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며느리와 함께 한 행복한 하루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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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서울 강북구 강북구청 앞 먹자골목 거리.
사진은 서울 강북구 강북구청 앞 먹자골목 거리.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누가 저에게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 물으면 저는 서슴없이 아들, 며느리와 함께 보내는 순간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아들이 작은 중국집 운영을 한지도 벌써 2년이 조금 지났고 며느리 역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근무한지 벌써 4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아들, 며느리가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았거든요. 어쩌다 만나면 짧은 시간이었고 또 어쩌다가 가게로 가면 긴 시간 얘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며느리 역시 중환자실에 근무하다 보니 전화도 자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들, 며느리가 함께 집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괜스레 설레고 기쁨이 저절로 솟는 것이 당연하지요.

지난 주말도 그런 날이었네요. 오전 11시쯤 집에 온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11시 즈음에 저는 일산에서 볼일이 있어서 분주한 시간이라, 저희는 집 대신 일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사는 강서 쪽에서 일산으로 오는 거리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도착 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일산의 백석역 근방에 있는 경복궁이라는 분위기 있는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막 여름휴가가 시작되어서 음식점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하지만 어떻게 하여 식사를 할 수 있는 특별대우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차관리원에게 차를 맡기고 3층으로 올라가 음식을 시켰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쉴 새 없이 말을 시키는 저를 보고 남편은 제지시키기도 하네요. 맛있게 먹고 있는 아들, 며느리의 모습을 봐도 마냥 즐겁고 기쁘고 배가 불렀습니다. 드디어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하네요. 아들 내외는 결혼 등기를 하고 함께 살고 있지만 그동안 아들은 사업을, 며느리는 공부를 하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결혼식을 치르지는 못했거든요. 사실 아들의 결혼 날짜는 두 번 정도 잡았다가 미루었기에 저에게는 애타게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 이기도 했습니다.

기쁜 나머지 “이번에는 정말 결혼 하는 거지?” 하는 물음이 저절로 나오기도 해 우리는 웃었습니다. 4년 전 제가 직접 며느리와 함께 강남에 있는 이름 있는 곳에서 결혼식 예약을 했었거든요. 결혼식이 취소되었고, 그 때문에 식장 예약금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운한 것도 있었고요.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얘기 하는 아들 며느리의 밝은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지나간 추억이 더 올랐습니다. 큰딸을 찾아 떠나려던 전날인 1997년 9월의 어느 날 저녁 준비를 위해 12살 어린 아들과 고향집 마당에 마주 앉았습니다. 왠지 그때 아들과 헤어지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만 같던 예감이 불쑥 떠올라 아들에게 만약 이 엄마의 소식이 없으면 국경연선에 있는 친척집으로 찾아오라고 주소를 여러 번 곱씹어 알려 주었거든요.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그 이별이 7년 이란 오랜 시간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해 보았지만 말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기에 이곳 남한에 처음 와서도 몇 달 동안은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조차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지난 날 고향에서 12살짜리 꼬마가 그 작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평양역과 간리역을 드나들던 아들, 하늘을 지붕으로 차디찬 땅바닥을 방으로 삼아 7년이란 세월을 그 어려움을 이겨 내고 열심히 살아왔기에 오늘날 좋은 자가용 승용차를 운전하기도 하고 또 며느리에게 좋은 차를 선물도 해 주고 내 고향의 창광거리 중앙당 간부들이 살고 있는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24평 고급 아파트에서 어엿하게 살고 있으며, 비록 남들 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중국집이지만 사장이 되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늘은 또 엄마인 나에게 낳아 주어 감사하고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이런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해 주어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하네요.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옛날 속담이 있습니다. 한창 좋은 부모의 슬하에서 응석 부려야 할 나이에 벌써 세상 풍파를 겪었고 말도 안 되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오늘날의 성숙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처음에는 그냥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빌었는데, 아들을 만나고 보니 열심히 살아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과 남들처럼 제대로 된 결혼식을 빨리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이젠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빨리 손자를 안겨 달라는 소원과 꿈이 생기네요. 아들 며느리와의 데이트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하고 즐겁고 뿌듯했습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가 한 명언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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