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모님 산소는 벌초를 했을까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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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2주 앞으로 다가온 9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성묘객들이 조상 묘에 벌초를 하고 있다.
추석 연휴가 2주 앞으로 다가온 9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성묘객들이 조상 묘에 벌초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주말 저는 남편의 고향인 부여에 추석맞이 산소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하루 전에 자가용을 타고 가면서 첫 휴게소인 행담휴게소에 들려 점심을 먹었고 서산휴게소에 들려서는 커피와 함께 호두과자를 먹었습니다. 휴게소마다 들려 간식을 먹는 재미도 나름대로 즐거웠고 그야말로 가을 여행이 따로 없었네요.

세월아 네월아 산천 구경을 하면서 가다 보니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목적지인 부여에 도착해 고향을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호텔을 정하고 조카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조상들의 묘소에 올랐습니다. 저희가 도착하니 조카들이 먼저 예초기를 들고 벌초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2개의 예초기로 잠깐 사이에 벌초를 끝냈고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주말이라 벌초를 하러 온 다른 가족들이 너무 많아 사전 예약 없이는 점심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음식점을 지정해 닭백숙을 시켜 먹었습니다. 시골에서 먹는 닭백숙이라 또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 먹는 음식이라 더 의미 있고 별맛이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척들과 함께 따끈한 커피 한 잔까지 곁들였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딸들이 살고 있는 평택에 들리기로 했습니다. 딸들이 사는 평택으로 오는 내내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내 고향에서도 지금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겠네요. 이곳 남한과 다르다면 여기에서는 예초기로 눈 깜박할 사이에 할 수 있지만 내 고향에서는 낫으로 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한번 산소를 찾아가려면 버스와 차가 없어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내 부모의 산소는 벌초를 해 주었을까, 누가 했을까 이번에는 막내 동생이 했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조금 쓸쓸해 지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맏이인 언니가 부모의 산소를 찾아가 벌초를 했었는데 인제는 언니도 걸을 수가 없어 가지 못하거든요.

고향에 있는 형제들도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 갈 수도 없지만, 통행증 때문에 다른 형제들은 더더욱 부모님의 묘소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잠깐 고향 생각을 하고 있는데 7살짜리 손녀로부터 할머니 어디까지 왔느냐고, 얼마 있으면 도착 하느냐 하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드디어 손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딸네 집에 도착했네요. 손자 녀석이 대하를 먹자고 하네요. 마침 대하 철이라 삽교호로 갔습니다. 저녁인데도 삽교호에는 음식점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겨우 몇 번째 만에 식당을 찾아 자리를 잡고 대하구이와 조개구이를 시켰습니다. 대하구이도 별맛이었지만 조개구이와 전어회 역시 별맛이었습니다.

한참 대하를 먹던 손자 녀석이 한마디 합니다. 2018년도에 해산물 중에 대하를 제일 많이 먹었으며 외할머니와 함께 먹는 대하구이라 더 맛있게 많이 먹었다고 마치 시 한 구절을 외우듯 해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음식점 주변으로 흰 말 한 마리가 예쁜 꽃 장식을 한 채 사람들을 태우고 다녔습니다. 개구쟁이들과 함께 말도 탔습니다.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내내 지나온 고향 생각이 문득 나네요.

해마다 9월의 첫 명절 휴식 날이면 김밥에 국수를 삶고 떡으로 간단한 점심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함께 대성산유원지와 동물원을 찾곤 했었거든요. 동물원을 구경하고 금잔디 밭에 보자기를 깔고 앉아 점심을 먹고는 유원지 안에서 놀이기구를 태웠는데 빼놓지 않고 탔던 것이 말이었습니다.

음악에 맞추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구 말을 탔지만 오늘은 손자들과 직접 살아 숨 쉬는 흰 말을 타고 삽교호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행복한 현실이 정말 꿈만 같기도 했습니다. 이곳 남한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명절이고 생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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