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저는 지난 주말 겨울 김장을 했습니다. 이곳 남한에 온지 몇 해가 지났지만 아직 북한식으로 김장을 합니다, 싱싱한 생 명태를 큼직하게 썰어 빨간 양념에 섞은 뒤 노란 통배추 속에 넣고 빨간 고추 양념으로 온통 빨갛게 비벼 놓은 김치를 바라보며 고향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전화기에서 ‘띵띠딩’ 하는 소리가 드렸습니다.
빨간 색으로 물든 비닐 장갑을 벗어 던지고 손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동사무소에서 사랑의 김치를 가져가라는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저는 동사무소에 전화를 했습니다. 김치를 담갔으니 제몫을 다른 세대에 주라고 말입니다.
사무소 일군은 우리 세대에 차례지는 김장이니 그럴 수 없다면서 도장을 가지고 받아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동사무소에서 공급해 주는 김치를 놓고, 비록 작은 것이지만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한 세대만이 아닌 우리 탈북자 가족들과 이곳 남한의 어려운 세대들에게 모두 공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남한식 김장과 북한식 김장을 놓고 비교도 해보았습니다.
이곳 남한 사람들이 담근 김장은 조금 짠맛이 나고 매웠고, 양념에도 세파와 젓갈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제가 담근 북한식 김장은 빨간 고추와 마늘 그리고 생강과 생 동태 밖에는 들어간 것이 없었고, 어딘가 모르게 조금 싱거운 맛과 조금 단맛이 났습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곳 남한 김치는 양념에 꼭 찹쌀 죽을 쑤어 섞는 답니다. 북한에서는 김치를 하면 3일 정도 연한 소금물에 절였다가 3번, 4번 깨끗이 물에 씻어 양념을 갈피 갈피 넣어 독에 꼭꼭 눌러 담은 다음 3일 후에 김치 독에 찰랑찰랑 물이 차도록 소금물을 붓습니다. 이것은 남한의 동치미와 비슷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겨울 방학 기간에 친구들이 모여 학습반을 할 때면 김치를 꺼내 물바가지에 담아 놓고 쭉쭉 찢어 먹는 맛과 시원하고 찡한 김치말이도 아래 목에 앉아 덜덜 떨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는 맛 또한 별맛이었답니다. 북한식 김치는 겨울 식량이라 1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시금치 나올 때가지 먹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한 세대에 한 톤 씩 했습니다. 실지 겨울에는 김치 밖에 먹을 것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곳 남한에온 저는 한해 겨울에 큰 딸네 집과 합해 모두 30통 밖에 하지 않아도 다음해 5월까지 얼마든지 넉넉하게 먹을 수가 있습니다.
겨울에 김치 말고도 먹을 것이 너무도 많으니까요. 북한에서는 김장을 11월 중순이면 대부분 다 하게 되는데, 커다란 독에 배추 한 돌기 넣고 통무우 한 돌기 넣어 하며, 김장 먹기 전에 먹을 써래기 김치와 깍두기와 갓 김치가 전부였지만, 이곳 남한에는 총각김치와 파김치 등 김치 종류도 얼마나 많은 지 셀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김장철이면 근심이 너무도 많았답니다.
고춧가루 걱정에 마늘과 대파와 생강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젓갈은 조금씩 공급이 되지만 김장보다 사람이 먼저 먹어 버리거든요. 참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돼 웃음이 나오지만요. 어쩌다가 김장철에 비린내 나는 젓갈이나 동태를 조금씩 주면 주린 창자의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고. 또 고양이가 물고기를 보고는 그냥 지나갈 수 없듯이 김치는 뒤로 미루고 가마로 들어갔답니다.
어느 해는 고춧가루를 구입할 수가 없어 백김치를 한 적이 있었고 어느 해는 몇 달 겨울 식량인 김치를 한 달도 못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옛맛이 그리워서 백김치를 조금 담그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양념이 너무 부족해 백김치를 한답니다. 제가 이곳 남한에 와서 김치라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유명한 개성 보쌈김치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고, 보쌈김치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먹어 보기는커녕 어떤 것인지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남한에 온 저는 그 유명하다는 보쌈김치를 너무도 많이 먹어 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통행증을 마음대로 받을 수가 없어 제고장마다 이름있는 음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는 있으나, 실제로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 남한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김치 뿐만이 아니라 지방마다 특색있는 별미 음식을 실제로 맛 볼 수가 있답니다.
남해 바다나 서해 바다 동해 바다에서 갓잡은 펄펄 뛰는 생선회도 먹을 수 있고, 갖가지 젓갈도 다 맛보고 맛있는 것으로 얼마든지 골라 사 먹을 수가 있는 것이 이곳 남한의 생활이랍니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저는 고향 주민들에게 빨간 고춧가루와 펄펄 뛰는 생 동태와 서해 바다의 맛있는 젓갈을 마음껏 보내 주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