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꼬마들과 눈사람을 만들며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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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놓여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해 12월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네요. 저는 여태 내복 없이 겨울을 보냈지만. 남한 사람들은 초겨울부터 내복을 입었다고들 합니다. 제법 겨울다운 겨울이 온 듯합니다. 이곳 한국 생활하며 처음 저도 내복을 입어 보았습니다. 마트에 들러 저녁 먹을거리를 구입해 들고 막 나오려는 순간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함박눈이 펑펑 내려 어느덧 길 위에 높이 쌓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눈을 맞지 않으려고 우산을 쓰고 다니네요. 우산을 쓰지 않은 제 머리와 어깨 위에는 벌써 함박눈이 소복이 쌓였지만 괜스레 기분이 즐거웠습니다. 아파트 단지의 넓은 공간에는 벌써 썰매를 타는 애들도 있었고 눈사람을 굴리고 있는 애들로 북적이었습니다.

그런대 유난히 눈사람을 굴리고 있는 애들 중에 제 눈에 안겨 오는 두 남자애가 있었습니다. 이미 부모를 통해 안목이 있는 꼬마 개구쟁이들이었습니다. 몸무게보다도 더 큰 눈사람을 “영차, 영차” 힘겹게 굴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눈사람의 머리가 너무 컸기에 낑낑 어려움을 겪고 있었거든요.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를 땅에 내려놓고 다가가 “안녕!” 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순간 반가운 얼굴로 도움을 요청을 합니다. 눈사람 머리가 몸통과 꼭 같으면 뭐가 되냐고 핀잔을 해 가면서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 애들과 함께 눈을 굴려 머리를 만들어 몸통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제법 나무 가지를 꺾어 눈과 코 입을 만들어 붙여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 그냥 엄마의 손에 달려 응석을 부리는 개구쟁이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이가 주머니에서 작은 태극기를 꺼내 눈사람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대견해 언제 이런 생각을 했냐고 묻는 저에게 눈이 많이 오면 꼭 제 손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다고 어른스레 얘기를 합니다. 속에 영감이 들었다고 저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해 보니 10살인 그 애가 자라는 동안 이곳에는 많은 눈이 별로 내렸던 기억이 없었을 듯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60년을 살아온 나 자신 보다 더 오래 살아온 사람처럼 얘기하는 개구쟁이 소년이 너무도 기특하고 대견해 손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그 애의 엄마에게 보내기도 했고 또 동네 알뜰 시장에 데려가 뜨끈한 어묵도 함께 먹었습니다.

꼬마 개구쟁이 녀석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순간 어느새 손자 녀석들이 생각이 들어 딸들에게도 사진을 보냈습니다. 손자들에게서 답문이 왔는데 평택에는 눈이 내리면서 녹아 버려 아쉽게도 눈사람을 만들지 못한다고 하네요. 잠시나마 즐거웠던 동네 개구쟁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들어오면서 문뜩 아쉬웠던 지나간 세월의 추억이 났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동생들과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4살짜리 남동생과 제가 한 짝이었고 내 밑 동생은 그 밑에 있는 여동생과 한 짝이 되어 눈사람을 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눈사람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남동생이 손발이 시려 울었습니다. 잠시 남동생을 집에 데려다 주고 나와 보니 그 자리에 눈사람은 없어지고 부셔진 눈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질투가 난 동생들이 내가 없는 사이에 망가뜨려 버린 것이죠. 아쉬운 나머지 동생들에게 엄한 꾸지람을 했었습니다.

제가 탈북하기 전 겨울이었습니다. 사흘째 함박눈이 쉴 새 없이 펑펑 내려 마당에 가득 쌓였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도로의 눈을 치우고 늦은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엌 문 앞에 눈사람이 2개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당시 10살이었던 아들이 제법 눈사람을 만들어 보초병처럼 세워 놓았는데 아버지, 엄마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이후 아들과 헤어져 있는 내내 중국에서 눈이 내리면 무조건 눈사람을 만들어 집 앞에 세워 두곤 했었고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도 틈틈이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아들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었습니다. 온 겨울 아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눈사람이 항상 제 집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었거든요.

이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해마다 눈 내리는 겨울만을 기다리게 되었고 그 이후로 겨울을 유난히 남들보다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네요.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동네 꼬마 개구쟁이들과 동심이 되어 눈사람도 만들고 알뜰 시장에서 뜨끈한 어묵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과 더불어 지나간 추억을 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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