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세계와 격리된 북한의 축구환경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6.25
nk_loss_jung-305.jpg 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타운 그린 포인트 경기장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G조 조별리그 북한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북한은 0:7로 포프투칼에 패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중계를 보느라 피곤하시죠. 정전이 자꾸 돼서 텔레비전을 못 보는 지역들도 참 많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밧데리를 이용해서 정전에 상관없이 보는 집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뽀르뚜갈전에선 북에서 어쩌다가 생중계까지 했는데 7대0이라는 큰 점수차가 나서 저도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게 바로 세계의 벽이라는 겁니다.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도 처음에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을 때는 9대0으로 진적도 있는데 자꾸 본선에 나가다보니 2002년에는 이번에 북한팀에 수치를 안겨준 뽀르뚜갈은 물론 현재 세계 순위 2위인 스페인, 그리고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이탈리아 이런 강팀들을 다 이기고 4강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도 16강에 올라가는데 성공했습니다. 자꾸 경험을 쌓아야 실력이 늘고 선수를 키워내는 요령도 생기는 겁니다.

하지만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의 후과로 지금 많은 청년들이 어렸을 때부터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키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 자원이 많지 않는 것이 참 치명적인 일입니다. 경험은 쌓으면 되겠지만,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고 앞으로 16강에 올라가려면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이 16강에 올라가기까지는 무려 48년이 걸렸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기는 남과 북이 똑같습니다. 이번처럼 월드컵을 방영할 때면 남쪽에서도 밤늦게까지 축구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에서도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남과 북이 세계적 수준의 축구를 접하는 방식은 평소에 차이가 있습니다. 북에선 월드컵이라도 해야 다른 축구 강국의 실력을 볼 수 있습니다. 월드컵이 방영되지 않으면 고작 방영하는 것이 북조선팀과 아시아 나라들과의 경기인데, 그건 아시아라는 좁은 시야밖에 제공하지 못합니다. 그마저도 다른 나라와 축구경기를 일년에 몇 경기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도 생중계도 아니고 녹화중계로 90분 경기를 한 절반 잘라서 방영하죠. 그 이유는 중요하게는 북에는 텔레비전 통로가 한개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개 뿐인 통로에서 위대성 선전이니 당정책 홍보니 이런 재미없는 것만 하루 종일 내보내니 정작 사람들이 볼만한 프로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밖에 방영안하니 볼 것도 얼마 없죠. 만수대 통로 같은 것은 그나마 좀 볼 것이 있지만 이것도 주말에만 몇 시간 방영하는데다 평양시민들만 볼 수 있으니 이것도 대책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여기 남쪽에선 하루 종일 나오는 텔레비전 통로가 100개가 넘습니다. 저의 집에서도 130개 통로인가 나옵니다. 영화만 나오는 통로는 영화만 하루 종일 나오고, 만화가 나오는 통로는 만화만 나오고 체육경기가 나오는 통로는 체육경기만 나옵니다. 이밖에 연속극 통로, 보도만 나오는 통로, 기록영화만 나오는 통로, 물건 사라고 이것저것 파는 통로 등 아무튼 엄청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으니 자기 취향대로 보는데 저는 체육통로를 잘 봅니다. 체육통로도 한 개가 아니고 네 개쯤 있는데 여기서는 하루 종일 경기만 나옵니다.

축구만 해도 이 지구상에는 매일 엄청 많은 경기가 진행되는데, 그걸 다 볼 수 없습니다. 여기 남쪽에선 한국 선수들이 나가있는 해외팀 경기들을 위주로 방영합니다. 해외팀이라고 하면 국가팀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북에서처럼 4.25체육단, 평양체육단 하는 식으로 각 나라마다 20개 정도의 1급 리그 축구팀들이 있는데 그 팀끼리 하는 경기가 주로 많습니다.

리그가 강한 나라는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정도인데 이런 나라들에 있는 유명 축구팀들은 세계 유명 선수들을 돈을 주고 사옵니다. 돈이 많은 팀은 비싼 축구선수들을 사오다보니 매우 강합니다. 한국의 박지성 선수를 아시죠. 박지성 선수도 영국에 있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라는 세계에서 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주 유명한 팀에서 뜁니다. 이런 팀들은 브라질 대표팀과 맞붙어도 아마 이길 겁니다. 이런 세계 최고 수준의 황홀한 경기를 저는 매주 볼 수 있으니 정말 남한에 와서 그것이 참 좋습니다.

뽀르뚜갈의 호날두 선수도 작년까지만 해도 박지성 선수와 한 팀에서 뛰었는데 작년에 약 1억2000만 딸라로 스페인의 다른 유명팀에 팔려갔습니다. 한 선수 몸값이 1억2000만 딸라라면 상상이 안 되시죠. 이번에 북조선팀은 그렇게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과 경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보면 축구선수가 돈을 가장 잘 버는 체육인도 아닙니다. 골프선수나 자동차경주선수, 그리고 야구선수 이런 선수들의 몸값이 축구선수보다 더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북조선팀도 이번에 월드컵 본선에 출전함으로써 국제축구연맹에서 최소한 1000만 딸라는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세계축구연맹에 전 세계에서 받은 시청료나 광고비를 본선에 참가한 팀들에게 나눠주는 것인데 북한 선수 10여명이 이렇게 1000만 딸라라는 거액을 벌어갔으니 이들에게 높은 대접을 해주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북조선도 텔레비전 통로가 다양해서 어렸을 때부터 높은 수준의 축구를 수시로 접하면서 “나도 저렇게 유명한 선수가 되겠다” 이런 꿈과 포부를 가지게 되는 살만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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