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가 주는 교훈
2015.11.06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월 3일 독일 통일 25주년을 맞아 제가 독일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 붕괴 2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을 듣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6년이 지났군요.
독일은 통일이 된 뒤로 엄청나게 번영해 유럽의 초강대국이 됐고 국력이 프랑스와 영국을 추월했습니다. 우리도 통일되면 장기적으로 훨씬 더 강국이 될 것임은 분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정말 난제들이 많습니다.
우선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와 남북의 경제적 격차는 하늘땅 차이입니다. 동독은 집집마다 승용차가 1대씩 있을 정도로 사회주의권 국가 중에서 제일 잘 살던 나라였습니다. 사실 통일 전에 서독의 국민소득은 1만5300달러, 동독은 1만 달러 정도로 서독이 1.5배 정도 잘 사는 것으로 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통일을 해보니 동독의 실제 국민소득은 잘해봐야 4000달러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서독 사람들은 “동독이 꽤 잘사니 통일해도 먹고 사는데 별일 없겠네”하고 생각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서독이 거의 4배 잘 살았죠.
그럼에도 이 차이는 남북의 차이에 비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쪽은 현재 북한보다 40배 정도 잘 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 생각엔 물가를 생각하지 않고, 액면가만 계산한 남쪽의 국민소득은 최소 북한의 50배 이상은 됩니다. 이 정도의 경제격차는 북한이 너무 가난해서 한국만큼 잘 살게 하려면 50배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인데 정말 엄청난 부담입니다.
게다가 동독은 인구와 영토가 서독의 4분의 1밖에 안됐습니다. 이 정도면 서독이 감당할 정도의 능력이 됐죠. 하지만 남북을 보면 북한이 영토는 더 크고, 인구는 남쪽의 절반이나 됩니다. 이는 통일 뒤에 똑같은 수준으로 살기 위해 남쪽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서독과 비교 안 될 정도로 많다는 뜻입니다. 한국이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제 보기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통일 이후에 서독이 동독에 쏟아 부은 돈은 무려 1조 5000억 유로가 넘는다고 합니다. 매년 동독에 1000억 달러 넘게 쏟아 부었다는 것인데, 한국 정부의 1년 예산이 3000억 달러 좀 넘는데 북에 3분의 1을 떼서 넣기는 불가능합니다.
독일이 통일했을 때 서독 정부의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화폐를 1대 1로 교환해주는 것을 꼽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동독 화폐가 서독 화폐에 비해 4분의 1 가치밖에 안됐는데 1:1로 교환해주었으니 동독 사람들은 갑자기 재산이 4배 불어난 느낌일 겁니다. 반면 동독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갑자기 월급을 4배 주어야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동독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게 되고 파산해서, 화폐 교환 이후 동독은 실업자 천국이 됩니다.
물론 이런 실패 사례를 남북은 되풀이 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현재 상황이라면 실제로 그렇게 해도 북한이 큰 이득을 보는 건 아닐 겁니다. 지금 1달러가 한국 돈 1180원 정도이고, 북한 돈으론 8300원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돈 1원은 북한 돈 7원 정도입니다. 남북의 화폐를 1대1로 바꾸면 북한 돈 100만 원에 한국 돈 100만 원만 주면 되는데, 북에서 100만 원씩 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국은 그 정도면 겨우 풀칠이나 하고 사는 정도입니다.
지난해 한국 도시 근로자 4인 가구 기준 월 평균 소득은 537만 원이라고 하니, 북한 돈으로 치면 식구가 4명인 북한 도시 노동자의 월 소득이 3800만 원인 셈입니다. 월소득 3800만 원이 상상이 되십니까. 북한 최고액권 5000원짜리로 7600장, 5000원권 100개를 묶은 지폐묶음 76개란 소리인데, 이 정도면 배낭으로 메고 다녀야겠네요.
독일에선 화폐개혁이 실패였지만, 그건 경제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론 어쩔 수 없었던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돈을 그렇게 바꿔주지 않으면 동독 사람들이 아마 다 서독으로 몰려 올 것이니, 동독 사람들을 고향에 묶어두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이죠. 하지만 남북 사이엔 돈을 같은 비율로 바꿔줘도 넘어올 사람은 다 넘어올 겁니다. 남쪽에서 한달 일 잘하면 북한 돈 1억 넘게 버는데 안 오겠습니까.
서독은 엄청난 예산을 동독에 쏟아 부었는데, 결과 지금 독일에 가면 동독 지역은 최신 고속도로가 쫙쫙 뚫려 있고, 서독 지역의 도로는 동독에 비해 훨씬 낙후돼 있습니다. 건물들도 동독에 최신 건물이 더 많고, 서독 건물은 낡아서 이제부터 다시 재건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득은 여전히 동독이 서독보다 20~30% 적게 받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이 격차는 한 세대가 다 죽기 전엔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다 서독에 갔고, 또 동독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건성건성 살던 습관을 아직도 못 버렸습니다. 거기에다가 서독이 동부 지역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습니다.
“서독 너 네가 필요하니까 했지 우리가 해달라고 했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많은 세금을 동독에 쏟아 붓고도 고맙다는 말도 못 듣는 서독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겠죠. 아마 남북이 통일이 되면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남쪽 사람은 세금이 크게 늘어나 살기 어려워졌는데, 정작 북한 사람들은 고맙단 말은 안하고 불평만 하고,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끔찍하니까 남쪽에서 통일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게르만족과 조선 민족은 국민성도 또 크게 다릅니다. 이것도 설명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독일 통일 이야기를 꺼내니 정말 할 이야기가 끝이 없는데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일 겁니다. 나중에 기회되는 대로 계속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