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신의주 수해 소식을 듣고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8.27
sineujoo-305.png 21일 압록강이 범람해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그 일대가 침수되는 등 홍수피해를 입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물에 잠긴 신의주 시내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몇 주 전에 제가 이 방송을 통해 남과 북의 치산치수 체계를 비교하면서 북쪽 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방송 말미에 올해는 제발 큰비가 북쪽을 비껴갔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소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하늘이 또다시 북녘 땅에 물 폭탄을 퍼부었더군요. 홍수로 신의주 시내가 물에 잠기고 수많은 농경지가 유실됐다고 합니다. 북쪽 언론에서 사람이 얼마나 사망했는지를 밝히는 법이 없으니 알 수가 없지만 보나마나 인명피해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서도 장군님이 인민들을 걱정해서 군용 직승기들을 보내서 구조를 했다는 구태의연한 위대성 선전도 나옵니다. 하지만 직승기가 없는 아프리카의 아주 가난한 나라라면 모를까, 직승기를 갖고 있는 나라치고 자국민들이 위험에 처했다는데 이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선 아주 상식으로 돼 있는 당연한 일을 위대한 은혜이고 인민에 대한 배려라고 선전하니 외국에서 보면 참 웃기는 일이죠.

지금 북조선 뿐 아니라 파키스탄도 이달 초에 80년 내의 홍수로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1500명이나 사망하고 이재민이 수백만 명이나 발생했습니다. 사정이 그렇게 되자 미국도 이웃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에 사용하던 군용 직승기들과 수송기들을 대대적으로 파견해서 식량을 수송하고 고립된 사람들을 구조합니다. 군대 비행기들을 보내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구조하는데 자기 나라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홍수 피해지역에도 인민군대가 출동했다고 하지만 이들이 오히려 홍수를 틈타 개인집 재산과 가축들을 훔쳐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강도단이 따로 없네요. 북에서 큰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기 남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명분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북에서 몇 달 전 한국의 천안함을 침몰시켜서 군인들이 수십 명이나 사망한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남북관계가 매우 악화돼 있고 사람들이 분노해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지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북조선 정부가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어도 줄지 말지인데 그런 사정을 아는지 북에선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쪽에서 먼저 주겠으니 제발 받아달라고 사정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긴 해도 북조선 정부가 유엔에는 도움을 호소했나 봅니다. 앞으로 유엔에서 얼마나 도와줄지 미지수이긴 하지만 지원규모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한 파키스탄 수해지원에는 국제사회에서 최소한 8억 달러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벌써 절반 이상이 지원됐습니다. 8억 달러면 요즘 국제사회의 옥수수 톤당 가격이 250달러 정도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무려 320만 톤을 사올 수 있는 돈입니다.

이 정도면 북조선이 올해 거의 까딱 안 해도 풍족히 먹고 살 수 있는 양입니다. 이렇게 국제사회는 어려움이 처한 나라를 정말 크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조선은 지난 기간 홍수 피해를 많이 봤지만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려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국제사회에서 북조선은 늘 말썽만 피우는 못된 나라로 인식돼 있어서 별로 도와주려고 성의를 보이는 나라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남쪽에서 같은 동족이기 때문에 많이 도와왔지만 올해는 여러 이유로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수해지원을 생각해보니 1984년에 북에서 남쪽에 쌀 5만 석을 포함해 천과 세멘트 같은 것을 내려 보냈던 일이 생각납니다. 5만 석이면 1만 톤 조금 넘는 양입니다.

그때 식량을 실은 배들이 남쪽 항구로 들어가는 장면을 중계했었는데 저도 TV를 통해 멀리서 찍은 월미도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정도 식량을 보내주고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남조선 인민들이 감격에 울먹인다고 정말 선전도 많이 했지요. 하지만 1984년에는 남쪽에 1만 톤을 지원했지만 2008년 이전에는 남쪽에서 매년 쌀이 30~40만 톤씩 들어갔으니 그때 보내준 것을 몇 백배는 돌려받은 셈입니다. 그렇게 많이 보내주고도 여기선 남쪽 쌀을 받아들고 북조선 인민들이 감격해서 울먹인다는 식의 유치한 선전은 하지 않습니다.

큰 피해가 났다는데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저는 참 안타깝습니다. 북에서 수해 피해로 굶주림이 발생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자가 되지 간부들이 죽겠습니까. 나라에서 배급을 전혀 주지 않아도 간부들은 또 어떻게든 백성들의 등을 쳐서 벗겨 먹을 것이고 결국 힘없는 사람들만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훤히 눈에 보입니다.

지금도 벌써 수해지역을 지원하라면서 전국적으로 인민들을 닦달질해서 쌀과 옷가지를 걷어가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쌀을 준 적이 없으면서도 집집마다 쌀을 빼앗아가는 것을 아주 당연시하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그렇게 걷은 쌀의 절반 이상은 간부들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악독한 일제 식민지 시절보다 더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살기 좋은 사회를 남쪽이나 외국에서 선물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은 북조선 인민들의 손으로 성취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인민의 힘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