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지난 13일이 말복 이었습니다. 저녁6시가 되여 친구 숙영이가 찾아 왔습니다. 복날에는 삼계탕을 먹어야 한다면서 빨리 외출복을 입고 가자는 것입니다. 저는 오리 백숙을 해 놓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알아서 차려 먹으라는 글쪽지 한 장을 남겨 놓고 숙영이를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는 경기도 시흥 쪽으로 갔습니다. 분위기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누룽지 오리 백숙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일요일이라 차를 주차 할 자리도 없이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 시간남아 기다려야 한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은 우리는 기다리기가 지루하여 인천 쪽에 있는 다른 가게를 찾아 갔습니다. 닭은 다 떨어지고 오리만이 있다하여 누룽지 백숙을 시켜 놓고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40분 만에 오리도 떨어 진 것을 모르고 저희들의 주문을 받았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화가 나 서빙 아줌마에게 화를 냈습니다. 사장님을 비롯한 모든 종업원들이 나와 정말 미안 하다고 사과의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있는 저는 좀 놀랐습니다. 고향 같으면 영업을 하다가 떨어지면 그저 그만이라는 응당한 것처럼 손님을 내보내는 것이고 그렇다 하여 손님들은 아무런 섭섭한 말 한마디 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할 수없이 다시 집 근처인 부천 쪽으로 와서야 오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 9시가 다 되여 먹는 저녁이라 별맛이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저는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접대원 아줌마들은 제가 먹는 것이 재밌는지 자꾸 웃어 댔습니다. 색다른 지방사투리를 쓰는 저를 보며 접대원 아줌마는 중국 교포인가도 물어 보기도 하고 음식을 더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노래방에서 한 곡 불러주고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은 퇴근하여 한참 오리 백숙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큼직한 오리 다리를 쥐고 뜯으며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북한에서도 복날에 닭곰을 해 먹었나? 뭘 먹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 정말 북한에서는 닭곰과 오리 곰을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어 겨울이면 창고와 부엌바닥에 닭과 개를 몰래 키웠습니다. 닭 키우기는 조금 쉬우나 개 키우기는 힘이 들었습니다. 사료는 둘째 치고 사람이 오면 부엌바닥에서 짓기 때문입니다. 새끼 강아지 때 닭 알을 먹이면 짓지 않는다하여 생 닭 알을 먹이군 했습니다. 장 마당에서 파는 고기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고기를 해결 할 수가 없어 이런 방법으로 고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앓는 남편에게 주먹만한 닭 한 마리를 구해 닭곰을 해주었는데 아이들이 목에 걸려 먹을 수가 없어 아이들이 잠자는 야밤에 남편을 깨워 먹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들은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닭다리를 손에 들었을 때 이불 속에서 군침을 꿀꺽 했다고 말을 합니다. 북한에선 아동영화 소년장수에서 두 손으로 닭다리를 뜯어 먹는 호비가 제일 부러웠다고 아들은 항상 말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이 복날에 두 손으로 커다란 오리다리를 쥐고 먹는 모습을 보는 저의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항상 뒷통수를 잡아 끄는 손이 있는 것 마냥 좋을 것을 볼 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생각나는 곳은 고향이네요. 어깨에 날개라도 있으면 훨훨 분계선을 넘어 고향의 주민들에게 따끈따끈한 삼계탕을 꾸려 주고 싶습니다. 항상 그날을 기원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