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저녁 산책을 하고 들어온 저는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손전화기가 울렸습니다. 빠른 동작으로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모 회사에서 근무하는 작은 딸의 전화였습니다. 딸은 기쁜 나머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저 오늘 모범 상장과 함께 상금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과연 내 딸답구나..하고 말했습니다.
너무도 기뻐 기숙사에 함께 있는 언니들과 잔업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저는 홀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남한에 와서 딸은 탈북자 예술단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너무도 어렵고 힘들게 그리고 목숨을 걸고 이곳 남한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저로서는 용납이 안됐습니다. 그래서 작은 딸을 큰딸 가까이로 보냈습니다. 그곳에는 공단이 많아 큰 회사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간 작은 딸은 기숙사 생활이 익숙치 않은 데다 신입사원 생활이 너무도 힘들다며 울면서 “어머니 저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라는 전화를 하루에도 몇 번씩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네가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이곳 남한에서 살아 날 수가 없다.“ 라고 엄하게 말했습니다. 회사는 근무시간이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30분까지이며 저녁 식사 후에는 8시 30분까지 잔업 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작업은 검사원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아도 하루 12시간 서서 근무를 하다 보니 두 다리가 퉁퉁 부어 아프다고 응석도 부렸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퉁퉁 부운 딸의 두 다리를 보며 남모르게 눈물도 흘렸지만, 작은 고통에 마음이 쓰리다고 여기에서 접으면 우리는 영영 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남한에서 절대로 정착할 수가 없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그 때마다 더 엄하게 대했습니다. 다행히 딸은 제 말을 잘 따라줘서 입사한 지 얼마 안돼 기술시험에서 합격했고, 지금은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범 상장과 함께 상금을 탔다고 하니 저는 엄마로서 너무도 기쁩니다.
저는 자식들에 대한 자신감이 있습니다. 우월감까지 갖고 있습니다. 친목회나 친구들을 만나면 그저 자식자랑이랍니다. 아이들은 남편 없이 혼자 있는 엄마를 보며 엄마의 빈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줘야 하는데 마치 자기들이 도리를 다 하지 못한 것으로 때로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엄마는 그저 너희들이 이 낯선 땅에 와서 남들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하며 건강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것이라고 항상 말합니다.
큰 딸은 맏이로 새 가정을 꾸리고 그도 엄마로서, 가정 주부로서 자기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고 작은 딸도 나름대로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아들은 아들대로 집안의 대들보로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남한 생활에서 성공의 열쇠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 아들은 이제 우리가 한달에 얼마씩 용돈을 드리겠으니 엄마는 편히 쉬면서 관광이나 다니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이곳 남한 생활이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라 해도 저에게는 새롭고 행복하게 느껴진답니다.
이번에 작은 딸이 받은 상금은 15만원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돈이지만, 돈의 액수보다도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저는 딸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항상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웠는가...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더 멀고 힘이 들겠지만, 우리는 꼭 이곳 자본주의 생활 속에 하루빨리 적응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분단된 조국이 하나가 되면 우리가 고향에 가서 이곳 남한의 문화와 기술을 고향의 주민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지난날 고향에서는 아이들의 희망과 포부를 부모로서 뒷받침해주지 못했습니다. 작은 딸이 무용에 많은 취미가 있고, 아들은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손에 쥔 것이 없어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남한에 와서 탈북자 예술단을 그만 두게 할 때도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는 든든한 세 자식들을 바라볼 때마다 자랑스럽습니다. 오늘도 늠름한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