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김정일의 노작이라는 ‘영화예술론’ 발표 50주년 기념보고회가 열렸더군요.
영화예술론은 김정일이 31살 때 발표가 됐습니다. 북한은 이를 인류 영화학의 한 획을 그은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고 칭송합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십시오. 대학 다닐 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주색잡기만 하던 김정일이 무슨 그런 대단한 철학을 내놓는단 말입니까. 김정일이 대학을 졸업하고 선동선전부에서 영화를 담당했긴 했지만, 그가 영화에 대해 대단한 조회가 있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예쁜 여배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결국 연기지도를 해준다고 하면서 여배우들을 건드리다가 최종적으로 유부녀였던 5살 연상의 여배우 성혜림을 데려다 살림을 차렸습니다.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난 성혜림은 월북 작가 리기영의 아들 리평과 결혼했고 딸 이옥돌까지 낳은 애 엄마였습니다. 김정일은 성혜림을 전 남편인 리평을 강제로 이혼시킨 뒤 젊은 여자를 붙여주고 프랑스 주재 북한 유네스코 대표부로 발령내고 북한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혜림의 딸 리옥돌 역시 유학을 보낸다는 핑계로 유럽에 보냈고, 나중에 외교관 아들과 결혼시켜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게 했는데, 장성택이 1년에 한두 번씩 찾아가서 생활비를 챙겨 줬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배다른 형인 김정남까지 말레이시아에서 독살했는데, 끈이 다 떨어진 리옥돌은 지금 살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혜림은 1971년 5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첫 아들인 김정남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성혜림의 모친이자 김정일에겐 장모인 김원주가 중구역 중성동에 있는 김정일 집에서 살면서 애들을 돌봤습니다.
성혜림이 워낙 김일성도 아는 배우였던지라, 김일성의 귀에 불륜 사실이 들어가지 않게 김정일이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모릅니다.
김정일이 성혜림과 어떻게 불륜을 했고, 김정남을 얻고 어떻게 기뻐했는지는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이 쓴 ‘등나무집’이라는 수기와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이 쓴 ‘김정일 로열패밀리’란 책에 자세히 나옵니다.
나중에 김정일이 이 여자, 저 여자를 거쳐 또 고영희랑 바람을 피울 때 성혜림을 또 외국에 내쫓았는데, 이때 언니 성혜랑과 이한영도 외국에 같이 나왔다가 나중에 서방과 한국으로 망명해서 책을 썼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1973년 김정일이 영화예술론을 발표할 당시는 그가 남의 며느리 빼앗아 데리고 살면서 아들을 낳고 거기에 빠져 정신이 없을 때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무슨 대단한 천재입니까. 북한을 만들어놓은 꼴을 보십시오.
김정일이 영화예술론만 썼습니까. 별 데 다 참견했습니다. 나중에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그가 썼다는 예술 관련 노작만 보면 ‘연극예술에 대하여, 무용예술론, 음악예술론, 건축예술론, 미술론, 주체문학론’ 등 참견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런 논문을 썼다는 시기에 그의 옆에는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있었는데 그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김정일은 매일 밤 측근들을 비밀 별장에 불러 5과로 뽑은 미녀들과 밤새 술을 퍼마시고 살았습니다. 언제 예술을 공부해서 책을 썼겠습니까. 그거 다 남이 써준 걸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그래도 김정일이 1970년대 초반에 5대 혁명가극, 5대 혁명연극을 남긴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까봐 말씀드리는데, 그것도 다 다른 사람들이 써준 겁니다. 30살도 안된 김정일이 무슨 그리 재능이 있겠습니까.
5대 혁명가극의 시초인 ‘피바다’만 봐도 많은 인재들이 작품에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피바다’의 창작책임자였던 조명암이었죠. 월북한 뒤 이름을 조령출로 바꾼 조명암은 해방 전에 천재 소리를 듣던 사람이고, 해방 후 북한에 가기 전에 벌써 700여개의 대표곡을 내놓은 사람입니다. 민족과 운명에서 박정희 배우가 불렀던 ‘낙화유수’도 다 조명암이 쓴 노래입니다.
이런 조명암이 가극에 참여했으니 김정일은 그냥 묻어만 가는 거죠. 나중에 조명암은 북한에서 문화성 부상도 했고, 김일성 계관시인 칭호도 얻었고, 1993년 사망한 뒤에 애국열사릉에 묻혔습니다. 알고 보면 조명암도 1940년대 초반에 일본군을 찬양하는 여러 곡을 써서 친일인사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인데, 북한은 친일파를 청산한다고 하면서도 이용가치가 있는 인물은 철저히 이용했고, 지식을 빼먹고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김정일은 영화예술론에서 주체니 혁명이니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그에 맞지 않게 살았던 위선자 중의 위선자였죠. 그가 건드린 수많은 여성 중에 자식을 낳는 특권을 준 여자는 서울에서 큰 성혜림과 일본에서 태어난 김정은의 모친 고영희였습니다. 본처로 함북도 안전부 전화교환수 출신의 김영숙이 있지만 그건 아버지가 지정해주었으니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산 것이죠. 왜 북한에도 여성들이 많은데 김정일은 서울 출신과 일본 출신 재포만 선호했을까요. 자기가 영화예술론 같은 책으로 북한 사람들을 다 바보로 만들어놓으니 북한 출신 여성들은 대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영화예술론 같은 말도 안 되는 논리나 신봉하다보니 이제 북한은 1년에 영화 몇 편도 찍을 능력도 없는 예술의 불모지가 됐습니다. 영화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김정일이 시키는 대로 해서 제대로 된 거 어디 있습니까. 북한에서 몰래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국 영화를 보다 북한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어 못 봅니다. 저도 일 때문에 북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가 있지만 그 한심한 것들을 봐주자니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습니다.
북한 예술인들도 살기 위해 영화예술론 50주년 같은 행사를 열어야 하니 그들도 역시 고문 받는 심정이 아닐까요. 북한은 참 보면 볼수록 기막힌 곳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