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이 농사하면 어떤 일이?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3.03.17
[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이 농사하면 어떤 일이? 북한주민들이 비무장지대 내 선전마을인 기정동 마을에서 밭일을 하고 있다.
/REUTERS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또 봄이 되니 북에서 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나옵니다. 농사를 잘 지어서 먹는 문제를 풀겠다는 것인데, 그 대책이란 것이 농업 발전에 부정적 작용을 하는 내적 요인들을 제거하라거나 당적 지도를 강화하라는 것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노동신문 15일 자를 보니 양강도에서 밀 농사를 대대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사진을 실었던데, 제가 그걸 보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제가 다 답답한데, 북한 농촌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작년도에 북한의 농사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장마당에서 식량을 사려고 해도 파는 사람이 없어 사기 어려운 아사 위기로 몰린 겁니다.

 

애초에 협동농장 체계에선 농사가 잘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이유들도 있을 겁니다. 가령  코로나로 국경을 3년 넘게 봉쇄하다 보니 식량이나 비료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탓도 있고, 지난해 봄에 곡창지대가 심각한 가뭄 피해를 본 데다 장마철에 집중호우로 많은 논밭들이 유실된 탓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좀 북한 소식통들로부터 들어보니 농사를 망친 가장 큰 원인은 밀 농사를 망쳤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김정은은 2021 9월 ‘옥수수에서 밀과 보리농사 중심으로의 방향 전환’을 새로운 농업정책으로 제시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전국 곳곳에서 벼나 옥수수를 심던 논밭에 밀을 심기 시작했고 어떤 곳에선 개인들의 텃밭에도 밀을 심으라고 강요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전체적으로 밀과 보리 재배지가 30% 정도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밀 농사를 시작했던 거의 모든 농장들이 계획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밀을 심지 않았으면 벼나 옥수수를 심었을 것이기 때문에 밀 농사가 망한 것만큼 북한 전체의 식량 생산이 줄어든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밀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비료가 없고, 기상 조건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북한 농토가 너무 산성화돼서 밀 재배에 적합지 않기 때문입니다. 밀은 산성화된 토지에 취약한 작물입니다. 이런데도 이걸 밀어붙이니 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앞으로 밥 대신에 빵을 먹이겠다는 김정은의 구상이 옳은지는 논하지 않더라도, 농업의 방향을 확 바꾸는 일은 충분한 검토와 시험 단계를 거치며 점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럴 수가 없는 구조라는 걸 여러분들도 잘 압니다.

 

김정은이 지시하면 온 나라가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어디 양강도만 밀 재배지를 늘이겠습니까. 다른 곳에서도 방침 관철해야 하니 지난해 흉작에도 불구하고 올해 북한의 밀 재배지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농민들이 밀 농사가 적합지 않다고 판단해도 불만을 말하면 반동으로 몰립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말에 밀 농사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자는 반당반혁명분자로 처벌하겠다는 공문까지 하달했습니다. 아니, 김정은이 농사를 알긴 뭘 안다고 이거 심어라 저거 심어라 지시합니까.

 

김정은이 집권한 지 벌써 12년이 지났지만, 저는 김정은이 농가를 방문한 것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농촌에 간 것도 몇 년 전인지 가물가물합니다. 농사를 모르는 인간이 농업 총사령관을 자처하고, 정작 농민들은 불만도 말하지 못한다면 그런 북한 농업엔 미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김정일 때부터 잘 봤지 않습니까. 고난의 행군 기간에 온 나라에 도둑떼들이 득실득실한 데 산에서 염소 기르라, 토끼 기르라 이런 현실 모르는 소리 해대고, 갑자기 또 양어장 건설하라 해서 멀쩡하던 밭을 파내던 일들이 눈에 선합니다. 전기 없고, 사료 없으면 양어가 될 수가 없다는 걸 김정일이 몰랐던 거죠. 이후에도 감자는 쌀이라는 헛소리를 해대고, 철갑상어 기르라, 연어를 기르라, 세포등판에 목장을 만들라, 타조 기르라 아무튼 지금까지 했던 헛발질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김씨 일가가 지시해서 잘 된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런데 밀이라고 잘 되겠습니까.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는 원래 망하게 돼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중국만 봐도 많습니다. 하나만 실례를 들겠습니다. 1955년에 하루는 모택동이 참새를 보더니 “저 새는 해로운 새이니 다 죽여라”고 말했습니다. 참새가 곡식을 먹어 노동의 결실을 도둑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 주석 말씀이라고 그때부터 수 억 명의 중국인들은 딴 일을 다 제쳐두고 참새를 잡느라 총동원됐는데, 새가 내려앉을 만한 곳마다 기다렸다가 냄비와 북을 두드리며 자지 못하게 했죠. 잡은 참새의 무게를 재서 상과 표창을 나눠주었습니다. 결과 중국의 참새는 멸종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참새가 멸종되자, 이번엔 메뚜기 떼가 중국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참새는 낟알도 먹지만, 농작물과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각종 곤충과 벌레들을 훨씬 더 많이 잡아먹는 이로운 새입니다. 그걸 아는 학자들이 중국에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말하면 모 주석 말씀에 토를 단다고 반동으로 몰리니 말을 못 하는 것이죠.

 

중국은 2년이 지나서야 참새를 잡으면 먹이사슬이 깨져서 해충이 엄청 퍼지고 그게 더 나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늦었죠. 참새가 없어지니 해충이 퍼져 농사가 완전히 망했고, 사람을 잡아먹던 3년 기근이 닥쳤습니다. 모택동 한마디에 무려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하는 수 없이 소련에서 참새를 사 와서 생태계를 복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북한이 하는 짓이 그때와 뭐가 다릅니까. 김정은이 지시하니 아닌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래서 수천 년 전에 공자가 이미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고 한 게 아니겠습니까.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인민을 잡아먹는 김정은 체제가 사라져야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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