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북한 사람들의 명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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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애

며칠 전에 저는 친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고향에서 아버님이 오셨다고 한번 놀러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저는 항아리 만한 수박을 사들고 친구 집을 찾았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을 만나는 순간 저는 고향에 계시는 저의 부모님이 생각났고 마치 고향의 아버님을 만나는 심정이었습니다. 고향이 전라도인 친구의 아버님은 1950년에 군에 입대해서 조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돼 50년 만에 80 고령이 되서야 고향을 찾았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은 며칠 전에 부대를 방문해 제대식을 하고 왔다면서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저에게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80 고령의 나이에 이곳 남한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비록 얼굴에는 맞지 않아도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벽에 쭉 걸어 놓은 상장과 훈장들을 자랑하는 모습이 마치 갓 제대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친구 아버님은 유공자로 전쟁 시기에 북한군에게 맞은 총탄이 아직 어깨에 박혀 있습니다. 남한에서 유공자라면 자식들까지도 대학에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직업도 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알선해 준다고 합니다. 80 고령에 북한으로 말하면 고위급 대우를 받는다면서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재 북한에 두고 온 막내아들이 2000년도에 10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부모님 곁에 와서도 선뜻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신발만 툭툭 털고 있었답니다. 하도 이상해서 아버님이 밖으로 나가 보니 막내아들이 배낭을 어깨에 맨 채 눈물을 흘리고 서 있더랍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아버지의 가슴을 치며 아버지 때문에 입당도 못하고 배치받은 대학에서도 떨어졌다는 말을 해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붙잡고 땅을 치고 울었답니다.

이곳 남한에 함께 온 막내딸도 아버지가 국군 포로라는 이유로 대학에도 갈 수가 없었고 좋은 신랑감과 약혼을 하고도 아버지의 출신성분 때문에 파혼을 당했고 온 집안이 광산에서 돌을 캐야 했던 지난날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상하며 두고 온 자식들의 앞날을 생각하며 아버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막내딸인 제 친구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제 친구 아버님의 말씀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제가 군복무를 할 때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5, 6년의 군복무를 마치고도 부모님의 과거 때문에 입당을 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정신이상된 사람처럼 탄알을 땅속에 묻는다든지 아니면 탄창을 예성강물에 던진다든지 아니면 구호의 문구를 뜯어 버린다든지 별별 일들이 많았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에는 저도 그들이 부모를 잘못 만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부모 탓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80이 돼서 고향을 찾은 친구 아버님은 이제야 사람 대접을 받으며 인간답게 사는 맛이 난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은 아침 저녁으로 식사 후에는 꼭 아파트 근처에 있는 야산에 올라가 운동도 하고 약수도 마시고 남한의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영감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하늘나라에 먼저 가버린 부인을 그리며 북녘 하늘을 한참씩 하루에 몇 번이나 바라보신다고 했습니다.

친구 아버님의 말씀을 들으며 고향에 계시는 부모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직도 내 고향에는 아픈 상처를 가진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오늘일까. 내일일까. 통일 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곳 남한이 고향인 국군 포로 가족들과 또한 실향민들과 1.4후퇴 시기 헤어진 가족들과 납북자 가족들, 만 명이 넘어선 우리 탈북자 가족들, 모두다 마음의 상처를 갖고 통일의 그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7천만의 온 겨레의 한결 같은 마음은 통일입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돼야 이런 상처들이 아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저는 두렵습니다. 고향에 있는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우리들 때문에 또다시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살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잠자리에서도 몸부림 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