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과 북의 겨울나기 풍경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2.10
winter_repair-305.jpg 한국가스안전공사와 봉사단원들이 경북 청도군에서 홀로 어르신의 따뜻한 겨울나기 돕기를 실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는 계속 추웠는데 북쪽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추우면 제게 “추운 곳에서 살다 왔으니 여긴 춥지도 않겠네” 하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확실히 제 고향은 서울보단 많이 춥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서울 날씨가 왜 이리 춥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더운데 습관 돼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알 수 없습니다.

서울이 안 춥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저는 “아니요, 많이 춥습니다. 타향의 겨울은 늘 추운 가 봅니다”하고 대답한답니다. 추워서인지 북에 있을 때는 별로 걸려본 적이 없는 감기를 최근 3년 연속 걸렸습니다. 내년부터 겨울 전엔 병원에서 한대에 25딸라 정도 하는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할까 봅니다.

북에선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기숙사가 너무 추워서 밤에 잘 때 겨울 모자를 꼭 눌러쓰고, 동복 입고, 양말 두세 개씩 겹쳐 신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동화까지 신고, 그것도 모자라 이불 두개 세 개씩 덮고 잤습니다. 명색이 기숙사지 물주전자가 꽁꽁 얼어붙는 그야말로 밖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죠.

등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색이 최고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이지만, 교실 역시 물이 얼어붙을 정도였고, 언 책상 위에서 강의 내용을 받아 적다보니 새끼손가락이 동상을 입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겨울엔 새끼손가락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겨울에 특히 고생하는 것은 여학생들이었습니다. 남자들은 그래도 바지라도 입어서 안에 많이 껴입으면 되지만, 여학생들은 오전 수업이 진행되는 다섯 시간 동안 추운 교실에서 치마를 입고 오돌오돌 애처롭게 떨었습니다. 바지를 입게 못하게 통제하니 어쩔 수 없이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어야 했던 거죠.

전기가 없어서 온열기 같은 것도 꿈도 못 꿨습니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하루 종일 추위 속에 노출돼 있다 보니 감기는 걸리지 않았습니다. 감기는 추워서가 아니라 더워서 오는 병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대학 사정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후배들이 여전히 손가락을 호호 불면서 공부할 것은 뻔합니다. 나라 사정이 점점 좋아져야 하는데 나아질 기미도, 희망도 안 보이는군요. 저 있을 때부터 조금만 참으면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귀가 아프게 들었는데, 아직도 그런 선전 수법도 달라진 것도 없고요. 2012년이 지나면 또 무슨 구실 내걸고 조금만 기다리자고 할까요. 이제는 간부들도 강연회에 나와서 ‘조금만, 조금만’하고 외치기 멋쩍을 텐데 말이죠.

저는 여기 서울에서 난방을 틀다간 옛날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서울의 거의 모든 아파트들은 조절기로 난방을 필요한 온도만큼 틀고 삽니다. 남쪽은 거의 모든 석유와 가스를 해외에서 사옵니다. 여긴 나무 때는 집은 아주 드물고, 구멍탄 쓰는 집도 있긴 있습니다만 주로 가난한 동네에 한정된 일입니다. 그러니 산은 어딜 가나 나무가 빽빽하고 1960~70년대 번창했던 탄광은 이젠 거의 다 문을 닫았습니다. 석탄 캐기보단 석유와 가스를 사오는 것이 원가가 더 눅은가 봅니다. 그래도 외화주고 사온 가스로 물을 덥힌 난방을 쓰니 사용료는 내야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40평방미터 정도의 작은 집은 한 달에 50 딸라 정도, 100평방미터 정도의 집은 한 달에 100 딸라 정도 냅니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난방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만 가계소비에서 난방비가 차지하는 부분은 남쪽이 훨씬 작습니다. 남쪽은 가구당 월 소득이 평균 2~3000 딸라 정도 하기 때문에 100 딸라를 난방비로 쓴다고 해도 소득의 20~30분의 1입니다. 여기에 밥해 먹는 가스 비용은 한 달에 대여섯 딸라 정도, 목욕하고 설거지하느라 쓰는 더운물 비용은 수십 딸라 정도 듭니다.

그런데 북쪽은 겨울이면 석탄이나 나무와 같은 땔감을 사는데 드는 비용이 거의 식량을 사는 것만큼 듭니다. 일반적인 가구 지출의 3분의 1 이상이 드는 셈이죠. 남북을 비교할 때 먹고 입고 때는데 드는 돈을 제하면 북쪽 가정엔 거의 남는 것이 없지만, 남쪽은 일반적으로 번 돈의 절반 이상이 남습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누군가 “여기 서울에선 겨울에 양복만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아침에 출근할 때 밖에 나오지 않고 집안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몰고 오고, 회사에 와서 지하주차장에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올라오고, 하루 종일 업무를 보고 퇴근할 때 다시 순서를 거꾸로 가면 하루 종일 밖에 나갈 일이 없습니다. 실내는 다 난방이 잘되니 겨울엔 와이셔츠만 입어도 됩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 지금 저도 겨울에 밖에 있는 시간을 다 합쳐도 하루 한 시간도 안 됩니다. 그러니 와이셔츠만 입고 나는 것은 좀 무리지만 내의 안 입고 다니는 사람은 태반입니다. 제가 내의 입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북쪽 사람이 내의 입고 사냐고 웃습니다. 거리에 나가면 한 겨울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북쪽처럼 통제해서가 아니고 멋을 부리느라 그러는 것인데, 아마 오랫동안 밖에 있으라면 자연히 바지를 다 입겠죠.

그런데 이렇게 날씨도 상대적으로 덥고, 난방도 잘 돼 있는 도시에 살면서도 덥다는 생각이 없네요. 멀리 타향에서 10년 넘게 고향을 가보지 못하다보니 가슴 어딘가가 텅 비어있는 듯하고 그 빈자리엔 냉기만 차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추워도 고향에서 좀 떨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영하 수십 도라도 절대 춥지 않을 것 같네요. 머잖아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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