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시리아의 53년, 북한의 76년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4.12.20
[주성하의 서울살이] 시리아의 53년, 북한의 76년 시리아 반군이 내전 13년 만에 승리를 선언한 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시티역 광장에서 시리아인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달 8일 지구상에선 김정은과 더불어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의 한 명으로 꼽혔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됐습니다. 2011년 내전이 시작돼 13년 만에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장악했고 알아사드는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로 도주를 했습니다. 시리아는 북한의 우방국이라 김정은에게 주는 충격도 클 것이라고 봅니다. 현지 북한 대사관 직원들도 러시아의 도움으로 탈출을 시작했다는데 무사히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알아사드의 축출은 영원한 독재는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입니다. 시리아는 북한과 여러모로 닮았습니다.

 

우선 대를 이은 장기집권이 공통점입니다. 시리아도 아버지 알 하페즈로부터 시작해 알아사드까지 무려 53년이나 부자가 나라를 철권 통치했습니다. 알아사드는 원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형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자 후계자가 됐습니다. 당시 그는 영국 런던에서 안과 전문의사로 일했고, 부인도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후계수업을 받던 중 2000년 아버지가 죽자 35살에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2011년에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시민혁명이 시작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시리아에선 봉기가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봤습니다. 왜냐면 시리아엔 북한 보위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비밀경찰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독재자가 북한에서 뭘 배웠겠습니까. 비밀경찰은 수십 명에 한 명씩 정보원을 박아놓고 반정부 활동의 기미만 보이면 닥치는 대로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공포 통치도 결국 성난 민심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시리아에서도 정부를 공격하는 반군이 생겨나 힘을 키웠습니다.

 

알아사드는 러시아의 군사원조를 받으며 13년을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군사력을 다 탕진해 더는 시리아에 군사원조를 해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전세가 역전돼 패배했습니다.

 

알아사드는 집권 초기에 그래도 괜찮은 통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았습니다. 왜냐면 영국에서 살았고, 부인도 세계적인 대학을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잡자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인정도 자비도 없는 독재자가 됐습니다. 아내 역시 마리 앙투아네트란 말을 들을 정도로 사치에 빠져 자국민의 비참한 삶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것 역시 김정은과 비슷합니다. 집권 초기 김정은과 김여정 모두 스위스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북한을 개혁 개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런 기대는 다 부질이 없는 것이었고, 김정은은 아버지를 능가할 정도의 공포 정치를 펴고 있습니다. 시리아를 보면 독재자는 절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내 권력과 가족만을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년 내전 기간에 시리아 인구 2,300만 명 중에 1,100만 명이 난민이 됐습니다. 온 국토가 황폐화됐습니다. 거의 100만 명 가까이가 죽었습니다. 그나마 북한보다 나은 게 있다면 300만 명이 해외로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굶어 죽어도 중국으로 이렇게 건너갈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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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국가가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알아사드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았고 더 악독해졌습니다. 반군이 장악한 도시에 국제사회에서 사용이 금지된 화학무기를 비행기로 무차별 살포하는 짓도 벌였습니다. 알아사드 정권에 화학무기 기술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북한입니다.

 

이런걸 보면 김정은도 위기에 처하면 인민의 머리 위에 화학무기는 당연하고, 봉기로 궐기한 도시에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란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시리아의 독재자는 국민 학살에 막대한 돈을 탕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의 경우 자기가 도피할 방법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반군이 수도를 함락해 중앙은행의 장부를 확인하니 2018년에 알아사드가 러시아에 2 5,000만 달러를 현금으로 보낸 기록이 있었습니다. 25,000만 달러면 100달러와 500유로 지폐로 2톤이 넘습니다.

 

알아사드의 가족들은 이미 2013년부터 모스크바에 최소 20채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했습니다. 시리아 국고가 전쟁으로 텅텅 비었지만, 알아사드와 측근들은 국제 마약 밀매와 연료 밀수를 통해 돈을 벌어 러시아에 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수도가 함락되자 제일 먼저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로 도망갔죠.

 

북한도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김정은은 코로나를 핑계로 모든 무역을 꽁꽁 막아 놓고는 자기 집안이 먹고 사는 사치품은 매달 꼬박꼬박 들여갔습니다. 대북제재로 금고는 말라도 김정은은 정예 컴퓨터 전문가들을 해외에 보내 다른 나라 은행을 해킹해 돈을 훔쳐,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습니다.

 

지금 김정은은 러시아에 북한 특수부대 12,000명을 보냈습니다. 벌써 교전이 벌어져 전사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 군인들이 목숨을 내건 대가로 러시아가 지불하는 월급과 전사자들에게 주는 보상금을 김정은은 러시아 금고에 숨겨놓았을 지 모릅니다.

 

나중에 북한에서도 시리아처럼 봉기가 일어나면 김정은은 모든 인민을 전멸시킬 기세로 저항하다가 그것도 안되면 러시아로 도망을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자면 푸틴에게 잘 보여야 하니 수많은 군사물자를 보낸 것에 그치지 않고 군인들의 목숨까지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이제 시리아 독재정권이 붕괴됐으니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0여 년 전에 비밀경찰과 폭정으로 굳건한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이 많지 않았듯이, 지금 김정은 정권도 겉으론 굳건해 보여도 그 끝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반드시 올 겁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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