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은 왜 밤10시 포탄상자를 만들라 했나?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4.02.23
[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은 왜 밤10시 포탄상자를 만들라 했나? 이스라엘 군인들이 하마스로부터 압수한 무기들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빨간 원안이 북한제 F-7 로켓으로 추정되는 무기.
/ IDF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는 일이겠지만, 지난해 10월 중순 북한 각 기관과 기업소의 당 책임자, 행정 책임자들이 밤 10시에 소속 시, 군 당위원회에 긴급 호출됐습니다.

 

이들에게 하달된 것은 최고사령관 명의의 긴급 명령이었는데, 내용은 학생과 연로보장 노인들을 제외한 모든 성인남성들이 24시간 안에 포탄상자 2개씩 만들어 바치라는 것이었죠.

 

당위원회에선 친절하게 포탄상자 견본품까지 보여주었는데, 규격은 가로 30, 세로 120, 높이 30㎝로, 직경 120㎜ 이상 되는 포탄 2발을 마주 놓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또 무조건 폭 15, 두께 1.5㎝의 이깔나무 판자로 제작돼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지요.

 

명령이 하달된 이후 벌어진 일들은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겁니다. 그 순간부터 이깔나무 판자가 순식간에 동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보가 새어나가 목재 가공 공장과 가공업자들이 발 빠르게 시장에서 목재상들에게서 이깔나무 판자와 목재를 사들여 밤새 포탄상자를 제작했습니다.

 

뒤늦게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시장에 나가니 해당 규격의 포탄상자 2개는 중국돈 500위안에 팔리고 있었는데, 이건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약 70달러가 됩니다.

 

직접 만들려고 하니, 해당 규격의 판자는 1m 2.8달러에 팔렸습니다. 직접 시장에서 목공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자재값만 28달러에 가공비 5달러가 붙어 33달러나 들었습니다. 시장에서 포탄상자 2개를 사는 것과 비교하면 고작 4달러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걸 들으면서 저는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너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령은 독재적이고, 하달한 방식은 사회주의적이지만 그걸 집행하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시장경제의 논리로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고 해도 없는 이깔나무를 만들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성인남성들은 명령을 집행한 자와 못한 자로 나뉘었고 집행하지 못한 자는 두고두고 사상검증을 받아야 할 겁니다.

 

제가 북한 내부소식통을 통해 들은 정보에 따르면 이렇게 모은 포탄상자가 전국적으로 약 200만 개라고 합니다.

 

포탄상자를 만들라는 명령이 내려진 시점은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 지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와 일치합니다.

 

여러분, 70달러면 북한 일반 4인 가정이 두 달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아닙니까. 북한 인민의 고혈을 짜낸 수제 포탄상자는 지금쯤 어느 우크라이나 벌판의 진창 속에서 썩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포탄상자까지 수거해 재활용하지 않거든요.

 

저는 포탄상자 수탈사건은 북한의 위선과 허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지난달 정치국 확대회의에서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식료품·소비품을 비롯한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 당과 정부에 있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며 반성하는 척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이 최근 몇 년 동안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못했다며 울먹인 적도 여러 차례나 있었습니다. 가혹한 세외부담으로 민심이 악화되면 인민들을 뜯어내지 말라며 몇몇 간부들을 본보기로 호되게 처벌하는 척 한 것도 김정은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인민이 두 달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24시간 만에 꿀꺽하고는 입을 싹 씻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선의 극치입니까. 나는 뜯어내도 좋고, 너희는 안 된다는 것인데, 솔직히 간부들도 김정은의 처벌을 피하려면 인민들을 뜯어내지 않으면 안 될 진퇴양난인 것을 누구나 압니다.

 

또 그리고 북한도 명색이 국가인데, 포탄상자를 만들 능력도 없어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전국 남성들이 톱과 망치를 들고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내부는 이 지경인데, 김정은은 정찰위성을 쏘고 핵잠수함을 만들겠다고 허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서도 연일 신형 미사일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며 시험발사 사진을 공개하는가 하면 군수공장에 찾아가 수많은 미사일과 발사 차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공개하고 있습니다. 열병식을 하면 미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몇 억 달러짜리 무인 정찰기를 흉내 낸 무인기가 날아다니고, 겉은 그럴 듯한 전차며 대포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건 보이는 것이 다인 껍데기일 뿐입니다.

 

지금 북한의 군수산업은 김정은이 허세를 부릴 수 있는 몇몇 견본용 무기 제작과 러시아에 보낼 탄약 제작에 모든 것을 쏟고 있습니다.

 

최근 김정은은 연일 대남 강경발언을 내뱉고 있지만, 정작 헐벗은 북한 군인들은 배고파서 민가를 약탈하고, 연료가 없는 기갑부대와 함정들은 대책 없이 녹이 슬고 있습니다. 공군은 비행기 추락이 무서워 훈련도 못하고 있습니다.

 

남쪽 일각에서 또 미국에선 김정은이 하도 허세를 부리니 정말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북한군은 군이 갖춰져야 할 기본이 안돼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군대가 움직이는 것이지 샘플용 무기 몇 개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려면 먹을 것도 있어야 하고, 장비들을 움직일 연료도 필요하고, 탄약과 피복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군에 이런 물자들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아마 전쟁을 하려면 북한 인민은 수십 번을 수탈당해야 할 겁니다. 인민군대 비상식량 만들어 바치라, 장갑을 내라, 군화를 만들어내라, 디젤유 몇 ㎏씩 내라, 탄약상자 만들어 바치라 심지어 총 청소용 천까지 내라고 할 겁니다. 이건 제 상상이 아니라 이미 여러분들이 다 해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본도 갖춰지지 않은 군을 거느리고남조선 영토 평정을 운운하는 김정은의 허세가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