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 빈대의 추억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3.11.17
[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 빈대의 추억 사진은 혜산시 주택가 모습.
/REUTERS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한국에서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빈대입니다. ‘빈대 공포’, ‘빈대와의 전쟁’, ‘빈대 주의보이런 제목으로 언론에서도 매일 다룹니다.

 

무슨 말이냐면, 한국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빈대는 1970년대에 사라졌는데, 최근 한 달 동안 전국에서 빈대 신고가 30건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빈대가 갑자기 부활했을 리는 만무하고, 제가 볼 땐 외국인들이 많이 오니 어느 짐에 빈대가 묻어와 번식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한국에 와서 21년 동안 살면서 빈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 원래 여기에 빈대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시대에도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까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지독한 생명력을 이어가던 빈대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그냥 죽진 않았겠죠.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개인 위생이 철저해지고, 살충제가 발달하면서 빈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빈대 때문에 한국에서 난리가 난 것을 보면서 북한에서 빈대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물렸습니다.

 

북한에는 어딜 가나 빈대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역전 대합실부터 빈대가 가득하니 그게 사람들 따라 어딘들 가지 않겠습니까.

 

특히 김일성대 기숙사 시절은 그야말로 빈대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여름이면 빈대에 물리기 싫어서 복도에 나와 자도 거기까지 따라 나오는 것이 빈대였습니다.

 

너무 물리다가 한 번은 앉은뱅이 책상 다리 네 개를 물그릇에 담그고 책상 위에서 잔 적도 있었습니다. 빈대가 책상 다리를 타고 올라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물그릇을 놓은 것이죠. 그런데 아침에 보니 또 잔뜩 물렸습니다.

 

어떻게 올라왔는지 궁금해서 살펴보니, 밤새 빈대가 벽을 타고 올라와 천정으로 기어가다가 사람이 누운 곳을 정확히 겨냥해 천정에서 뚝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것들이 이다지도 똑똑할 수 있지 싶어 혀를 내두른 기억이 납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복도에도 나갈 수 없으니 그냥 물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빈대가 많은데도 살충제가 없어 잡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데 어디 살충제 살 돈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사람들을 못살게 하던 빈대가 중국에 나오니 사라졌습니다. 물론 중국에도 빈대가 없진 않지만, 모든 집에 있는 것은 아니니 제가 있던 곳엔 빈대가 없었습니다. 나라가 잘 사니 해충도 없어지는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한국에 오고 나서는 빈대란 단어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지긋지긋한 기억이 또 떠오르네요. 물론 지금 발견된 빈대는 몇 십 군데 밖에 없으니 곧 박멸되겠죠. 빈대가 나타난 뒤로 방역 요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곤충 제거 약품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괴롭히는 해충이 빈대만 있는 것이 아니죠.

 

대표적으로 이, 벼룩, 바퀴, 파리, 모기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해충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북한에선 사람들을 엄청 괴롭히는 해충입니다.

 

특히 이는 기억만 떠올려도 몸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느낌이 새삼 떠오르며 몸서리가 쳐집니다. 북한에서 이가 없이 살기가 쉽지 않죠. 옷에도 이가 있고, 머리에도 이가 있고. 학교에서 이 검사, 서캐 검사 받던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애써 옷을 소독하고, 약을 쳐서 없애면 뭐합니까. 남의 집에 가서 자고 나면 또 옮아오는데요. 아직도 북한에는 이가 엄청 많을 겁니다.

 

한국은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가끔 나타났다는 보도가 뜨긴 합니다. 워낙 글로벌 국가이다 보니 외국에 나갔다가 전염돼 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곧 박멸됩니다.

 

한국은 매일 속옷을 갈아입고, 수시로 세탁기로 빨래를 하고, 세제가 좋고 하다보니 이가 몸에서 기생할 수가 없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자는 문화도 아니고, 출장 가도 호텔 등에서 자니 옮겨 다닐 여건도 아닙니다.

 

이뿐만 아니라 벼룩도 한국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 모기, 파리, 바퀴벌레입니다. 모기는 여름에 아무리 방충망을 쳐놔도 가끔 그걸 뚫고 들어와 물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파리는 많지는 않고, 가끔 파리를 보면 희귀하게 쳐다볼 정도입니다. 바퀴벌레는 오래된 집에서 가끔 출몰하는데,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만은 살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생명력이 끈질깁니다. 그래도 열심히 방역을 하니 이런 해충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해충 중에 제일 싫은 것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 , 벼룩입니다. 또 이런 해충들은 전형적으로 가난과 궁핍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잘 살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빈대, 벼룩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좋은 집에서 살고, 세탁기로 수시로 옷을 빨아 입고, 각종 해충 박멸제가 즐비한 곳에선 이런 해충들도 없어집니다. 북한에서도 잘 사는 집 가보십시오. 빈대, , 벼룩이 없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가난해서 살기 힘든데, 그리고 각종 가렴잡세로 고혈을 빨리는 세상인데, 여기에 먹지 못해 마른 몸이 빈대와 이, 벼룩에게 피까지 헌납하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괴롭습니까.

 

제가 빈대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생각이, 사람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을 잘 모르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빈대, , 벼룩이란 단어조차 잊어먹고 살다가, 문뜩 빈대 소동에 과거를 돌아보니, 지금 제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이제 북한 가서 살라면 무엇보다 이와 빈대를 다시 보게 될 생각에 제일 끔찍합니다. 언제면 북한 사람들도 저처럼 빈대와 이가 흘러간 아득한 추억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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