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의 아픔을 함께 나눈 송년회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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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가 2017년의 마지막 날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31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가 2017년의 마지막 날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회원님들과 함께 한 해를 보내면서 의미있는 송년회를 하고 싶었거든요. 마침 주말이라 아침 일찍 모란시장에서 이미 신청했던 개 한 마리를 구입해 왔습니다. 어느덧 오랜 시간이 지나자 제법 구수한 냄새가 나네요. 양념장도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한 명 두 명 모였습니다.

고향이 청진인 친구는 양배추를 넣어 직접 만든 송편을 가지고 왔고, 회령이 고향인 친구는 염지 김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크고 둥근 상 두 개에 빙 둘러 앉았습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고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해에는 보다 더 좋은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자고 건배를 들었습니다.

한 잔 두 잔 하며 이곳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얘기와 지난 고향에서 있었던 추억을 얘기하자 아련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습니다. 한 친구는 이곳 한국에서 딸애를 적응시키는 것이 조금은 어렵고 힘들었다고 하네요. 북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딸애를 이곳 한국에 와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고 두 대학에 보냈는데 다 성공하지 못했고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고 결혼도 해 한 아기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또 한 회원님은 제가 처음 보는 회원이었습니다만 아들을 적응시키던 얘기를 했습니다. 고향이 회령인데 이곳 한국에 온지 17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은 함북도 사투리로 얘기합니다.

중국에서 8년을 떠돌이 하며 살다가 2000년도에 이곳 한국에 온 그는 가족들을 데려 옴에 있어서 아내 분은 2번이나 강제 북송되다 보니 인제는 포기하고 북한에서 올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들과 딸은 성공해서 이곳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아들을 적응 시키는데 조금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걸 스스로 접해 가면서 적응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인테리어 업종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합니다만 때로는 어머니가 그리워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 단속에도 걸리고 영국에도 갔다 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돈을 마련해 스스로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 준다고 하네요. 그분은 아내 분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들었는데 회령시장에서 담배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산가족이 된 슬픔은 너무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탈북자들이 누구나 겪는 비극적인 마음의 상처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 상처는 그 누구도 치유를 해 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들을 때마다 때로는 마음이 짠하고 때로는 눈에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또 어떤 얘기들은 장편 소설에서도 읽어 볼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코앞에 있는 양력설을 두고 고향 생각이 난다고 합니다. 양력설이라 하지만 쌀을 구입할 돈은 없고 아이들에게 쌀밥을 해 줄 수가 없어 이집 저집 쌀을 얻으러 다녔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고 다녀보면 볼수록 모두가 어느 한 집 하나 나은 집도 없었다고 합니다.

끝내 쌀을 구하지 못한 그는 옆 동네에 갔다가 넓은 농장 밭에 쌓인 흰 눈 사이에 배추 잎이 조금 보였다고 합니다. 맨 손으로 눈 속에 뭍혀있는 꽁꽁 언 배추 떡잎을 두 손으로 파냈다고 합니다. 된장도 없고 소금도 없어 그냥 맹물에 국을 끓여 아이들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아무 간도 없는 배추국으로 양력설을 보내면서 배고픈 설움에 울고 또 울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배고픔의 설음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해마다 양력설이 오면 마음이 괜스레 아프고 눈물이 난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식들을 남겨 두고 행방을 떠난 것이 오늘날 이곳 한국에 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작은 애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생사를 알 수가 없다고 눈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은 다 같은 삶이기에 눈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서로 도와주며 사랑하며 새해에는 누구나 보다 즐거운 삶과 행복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마지막 건배 잔을 들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의미있는 송년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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