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설날에 우는 남자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09.12.31
2009.12.31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 덧 2009년도 다 가고 방금 전에 2010년이 됐습니다. 여러분들께 서울에서 머리 숙여 삼가 새해인사를 올립니다. 새해에도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 많이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설은 21세기의 첫 10년을 다 보내고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설이라서 더욱 뜻이 깊습니다.
2010년대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번 10년 안에는 과거 우리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변화의 해일이 조선반도를 휩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010년대에는 나이로 볼 때 혁명의 2세들이 물러가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김일성 장군에 이어 김정일 장군까지 섬겼으면 됐지 어떻게 또 이자 겨우 28살밖에 안된 새파란 김정은을 수령으로, 장군으로 다시금 섬기겠습니까. 봉건왕조시기도 아니고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010년대에는 제가 고향을 찾아가는 날이 꼭 올 것 같습니다.
손꼽아보면 제가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봤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이 그리워 눈물짓던 모습을 말입니다.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특히 한 살을 더 먹는 설날에는 고향 생각이 더욱 납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 되면 점점 고향생각이 희미해질 것 같죠. 그런데 제가 체험해보니 아닙니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욱 사무치게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 고향입니다.
‘기러기떼 날으네’라는 노래가 있죠.
눈을 감아도 그리운 고향
푸른 언덕이 어리어 오네
타향만리길 바래워 주던
나의 어머니 안녕하신지
보고 싶은 고향에 가고 싶은 조국에
아 내 마음 기러기 끼르륵끼르륵 가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향생활을 시작한지가 벌써 20년 가까이 돼 옵니다. 정말 밖에서 힘든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을 고비를 하도 많이 넘겨서 저는 눈물이 없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타향살이가 길어질수록 점점 눈물이 맺히는 일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슬프거나 감동을 받아서 나오는 눈물이 아닙니다. 울컥해서 나오는 눈물입니다. 혼자만 보기 아까운 좋은 것을 볼 때면 그 뒤에 늘 고향생각이 뒤따라 묻어나오면서 울컥해집니다. 20대나 30대 초반까지는 이렇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지난달 미국에 갔을 때도 마음속으로 여러 번 울었습니다.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차를 달리느라면 기막히게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훌륭한 골프장이 해변을 따라 있는 곳인데 푸른 태평양 파도와 파란 잔디를 마주하고 북한 동화에 나오는 그림보다 더 멋진 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더군요.
처음 한 10분은 너무 멋진 광경에 입을 벌리고 감탄했지만 그런 동화 속 풍경 속에서 미국 사람들이 여유작작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는 순간 그만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내 고향도 꾸려만 놓으면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어찌하여 내 고향은 가난의 흔적이 덕지덕지 앉은 민둥산 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까. 왜 그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으면서 그걸 누릴 생각도 못하고 인생들이 흘러가는 것입니까. 그런 인생들이 억울해서 그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한참을 남몰래 울었습니다.
서울에서 한껏 멋을 빼고 다니는 처녀들을 봐도 고향에서 먹고 살기 위해 가꿀 시간도 없이 산더미 같은 배낭을 메고 다닐 우리의 누이들이 생각나 울컥해집니다.
심지어 서울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봐도 눈물이 납니다. 시위대의 모습 위에 평양의 아스팔트에서 여러분들과 어깨를 곁고 누워 시위가요를 부르는 내 모습이 겹쳐지면서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날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눈물이 납니다.
참, 기쁜 새해 아침에 제가 잠시 망향의 감상에 젖었군요. 새해 아침엔 기쁘고 즐거운 소리만 해도 모자랄 텐데 말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도 아침에 세배를 다니느라 또는 찾아온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겠군요. 세배를 다니는 풍습은 안타깝게도 여기 한국에서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이쁜 옷을 차려입고 친구들끼리 어울려 사진 찍으려 시내를 휩쓸고 다니겠군요. 눈앞에 그 광경이 훤히 그려집니다. 오늘 만큼은 온갖 시름을 다 잊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0년대는 우리가 과거를 털어내고 새롭게 잘 사는 세상으로 도약하는 위대한 비약의 시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방금 전 12시가 지나서 저는 2010년대에는 저의 가장 큰 소원인, 고향으로 가는 날이 꼭 오기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저도 건강하고 여러분들도 건강해서 꼭 그날을 봐야겠죠. 새해 여러분들과 온 가족의 평안과 행복을 축원하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어느 덧 2009년도 다 가고 방금 전에 2010년이 됐습니다. 여러분들께 서울에서 머리 숙여 삼가 새해인사를 올립니다. 새해에도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 많이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설은 21세기의 첫 10년을 다 보내고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설이라서 더욱 뜻이 깊습니다.
2010년대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번 10년 안에는 과거 우리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변화의 해일이 조선반도를 휩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010년대에는 나이로 볼 때 혁명의 2세들이 물러가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김일성 장군에 이어 김정일 장군까지 섬겼으면 됐지 어떻게 또 이자 겨우 28살밖에 안된 새파란 김정은을 수령으로, 장군으로 다시금 섬기겠습니까. 봉건왕조시기도 아니고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010년대에는 제가 고향을 찾아가는 날이 꼭 올 것 같습니다.
손꼽아보면 제가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봤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이 그리워 눈물짓던 모습을 말입니다.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특히 한 살을 더 먹는 설날에는 고향 생각이 더욱 납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 되면 점점 고향생각이 희미해질 것 같죠. 그런데 제가 체험해보니 아닙니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욱 사무치게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 고향입니다.
‘기러기떼 날으네’라는 노래가 있죠.
눈을 감아도 그리운 고향
푸른 언덕이 어리어 오네
타향만리길 바래워 주던
나의 어머니 안녕하신지
보고 싶은 고향에 가고 싶은 조국에
아 내 마음 기러기 끼르륵끼르륵 가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향생활을 시작한지가 벌써 20년 가까이 돼 옵니다. 정말 밖에서 힘든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을 고비를 하도 많이 넘겨서 저는 눈물이 없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타향살이가 길어질수록 점점 눈물이 맺히는 일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슬프거나 감동을 받아서 나오는 눈물이 아닙니다. 울컥해서 나오는 눈물입니다. 혼자만 보기 아까운 좋은 것을 볼 때면 그 뒤에 늘 고향생각이 뒤따라 묻어나오면서 울컥해집니다. 20대나 30대 초반까지는 이렇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지난달 미국에 갔을 때도 마음속으로 여러 번 울었습니다.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차를 달리느라면 기막히게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훌륭한 골프장이 해변을 따라 있는 곳인데 푸른 태평양 파도와 파란 잔디를 마주하고 북한 동화에 나오는 그림보다 더 멋진 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더군요.
처음 한 10분은 너무 멋진 광경에 입을 벌리고 감탄했지만 그런 동화 속 풍경 속에서 미국 사람들이 여유작작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는 순간 그만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내 고향도 꾸려만 놓으면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어찌하여 내 고향은 가난의 흔적이 덕지덕지 앉은 민둥산 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까. 왜 그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으면서 그걸 누릴 생각도 못하고 인생들이 흘러가는 것입니까. 그런 인생들이 억울해서 그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한참을 남몰래 울었습니다.
서울에서 한껏 멋을 빼고 다니는 처녀들을 봐도 고향에서 먹고 살기 위해 가꿀 시간도 없이 산더미 같은 배낭을 메고 다닐 우리의 누이들이 생각나 울컥해집니다.
심지어 서울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봐도 눈물이 납니다. 시위대의 모습 위에 평양의 아스팔트에서 여러분들과 어깨를 곁고 누워 시위가요를 부르는 내 모습이 겹쳐지면서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날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눈물이 납니다.
참, 기쁜 새해 아침에 제가 잠시 망향의 감상에 젖었군요. 새해 아침엔 기쁘고 즐거운 소리만 해도 모자랄 텐데 말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도 아침에 세배를 다니느라 또는 찾아온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겠군요. 세배를 다니는 풍습은 안타깝게도 여기 한국에서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이쁜 옷을 차려입고 친구들끼리 어울려 사진 찍으려 시내를 휩쓸고 다니겠군요. 눈앞에 그 광경이 훤히 그려집니다. 오늘 만큼은 온갖 시름을 다 잊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0년대는 우리가 과거를 털어내고 새롭게 잘 사는 세상으로 도약하는 위대한 비약의 시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방금 전 12시가 지나서 저는 2010년대에는 저의 가장 큰 소원인, 고향으로 가는 날이 꼭 오기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저도 건강하고 여러분들도 건강해서 꼭 그날을 봐야겠죠. 새해 여러분들과 온 가족의 평안과 행복을 축원하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