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함의 가면을 벗어던진 김정은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02.19
인자함의 가면을 벗어던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올해 경제계획 수립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신랄히 비판하고 당 경제부장을 1달 만에 교체했다.
연합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한국 언론에서 가장 많이 쓰는 북한 사진이 뭔지 아십니까. 김정은이 8일부터 11일 사이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8 2차 전원회의 도중 누군가를 가리키며 입을 벌린 채 욕을 하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북한 티비와 노동신문에도 나왔지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인지라 그 손가락에 찍힌 누군가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지난달 노동당 경제부장으로 임명된 김두일은 한 달 만에 목이 날아갔습니다. 사진만 봐도 전원회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이 갑니다. 노동당 대회 참가자가 숨소리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전해왔는데, 전원회의는 그보다 훨씬 더 살벌했을 겁니다.

요즘 북한이 지도자를 신비화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때는 화를 내는 모습이 언론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인자하고 부드러운 인상만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김정일이 현장에 가면이 새끼’ ‘저 새끼하며 욕을 걸쭉하게 해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북한 매체에는 장군님이 뭣 때문에심려하시였다’, ‘지적하시였다는 정도로 매우 순화시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김정은이 간부들을 세워놓고 삿대질하고, 책상을 내려치고 하는 사진들이 여과없이 보도됩니다. 수십 년을 이어져 온인자한 인민의 어버이의 가면을 버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인자한 척해서는 북한 내부를 도무지 통제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정은을 무섭게 느끼게 해야 간부들이 말을 겨우 들으니 이런 극약 처방까지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 집중 포화를 받은 김두일 경제부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았으면 다행이지 않나 싶은데, 전임 경제부장은 작년 9월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국경의 코로나 완충지대에 갔다가 보름의 자가 격리 지침을 어기고 평양에 돌아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평양에 발도 못 붙이게 해 중화군에 중앙당 간부들 모아놓고 총살한 뒤 시신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비참하게 죽은 전임자의 자리에 올라앉아 가뜩이나 공포에 질렸겠는데, 한 달 만에 또 전원회의에서 펄펄 뛰는 김정은의 표적이 됐으니 무사치는 못할 겁니다. 김두일의 후임인 오수용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요. 죽을 자리에 들어섰는데, 불평도 못하겠죠. 불평하다 김정은 귀에 들어가면 3대가 멸족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려고 해도 또 할 형편도 아닙니다. 제가 봐도 김정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달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고 경제 실패를 자인했습니다. 그러면서 5개년 전략이 과학적인 타산과 근거에 기초하여 똑똑히 세워지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성 있게 목표를 세워서 올려 보냈는데 이번 전원회의에서 그랬다고 또 펄쩍 화를 냅니다. 이번 전원회의 요지는연말에 비판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낮추어 기안하는 편향을 범했다는 겁니다. 가령전력생산 계획을 현재의 전력생산 수준보다 낮게 세웠다느니, “평양시 살림집 건설계획을 당대회에서 결정한 목표보다 낮게 세웠다느니, “신발 생산 계획을 형편없이 낮게 세웠다느니 하면서 간부들의 소극성과 보신주의를 질타한 것입니다.

김정은은 이에 대해경제부문 일꾼들이 조건과 환경을 걸고 숨고르기를 하면서 흉내나 내려는 보신과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면서계획을 낮게 세워놓고 연말에 가서 초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실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 기여할 수 있게 발전지향성과 역동성, 견인성, 과학성이 보장된 목표들을 제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니, 한 달 전에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라고 하더니, 이제는 목표가 낮다고 또 뭐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높이 잡으면 또 현실성이 없다고 욕을 했을 것이고, 연말에 가서 혁명성이 없다고 또 처벌을 받을 겁니다. 코로나 사태로 국경을 꽁꽁 막아놓고는 도대체 북한의 내부 역량으로 김정은이 바라는 성과를 어떻게 낸다는 말입니까.

가령 농업생산이라고 하면, 비료가 없이 어떻게 목표 양곡과제를 달성합니까. 그런데 중국에서 들여오던 화학비료는 코로나 때문에 못 들어오게 됐지, 그렇다고 퇴비로 늘이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김정은이 작년 5월에 순천린비료공장에 가서 준공식까지 참가하며 소동을 벌였지만 그 공장은 지금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치대로라면 사기극을 벌인 김정은부터 인민을 속이고 기만한 죄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그러나 죽는 것은 간부들뿐입니다.

요즘은 북한에서 간부 자리를 버리는 것이 현명할 듯 합니다. 예전이면 간부가 뇌물도 받고 좋았는데, 이제는 당에규율조사부’ ‘법무부’ ‘군정지도부이런 기구들이 잔뜩 생겨 걸리면 시범에 걸려 죽게 됐습니다. 원래 백성질 할 맛도 없었는데, 이젠 간부질 할 맛도 안 나는 것이죠. 북에선 김정은과 세 여인, 즉 이설주, 김여정, 현송월만 무사하지 그 아래에서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날이 갈수록 좋은 세상이 돼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김정은이 점점 잔인해지면서 북한은 공포의 지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간부들의 생존본능도 더욱 처절해질 것입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는 설날만 되면 마을에 똥내가 진동했습니다. 농업생산량을 늘이라는 당의 방침 관철에 한 몸을 불사르는 멋진 그림을 만들기 위해 설날부터 변소를 푸며 똥지게를 들고 설치는 간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올해 설날에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더욱 극에 달하면서 그 똥내도 더 심하지 않을까요. 북한의 공포가 점점 커지면 커질수록 똥내가 온 사회에 더욱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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