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주머니를 차고 협박하는 김여정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03.19
빈 주머니를 차고 협박하는 김여정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6일 노동신문에 실린 김여정의 담화문을 보셨습니까. 오랫동안 잠잠하던 김여정이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했는데 남북 군사합의서 파기,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기구 정리를 내걸고 한국을 협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대남 입장문을 해외에서 운영하는 통전부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올릴 때가 많았는데, 그건 민감하니 북한 주민들은 몰라도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번엔 모든 주민들이 다 보는 노동신문에 실었으니, 이는 주민들에게도 남쪽에 기대를 가지지 말라는 뜻을 전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여정에 이어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8개월 만에 나타나 조선중앙통신을 통해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조미접촉이나 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미국의 접촉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두 여인이 나타나 대남, 대미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 주에 한국에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함께 왔기 때문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 제일 중요한 두 인사가 한국에 왔으니 이번 기회를 통해 눈길을 끌려는 의도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김여정이 굳이 저런 담화를 내놓지 않아도 남쪽에선 3년 전의 봄이 다시 오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미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을 내건 북한이 스스로 철저하게 문을 닫고 있는데, 이게 언제 풀릴지 기약도 없습니다.

아주 빨리 끝나 올해 말에 풀린다고 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내년 5월까지이니, 김정은이 곧 임기가 끝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 등 현 정부 각료들이 계속 북한을 향해 잘 지내보자는 말합니다. 자기들도 잘 지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은 다음달에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라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고, 내년 대선까지 관리하려면 현 정부가 내세우는 남북관계 치적을 북한이 군사적 도발로 물거품으로 만들면 안 되겠죠. 우리 속담에 웃는 사람에게 침을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죠. 자꾸 북한을 향해 웃어줘야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지 않을까 그런 속내죠.

물론 북한도 한국의 내부 사정을 잘 알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여정의 이번 담화는 봄을 만들 책임을 한국에 강요하는 듯한 기고만장한 모양새였습니다. 그걸 보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한번 따져 봅시다. ‘따뜻한 봄날은 지금 남과 북 중에 어디에 더 절실할까요. 봄이 오지 않으면 누가 더 손해일까요.

물론 한국도 겨울 추위가 좋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는 겨울옷이 풍족합니다.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로 체제를 감싸던 옷이 한 겹 두 겹 강제로 벗겨지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조금 축적했던 지방마저 연소돼 앙상해진 북한이야말로 추위를 어떻게 견딜지 걱정입니다. 옷과 지방은 북한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고 있는 돈을 비유한 것입니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출액은 3616만 달러에 그쳤고, 중국 외 다른 국가들과의 수출 총액도 806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수출총액이 4500만 달러도 안 될 정도면 실제 번 돈은 훨씬 적을 것입니다. 김정은이 최근 야심차게 추진하던 주요 국책사업들도 돈이 없어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실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북한이 돈을 벌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무기 거래, 마약 판매 등 불법 행위로 버는 돈도 크게 줄었는데, 그나마 지금 믿을 구석은 해외에 파견된외화벌이 전사들의 활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 파견된 약 1000여명의사이버 전사들이 외주 받은 일감과 해킹 등으로 국가 공식 무역에서 나오는 순수익보다 더 많은 20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매년 버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특권을 부여받은 약 300~400명의 외화벌이 인력이 해외에 나와 1년 과제로 5~10만 달러를 벌어 바친다고 합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조직생활도 하지 않고 보위부 감시나 통제도 없으며, 국가 이동도 언제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돈만 벌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 볼 수 있는데, 머릿수와 연간 계획량을 따져 추산하면, 이들이 약 2000~3000만 달러 정도 벌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바친 돈을 담은 현금자루가 실제로 중국 단동 주재 북한영사관 전용 버스에 실려 주기적으로 압록강대교를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빡빡 다 긁어봐야 북한은 1년에 1억 달러 이상 벌기 어렵습니다. 체제를 지탱하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죠. 게다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외화벌이 전사들도 대다수 적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억 달러도 벌기 힘든 상황에서 김여정은 큰 소리를 치는데, 이걸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통일부 한 개 부처에만 남북협력기금이 10억 달러 넘게 잠자고 있습니다. 북한이 원한다면 한국 정부는 얼마든지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 이 많은 돈을 지원한다는데도 받지 않는 김정은은 진정 코로나 방역으로 생활고에 빠진 인민들을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걸까요.

게다가 북한이 군사적 합의를 깨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면 내년 대선에서 어떤 대통령이 당선될지도 잘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도 현 정부는 북한에 잘 해주려고 애를 쓰는 정부인데, 남북관계를 악화시켜 보수 정권 당선에 기여한다면, 김여정은 몇 년 동안 강추위 속 얼음공주로 계속 살아야 할 겁니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언급한 따뜻한 봄이 지금 가장 필요한 쪽은 바로 북한입니다. 손을 내밀 상황에서 협박이나 하니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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