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탈북자들과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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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마감겨울을 장식하는 2월의 어느 날. 많은 탈북자들이 모여 뜻 깊은 추억을 만드는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낮 2시쯤에 모여 조를 무어 각기 차에 배치를 하였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3명이였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처음 만난 친구들이지만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듯이 다정하고 친밀한감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는 시간에 서로서로 고향에 대한 추억들과 중국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들, 북한에 북송 되였던 가슴 아팠던 사연들을 이야기 하며 눈물도 흘렸고 또는 고향과 타양에서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며 웃음도 나누었습니다.

산을 돌고 산비탈을 돌기도 하고 때로는 산 고개 같은 고개를 넘기도 하면서 저녁5시가 넘어서야 목적지인 원주 시 남연 면에 있는 신선 낚시터에 도착 하였는데 그야 말로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옆에도 산이 막힌 산골 마을이었고 전연지대인 듯 군부대 들이 많았으며 마을 밑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었는데 그 길은 제가 처음 보는 꼬불꼬불 산비탈길이었습니다. 평지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이런 산골 마을을 지도를 보며 찾아 가다보니 우리 조가 제일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비록 늦게 도착 하였지만 저는 주방에 나가 일손을 도왔습니다. 여성분들은 주방 일을 하고 남자 분들은 도끼로 나무를 패고 조개 구이를 할 불을 피웠습니다. 부엌일을 마친 저는 나무를 패는 모습을 보며 지난 군인 생활이 생각나 도끼를 들고 나무를 짜개였습니다. 어린 친구들은 야 야 하고 소리를 쳐 응원도 해주고 사진도 찍으며 한바탕 난리를 부렸습니다.

이렇게 떠들 썩 이며 우리들은 조개 구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회장님은 소주와 양주를 도리며 부어주었습니다. 캄캄한 겨울밤에 바다가도 아닌 높으나 높은 산 밑에서의 조개구이는 참 별맛이었고 맑은 밤공기에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는 듯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등 불을 피워놓고 우등 불 주위에 동그랗게 모여 서서 서로서로 자기소개 인사를 하였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고 고향 생각을 하며 고구마 구이도 하였습니다. 제2차로 큰방에 들어가 노래 기계를 틀어 놓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서로 각기 장기 자랑도 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밤 가는 줄을 모르고 보냈습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저는 잠자리에 누웠고 아침 7시에 일어나 산으로 올라갔었습니다. 시골에 왔다가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지 못하면 후회가 될 듯싶었고. 또 시골에 갔다면 높은 산에 한번 올라가는 것도 깊은 추억이 될 듯하였기 때문이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었습니다.

점심에 우리는 황장엽 선생님을 모시고 삼겹살 구이를 하며 함께 뜻 깊고 즐거운 식사도 하였으며 내 고향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아 풍선을 날렸습니다. 북으로 북으로 높이 높이 날아가는 풍선을 보며 고향에 있는 우리 형제 들이 저 편지를 보았으면 하는 소원을 두 손 모아 쥐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수련회는 2박3일이 건만 저는 다음날 행사로 먼저 떠나게 되였습니다. 버스 정류소까지 차를 타고 나와 시골 버스를 갈아타고 의정부 전철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게 되였습니다.

서로서로 나이도 다르고 고향은 다르지만 서로의 마음은 한마음이었고 마음으로 통하는 데가 어딘가 모르게 많았으며 오랜만에 고향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보니 지난 고향 생각이 더더욱 났고 지나간 추억들이 전철 차창 유리창으로 언뜻언뜻 스쳐 지나갔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저는 산골 마을에 몇 번 다녀 온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산골 마을에는 전기가 없어 텔레비전은 고사하고 전기 불도 제대로 볼 수가 없으며 아궁에 나무도 불도 마음대로 땔 수가 없어 추워 꼬부리고 자야 하는 현실이고 상수도가 설치 안 되여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지개나 혹은 물동이를 이고 다니다가 넘어져 노인들이 이런 겨울에는 미끄러져 넘어져 상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5리나 되는 거리를 그것도 개울얼음을 까고 물을 길어 먹어야 하는 양덕 군 산골마을에 간적이 있었고 산 토끼와 꿩과 참새 잡이를 위해 눈길에 외사촌들을 따라 다니던 재미있고 즐거웠던 그 시절을 그려 보며 혼자 웃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기쁘고 즐거울 때나 행복할 때나 고향을 그리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