 않으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고, 기름 값이 높아지면 장마당이 잘 돌아가지 않아 인민들에게 큰 피해를 줍니다. 저는 올 한해 여러분들이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자력갱생으로 다져온 정신력을 적극 발휘해 제발 굶어죽는 사람이 북한에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북한을 둘러싼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데, 김정은도 뾰족한 대책은 없는가 봅니다. 연말에 당 전원회의를 이례적으로 나흘이나 진행하며 마라톤회의를 했지만 계속 아리송달송한 과거에 했던 말만 계속합니다. 말은 화려한데, 예전에 다 듣던 얘기고 알맹이가 없다 이 말입니다.

하긴 자기가 뭘 할 게 있습니까. 미국은 핵포기 하지 않으면 상대해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또 김정은 입장에선 미국을 뭘 믿고 선뜻 핵 포기하려 하겠습니까. 핵 포기할 마음이 진짜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이 타니 계속 회의나 열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양새라도 만드는 가 본데, 그런 행동 모두가 사실은 망해가는 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라 경영이나 회사 경영이나 공통적인 것이 참 많은데, 여기는 시장경제 사회라 회사 경영에 대한 각종 연구 자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분석한 자료들을 보면 망해가는 회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많아지는 것이 각종 회의라고 합니다.

실례로 2016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상담회사가 수많은 기업들을 상대로 분석을 해서 망해가는 회사를 판단하는 법이란 보고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 결론적으로 볼 때 쓸 데 없는 회의가 많고, 회사원들은 탈출할 기회만 노리고, 사장이 없을 때 회사원들이 더 활기를 띤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북한과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망해가는 회사에서는 허구헌날 회의가 열립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그래도 회의가 열립니다. 그 회사는 그 회의가 일입니다. 할 일이 없으니 회의라도 해서 일을 하는 시늉을 하겠다는 겁니다.

북한이 똑 같지 않습니까. 맨날 무슨 대회가 열리고, 대회가 열리면 앵무새처럼 자력갱생, 간고분투 이런 지겨운 얘기만 수십 년째 되풀이 됩니다. 김정일 때도 자강도 정신, 희천 정신, 라남 정신 이런 식으로 몇 년 동안 북한의 지명들을 한바퀴 돌면서 계속 정신만 만들어내다가 끝났습니다. 지금도 표현만 조금 다를 뿐이지, 사실상 세계로 나와 정상적인 국가로 살겠다는 이야기는 안하고 무슨 정신 타령만 하는 것이 똑같지 않습니까.

망해가는 회사는 회의를 열면 사장만 열심히 말합니다. 참가자들은 대개 입을 닫습니다. 잘못 말했다가는 자기가 책임을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그렇습니다. 김정은이 뭐라고 하는데, “그거 사실 이런 것들 때문에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정신이 잘못됐다고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해고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목숨까지 위험합니다. 그러니 김정은이 뭐라고 하면 당연히 “지당한 말씀입니다”하고 아첨을 떨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 그런 회사가 있다면 무조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망해가는 회사에선 뭔가 추진하다 실패하면 희생양을 찾기에 급급합니다. 모두가 “내가 안 그랬다, 재가 하자고 했었다, 그러니 나는 책임이 없다”고 외칩니다. 이런 직원들이 많으면 회사가 새롭게 변할 여지가 없습니다. 보고서도 두꺼워집니다. 책임지기 싫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절차를 바꾸기 위한 절차’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할일이 없어 시간 때우기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망해가는 회사는 사장이 없으면 모두가 활기가 찹니다. 이건 매일 기가 죽어 산다는 의미입니다. 사장이 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회사를 탈출해 다른 회사로 갈 생각만 합니다.

북한도 똑같습니다. 아마 김정은만 없으면 모두가 활기가 찰 것인데, 김정은이 위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그 밑의 고위 간부들은 매일 기가 죽어 삽니다. 불호령이라도 떨어지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주민들 주머니 털어가는 것이 늘어납니다.

김정은만 보면 앞날이 캄캄해집니다. 어떻게 하나 도망쳐서, 즉 탈북해 외국에 가고 싶은데 또 가면 국경에서 총을 쏘고 잡히면 관리소에 가니 선뜻 가족을 놔두고 갈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자, 지금까지 들려드린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공감이 되십니까. 제가 망해가는 회사들의 공통점이라고 점잖게 말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망조가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장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망조가 든 회사는 몇 년을 버티지 못하는데, 김 씨 세습 왕조에선 인민들을 수용소와 똑같은 환경에 가두고, 외부와 울타리를 높이 치고, 사람들을 마구 죽여 수십 년째 망하지도 않습니다. 썩어서 곪아 떨어질 대로 곪았는데, 단단한 유리병에 갇혔으니 냄새조차 외부에 잘 나가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새해엔 김정은이 제발 좀 뻘 짓을 많이 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자꾸 자극해서 스스로 망하는 길을 재촉하길 바랍니다. 불 좋아하는 놈 불에 타 죽는 다는 속담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새해 환경은 엄혹하지만, 모두들 건강하시고, 어려운 속에서도 작은 행복들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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