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두번째 손녀딸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09.12.30
지난 12월 23일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해산을 코앞에 둔 작은 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수술 시간이 잡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쁘게 업무를 마치고, 시간을 받아 단숨에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 산부인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사위와 사돈 내외가 와 있었고 딸은 출산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출산 후 출혈로 인해 4시간이나 선생님의 관찰을 받으며, 병실로 옮겨지지 못해 볼 수가 없었지만, 갓 태어나 찍힌 떡돌 같은 손자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갓난아이가 마치 100일 된 아이처럼 발도 손도 큼지막하고, 얼굴도 사나이답게 잘생긴 얼굴이었습니다. 사부인은 눈물을 흘리는 제 모습을 보며 자기도 손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번째로 맞은 손자였지만, 사돈들에게는 첫 손자여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너무 좋아하는 사돈 내외를 바라보며 저는 딸이 너무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결혼해서 첫째 딸을 낳았을 때에는 아기가 없던 집이라 좋아했지만, 둘째 딸을 낳자 시집에서는 장모를 닮아 연달아 또 딸을 낳았다고 아이를 들여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3개월이 지나도록 아기 이름도 지어주지 않아 저는 눈물을 흘리며 직접 아이 이름을 지었고,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도 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3대째 외아들이었고, 우리 어머니는 40살이 돼서야 딸을 넷 낳고 다섯번째로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아들이 없을 때 겪었던 한 맺힌 사연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딸을 출산을 했을 때 조금 서운했고, 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게 아들을 선호하는 마음이 있던 터라 둘째 딸이 첫 아이로 아들을 낳은 걸 보니 더 기쁘고 안심도 됐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인 사돈 내외도 아들이라 더 좋아하는 듯 했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사돈 내외의 얼굴을 보며 저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출산을 하고도 4시간이 지난 저녁 9시가 돼서야 딸이 링거를 꽂은 채 실려 나왔습니다. 저를 보는 순간 딸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저는 ‘정말 수고했다. 엄마 되기가 그리 쉬운 줄 아니? 이제야 철이 들었네.....’하고 농담 섞인 말을 했습니다. 딸의 출산을 보느라 하루 밤을 꼬박 새고 평택역에서 전철을 타고 출근길에 오른 저는 피곤한지도 몰랐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손자를 본 저를 축하해 주는 기분이었습니다.

금요일이었던 25일이 성탄절이어서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3일간의 휴일을 맞은 저는 목요일 오후 남들보다 일찍 퇴근해 평택으로 달려갔습니다. 며칠 동안이라도 딸의 산후 조리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딸은 수술을 해서 아기를 낳아 몸을 많이 불편해 했습니다. 게다가 열이 나는 감기 증세가 있는 바람에 딸은 사흘 동안 아들 얼굴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갓난아기에게 혹시 감염이 될까 해서 병원에서 격리를 시킨 것입니다.

그 바람에 덩달아 저도 손자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신생아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하루 두번 손자 얼굴만 보다 왔습니다.

섭섭한 마음을 뒤로 하고 월요일 출근을 위해 일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오래간만에 내린 하얀 눈이 정겨워서 저는 차를 타지 않고 눈을 맞으며 걸었습니다.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도 행복하게 들렸습니다. 눈을 밟으며 집에 오는 길에 ‘언제쯤 우리 손자는 “할머니! 음력설에 엄마랑 아빠랑 함께 서울 갈께요. 그 때 실컷 안아주세요.”하고 조랑조랑 말을 하려나?‘ 하고 벌써부터 기대가 됐습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저는 회사 동료들에게 축하인사를 받았습니다. 언제 연락을 받았는지 친구들도 손전화기로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앞으로 아들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것이고 큰 딸, 둘째딸이 또 아이를 낳으면 저는 손자, 손녀 부자가 되겠지요. 고향에 있는 형제들과 친구들은 어엿한 할머니가 된 저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손자, 손녀를 보며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제 모습을 하루 빨리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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