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저는 딸의 출산을 돕기 위해 출산예정일 보다 미리 딸네 집으로 왔습니다. 딸은 예정일 보다 하루 먼저 아이를 낳았습니다. 다행히 딸은 조산원들의 도움으로 쉽게 자연분만했습니다. 진통의 아픔이 시작돼서 해산할 때까지 딸 옆에서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도 평양 산원을 떠올렸습니다.
평양 산원은 북한 여성들을 위한 병원으로는 제일 큰 병원으로 최신식 기술이 갖춰져 있는 병원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대로 평양 산원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제한된 병원 시설이라 산모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첫 아기 출산이나 이상이 있는 경우, 아니면 세 쌍둥이들 이상만 출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 아이 모두 평양 산원에서 출산했다는 긍지를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애는 첫 아이라서, 둘째는 거의 출산일에 임박해서 첫 아기 출산이라고 하며 입원을 했고, 셋째는 아는 사람을 통해 그 산원에서 출산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의료시설이 안좋은 구역병원이 싫었습니다.
평양 산원은 1980년 6월에 문을 열었고, 시설은 외국에서 들여다 최신식으로 갖\x{cdb4} 놓았기 때문에 여성들이면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은 병원입니다. 일단 산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일체 가족과는 면회 금지고 아기를 출산하고도 퇴원하는 날까지 가족과 면회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롭게 혼자 출산의 고통을 겪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 남한에는 서울, 지방 구별 없이 평양 산원 못지않은 산원이 수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산모들이 혼자 아기를 낳지 않고, 진통을 겪을 때부터 출산하는 순간까지 남편이 곁에 있어주기도 합니다. 특이한 것으로는 수중 분만이 있습니다. 수중분만은 맑은 물 속에 들어가 아기를 낳는 것인데 산모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아기의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합니다.
저는 미리 늙은 호박 두개를 준비했습니다. 딸이 출산하면 호박곰을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제게는 ‘호박곰’ 하면 또 다른 추억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출산을 한 뒤에 늙은 호박에 뚜껑을 오려내고 속을 다 판 다음 꿀을 넣고, 큰 밥 가마에 쪄 먹으면 부은 살도 내리고 산후풍도 예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크고, 예쁜 호박으로 두 개를 마련해 뒀습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와 호박씨를 파내고 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지방에 사는 딸의 시어머니였습니다. 손자를 낳아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호박즙을 배달로 부쳤다는 것입니다. 고향에서는 손수 심어 가꾼 호박으로 즙을 내서 보냈다는 말을 듣고 저는 즙이 뭔가 물었습니다.
호박즙은 호박곰보다 산모들이 먹기도 편리하고 약효과도 더 좋다고 합니다. 호박곰은 가마에 쪄야 하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만, 호박즙은 한의원에서 대추와 감초를 비롯한 산모들에게 필요한 약재를 섞어 가공해 주기 때문에 약효과도 더 좋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같으면 호박을 한 개 쪄내려면 24시간이 걸려야 하는데 석탄과 석유가 부족한 지금은 한번 쪄 먹기도 힘들 것입니다. 매일 아침 호박즙을 마시는 딸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행복한 지금 생활을 감사하게 됩니다. 때로는 딸이 “어머니, 왜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는가?”하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이곳 서울의 지금 생활과 평양에서의 지난 생활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머니가 된 저는 오늘도 한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