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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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희망이 약동하는 듯한 완연한 봄. 춘삼월도 중순이 지났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찾아오는 계절과 더불어 저는 때늦은 꿈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본답니다. 오늘도 찬란한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3권의 소중한 사진첩을 펼치며 지나간 추억을 더듬었습니다. 우선 딸의 결혼식 사진첩을 펼쳤습니다.

첫 뚜껑을 펼치니 하얀 눈처럼 흰 웨딩드레스를 곱게 입고 한손에는 흰 꽃묶음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누군가의 팔을 꼭 잡고 있는 딸의 모습과 앞 가슴에 꽃을 달고 의젓하게 서있는 늠름하고 대견한 사위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저는 흘러간 옛 시절에 대한 추억을 하며 살며시 웃으며 다음 장을 번지니 웨딩드레스를 땅에 드리고 곱게 살짝 눈웃음을 짓는 딸의 독사진이었습니다.

방실방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제 결혼식 때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그 엄마의 그 딸이 아니라 할까. 어쩌면 제 모습 그대로 닮았을까. 하는 깊은 사색을 하며 또 다른 장을 펼쳤습니다. 가족사진이었습니다. 늠름하고 든든한 사위와 맏딸을 가운데 세우고 진분홍 철쭉꽃색의 긴 치마에 약간의 연 보라색을 알릴 듯 말 듯하게 띤 흰색의 저고리를 받쳐 입고 짧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안경을 쓰고 어딘가 서운해 보이는 제 모습과 맏딸 못지않게 날씬하고 예쁜 몸매에 제 언니의 결혼을 축하하는 기쁜 마음으로 방실방실 웃고 있는 둘째 딸과 대신 든든하고 대견스럽고 남자답게 의젓한 막내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단 한자리가 비여 있는 것이 조금, 아니 서운 한 마음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나간 저의 결혼 생활 18년 이런 가족사진이 하나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고향인 평양에서의 생활이었습니다. 어느 해 4월15일 태양절이었습니다. 선물 교복에 사탕 서물 봉지를 안은 모습을 기념으로 하여 가족사진을 찍기로 하였습니다.

설레이는 아이들과 함께 무진 사진관으로 갔었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12시가 지나도록 차례가 안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대동강 에서 보트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초조해 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다음에 기회를 봐 다시 사진관으로 오기로 하고 주체탑이 있는 대동강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로는 시간과 조건이 잘 맞지가 않아 사진관에 간 적이 지금에 와 생각을 해 보면 단 한 번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여 저의 가족은 여태 가족사진이 한 장도 없었고 딸 결혼식에 찍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가정에는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저의 군 복무의 사진이 있고 애들이 학교에서 단체적으로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였는데 그것마저도 이곳 남한으로 오다 보니 한 장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한에 온 첫날부터 저와 아이들은 세월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많은 사진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지금도 애들은 우리는 왜 가족사진이 한 장 없는가 하며 물을 때가 많고 지금이라도 가족사진을 크게 멋있게 찍어 좋은 액틀에 넣어 벽에 걸자고 자주 말을 한 답니다. 그러는 애들을 보며 답변은 쉽게 하면서도 어쩐지 아직 가족사진 한 장 크게 찍어 아이들의 소원을 풀어 주지 못하였습니다.

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해에 미국에 가서 찍은 사진들을 한 참이나 말없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북한에 있었으면 감히 생각도 못해 보는 미국, 세계에서 강대국이라고 불리우는 미국을 다녀왔다고 생각을 하니 저절로 흐뭇한 기분으로 혼자 빙긋 웃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남한의 여기 저기 경치 좋은 관광지들을 찾을 때마다 찍은 사진들도 보며 저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기도 하고 때로는 크게 웃기도 하면서 한참을 보았습니다. 별이 별 각양각색의 모양을 하고 찍은 많은 사진들을 보며 지나간 재미있고 즐거웠던 시절에 대해 추억을 하였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남는 것은 사진이며 사진 앞에서 지나간 추억을 하며 인생을 돌이켜 본다더니 이런 저를 보고 하는 말인 것 같네요. 또한 중국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과 고향에 계시는 늙으신 부모님의 사진을 보면서도 좋지 못한 추억도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도 그려 보았습니다.

마치도 한 제목의 곡절 많은 운명의 한 인생에 대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남한에서의 저의 행복한 생활 속에서 저는 오늘처럼 이렇게 한 장의 사진을 놓고도 새롭고 새로운 감회가 깊어지며 때로는 마음이 아파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즐거운 웃음도 웃기도 하고 때로는 하소연 하고 싶을 때도 있고 때로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며 자주 이렇게 사진첩을 펼쳐 본답니다. 고향에 있는 형제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