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저는 한 달반이나 심한 입쓰리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 탈진된 딸을 택시에 태우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목동에 자리 잡고 있는 양혜미 산부사과로 갔습니다. 제가 남한에 와 처음으로 찾아갔던 병원입니다. 그때의 병원에 대한 감상이 인상에 남아 저는 무턱대고 그리로 갔습니다.
병원에 들어서자 접수에 간 저는 의료보험수첩을 보이며 접수를 하였습니다. 간호원들은 1종이라며 저희들 끼리 수군거리며 저를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탈북자들이 정부에서 돌려주는 혜택입니다. 그리고는 마치도 시집갔던 딸이 친정에 찾아 온 것처럼 간호원과 담당 선생님은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우선 딸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더니 배속에 있는 아기부터 검사하였습니다. 아기는 아무런 근심 없이 건강하게 크고 있었습니다. 임신을 한 딸이 탈진 상태라 저는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피검사와 검진을 끝내고 입원실인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입원실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입원실은 많은 경우 침대로 되여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뜨끈뜨끈한 온돌방이었고 텔레비죤을 비롯한 랭 동기도 전화기도 있었습니다. 마치도 병원이 아니라 가정집 분위기 같은 다정한 느낌이 였습니다. 환자의 옷으로 갈아입힌 간호원은 비타민 링겔주사를 나주었습니다. 간호원은 나가면서 주사가 다 떨어지면 0번을 누르면 간호원이 받는 다는 것입니다.
저녁교대와 아침 교대 시간이면 담당 의사와 간호원이 들어와 딸의 상태를 하나하나 일일이 다시 검사하였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묻고는 간호원에게 지시를 주곤 하였습니다. 하여 비타민주사와 영양제 주사를 엇갈아 나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모든 것이 새삼스럽고 감동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원래 친절성이 높았지만 저희가 탈북자라는 점에서 더더욱 불편함이 있을 세라 친절히 정성껏 다해 주었습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의사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혁명가라는 김일성의 명언입니다. 구역 병원과 진료소들에는 모든 설비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간호원이나 의사들은 얼마나 무뚝뚝한지 모른답니다. 한마디로 말해 정성이 너무도 많이 부족합니다.
저와 딸은 병원입원실에서 밤을 자며 줄 곳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딸이 어렸을 때 한번 병원에 입원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저의 직업은 수산물 상점 판매원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돌 지난 어린 아기가 독 감기에 걸려 심한 기침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호실에 평양대학 병원에 다니는 한 의사의 아이가 함께 입원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아빠한데서 좋은 주사를 구해다 맞고 인차 기침이 멎었습니다. 하루는 담당 의사가 저를 찾기에 의사실로 갔더니 물미역 100킬로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4월초라 수산물 상점에서는 물미역 판매가 한창이었습니다. 제가 물미역 100킬로를 사 줄 수 있다면 그 좋은 주사를 한대 얻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내 아이를 위해 약속 하였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상점에는 갈수가 없고 구역병원이 가까운 수산물 상점에 가 점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물미역 100킬로를 사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주사를 맞은 저의 딸은 기침이 약해져 잠을 잘 수가 있었고 숨도 편히 쉴 수가 있었습니다. 물미역이라면 이곳 남한에서는 젖은 미역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링겔을 맞는데 형관을 찾지 못해 한 시간을 헤매이다가 끝내는 눈 섶 밑에 얇은 혈관에 주사바늘을 꼽았습니다.
저는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혈관을 찾지 못해 오랜 시간을 손에 땀을 쥐고 아슬아슬한 모습에 대해 지금도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낍니다. 이렇게 북한의 그 어느 병원이나 안면이 있어야 좋은 약과 주사를 맞을 수가 있고 안면이 없으면 페니실린 주사도 제대로 맞을 수가 없고 자체로 구해 써야 합니다. 그저 병원에서는 진단이나 받을 수가 있답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 가나 마나 하다며 민간요법을 많이 쓴답니다. 특히 이런 입 쓰리는 죽을병이 아니라 생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병원에는 크게 가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미기한 고정 관념 습관으로 저도 딸이 탈진이 되도록 몰랐습니다.
퇴원하는 날에도 의사 선생님은 다시 검사결과를 꼼꼼히 알려 주며 임신기간에 주의 할 점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딸의 퇴원수속을 하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정부의 혜택인 의료 보험으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싼 가격이 나왔던 것입니다. 이곳 남한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지만 우리들에게 차례지는 정부의 혜택이 얼마나 좋은 가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딸과 함께 목동에 있는 이름 있는 함흥냉면 집에 들려 맵고 달콤한 회 냉면을 먹고 택시를 타고 차창으로 화창한 봄날옷차림을 한 서울의 여성들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을 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