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섬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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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애

친구들과 지난 주, 3박4일 일정으로 강원도 원주시 섬강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5명을 실은 농구 방 승합차는 싱싱 달려, 2시간 만에 우리를 섬강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말없이 끊을 듯 말 듯하게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섬강 주변 월송리에 들어가 묶을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엔 노인들만 주로 살았고 이 분들이 우리를 빈집에 묶으라고 안내 해주었습니다.

제가 저녁 당번이었습니다. 이것 저것 준비도 힘들어 저녁은 간단한 라면을 끓였습니다. 얼큰한 국물에 마을에서 산 시원한 막걸리도 한잔 곁들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큰 밤나무들이 마을을 감싸고 밭에는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고, 빨갛게 익은 토마토와 제 철을 맞은 포도가 잘 익어 있었습니다. 오붓한 풍경이었습니다.

아침을 차려먹곤 낚시대를 들러 매고 강으로 갔습니다. 장마철이라 물이 많이 불어있었는데 물이 맑아 물 속의 고기떼들이 다 들여 다 보였습니다. 저마다 낚시꾼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낚시 대를 잡았건만 정작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질 못했네요. 해가 질 무렵에나 되서 겨우 3마리를 잡았습니다. 준비해가지고 간 고추장으로 매운탕을 꾸려 소주 한잔 씩 하고는 자리에 누워 하늘 높이 뜬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북두칠성이 이쪽에 있었는데 또 우리 집에서는 북두칠성이 요쪽에 있었는데 하면서 지금쯤이면 고향에서 저녁을 먹고는 동네 말 돌이를 다녔는데... 선선한 저녁을 이용해 김장배추 영향단지도 했다는 둥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이라 두부 망질을 해 두부를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돗자리를 깔고 먹으며 떨어지는 별찌를 보며 소원도 빌었다는 둥 다들 고향 얘기로 밤을 지샜습니다. 살던 시절에 그렇게 힘든 일도 많았는데 남은 추억은 애뜻하기만 했습니다.

다음날엔 낚시고 뭐고 강물에 들어가 물장구를 쳤습니다.

마지막 날밤에는 가지고 간 천막을 치고 흐르는 섬강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운 저는 강물 소리에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이 저를 부르는 듯 잠이 잘 안 오더군요. 우린 하나둘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별 하나 나 하나 세여 보며 어렸을 때 불렀던 무궁화 꽃 수건에 나오는 노래도 불러 보았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있었다면 고향이 서로 다른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 앉아 지나간 추억을 할 수 있을까 친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런 즐거움이 있을까? 술에 고기는 커녕 우리 아이들에게 흰쌀 밥도 제대로 먹일 수 없을 것이고... 지금쯤 어떻게 되였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럴 땐 내 고향은 힘든 기억 뿐입니다.

북한에서 휴가철이면 그 놈의 통행증 때문에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어 구멍탄이나 빚었고 산에 몰래 올라가 나무를 했고 아이들은 놀 곳이 없어 석탄 더미에서 미끄럼을 타 금방 부린 석탄을 곡괭이로 깔 정도로 반질반질 닦아 놓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새까맣게 타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저를 보고 엄마 캄보디아에 갔다 왔는가하고 놀려 대고 딸은 다른 집에 손님이 온 줄 알았다며 웃었습니다. 저는 까만 얼굴에 더 하야보이는 이빨을 보이며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