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인천 상공에서 바라보는 북녘 하늘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1.08.05
incheon_airport_dokdo-305.jpg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바라본 독도.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탈북해서 한국으로 올 때 여권을 위조해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얼마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베이징이나 심양, 장춘 쪽에서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정도면 한국에 도착합니다. 그 한 시간 동안 영화에서나 보던 비행기를 이렇게 탔구나 하는 감개무량함과 혹시 비행기가 추락하지는 않겠는가 하는 두려움, 기다리고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 등 정말 갖가지 감정들을 체험해야 했습니다.

제가 탄 비행기는 한국 국적이 아닌 중국 항공 소속 여객기였습니다. 중국 안내원들이 통로를 돌아다니면서 손님들 시중을 들고 있는데 그들이 제 옆을 지나갈 때마다 혹시 여권 보자고 할까봐 몹시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북에선 기차를 타면 보안원들과 열차원들이 꼭 여행증과 차표를 검사하지 않습니까. 한 번도 아니고 수시로 말이죠. 그런 곳에서 태어나 살다보니 비행기를 타고도 이 안내원들이 여권을 보자고 할까봐 정말 조마조마 하더군요.

여권 검열에서 가짜 여권인 것이 들통 나면 비행기를 돌려 중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그렇게 되면 저는 북한에 끌려 나갈 것이고, 한국 가다가 체포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목숨도 부지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제가 탄 비행기는 아침 비행기였는데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을 진정시키며 애써 태연하게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티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로 구름이 뭉게뭉게 주단처럼 깔려 있더군요. 훗날 여러 번 비행기를 타면서 보면 비올 때가 가장 신기합니다. 땅에선 짙은 구름 때문에 어두침침하고 비까지 몰아치는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을 뚫고 한참을 올라가면 신기하게도 햇볕이 쨍쨍 비치는 파란 하늘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집니다.

제가 오는 날엔 비도 안 오고 구름도 많지 않았습니다. 오는 내내 긴장되던 마음은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 기수를 낮추어 하강할 때쯤에야 좀 진정이 됐습니다. 이제는 중국으로 돌아갈 일이야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비행기에선 여권이나 표 검열 같은 것은 안합니다. 저는 공연한 걱정을 한 셈이지만 그땐 아무 것도 모를 때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죠.

중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서해를 건너 강화도 상공을 지나 인천공항에 착륙합니다. 비행기가 기수를 낮추는 동안 저는 정신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멀리 섬들이 보이고 비행기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땅 위의 풍경이 점점 더 잘 보였습니다.

저는 한국의 집 지붕들이 정말 알록달록한데 놀랐습니다. 북에선 지붕에 대개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를 씌우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색깔이 회색입니다. 물론 어떤 지방에선 빨간 진흙 기와를 쓰거나 철판 지붕 위에 시꺼먼 골탄을 칠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북쪽의 집 지붕들은 어두침침합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남쪽 섬마을 지붕들은 한집은 빨갛고, 한집은 파랗고 이런 식인데, 그 빨간색과 파란색도 얼마나 선명한지 모릅니다. 그게 저는 신기했습니다. 그 낮선 지붕들이 저에겐 “넌 새로운 땅에 도착 했어”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본 한국의 첫 모습인 까닭에 지금도 그 지붕들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10년 가까이 살고 있고 그 사이에 비행기도 많이 타봤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상하게도 꼭 북조선 생각이 납니다. 비행기를 타는 인천공항에서 몇 분 안날아가면 바로 북쪽 상공이거든요. 바로 옆에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땅을 두고 멀리 외국으로 날아가는 심정은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 몇 분 사이를 두고 남과 북은 정말 판이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기 한국에선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외국에 나갈 수 있습니다. 범죄자만 아니면 외국에 나가는데 아무런 제약도 없지요.

지난 한 해 동안 남쪽의 해외여행자 숫자는 1300만 명이 넘었습니다. 물론 여러 번 다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냥 대충 계산해 봐도 국민 네댓 명 중 한명은 외국에 나간다는 말입니다. 국내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니 부산이니 다닌 사람들까지 계산에 넣으면 비행기를 타고 다닌 사람들은 훨씬 많겠죠. 여름이나 겨울 휴가철이면 인천공항은 해외에 놀려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외국 나가는 가격도 크게 비싸다고 볼 순 없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해 정도는 300딸라 미만이면 갔다가 올 수 있고, 동남아 주요 관광지도 싸면 500딸라 미만이면 갔다 옵니다. 한국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3000딸라 넘어가는 것을 감안할 때 가족이 1년에 한번 외국에 놀려 나갔다 오는 것은 웬만한 집이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북쪽은 어떻습니까. 인구의 1%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극소수 특권층 정도나 비행기를 타볼 수 있을 뿐, 99% 이상의 주민들은 여객기를 멀리서라도 구경조차 못했죠.

저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마다 항상 멀리 북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제가 왜 고향을 두고 아픈 길을 걸어 남쪽에 왔는지, 무엇을 위해 한생을 바쳐야 하는지 하는 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잊혀져가던 초심을 되살려주고 마음 속 각오와 결의를 더욱 굳세게 해주는 시간인 것입니다.

지금은 당장 다음 끼를 걱정해야 하는 북쪽의 동포들이지만, 제 생애에는 반드시 남쪽처럼 자유롭게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날을 맞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도 적은 힘이나마 깡그리 바치겠다는 각오를 이 시간 다시금 다지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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